창간 80주년 경향신문

구속과 제구, 그리고 수능



완독

경향신문

공유하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X

  • 이메일

보기 설정

글자 크기

  • 보통

  • 크게

  • 아주 크게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본문 요약

인공지능 기술로 자동 요약된 내용입니다.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본문과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내 뉴스플리에 저장

구속과 제구, 그리고 수능

입력 2025.11.19 21:48

수정 2025.11.19 21:51

펼치기/접기

야구 일본전 연패는 ‘제구력’ 탓?

구속 중요성 외면, 훈련량만 강조

수능도 핵심 경쟁력은 사라지고

문제 풀기 ‘제구 테스트’ 내몰려

일본에 또 졌다. 프로선수들이 참가한 대표팀 한·일 맞대결에서 10연패다. 지난 16일 K-베이스볼시리즈 일본과의 2차전에서 9회말 김주원(NC)의 극적인 동점 홈런으로 11연패를 막았지만(7-7 무승부), 연패가 끊어진 건 아니다.

일본전 연패 이유를 두고 갑론을박이 진행 중이다. 대표적인 건 ‘제구’다. 대표팀 투수들은 1차전서 사사구 11개를, 2차전서 볼넷 12개를 내줬다. 한국프로야구가 로봇 심판(ABS)을 쓰는 것과 달리 이번 2연전은 사람 심판이었고, 스트라이크에 박했다. 일본 투수들도 2차전서 사사구 9개를 기록했다.

그럼에도 많은 야구인(어른)들이 ‘제구 부족’을 탓한다. 논리 구조는 이렇다. 아무리 공이 빨라도 제구가 안 되면 소용이 없다. 그러니 (쓸데없이) 구속을 늘리기보다 제구에 신경써야 한다. 여기서 ‘전가의 보도’가 나온다. “제구가 안 되는 건, ‘요즘 애들이 훈련(노력)을 안 해서’다.”

1. 정말 제구가 구속보다 중요할까.

메이저리그에서 30홈런을 때리는 브렌트 루커(오클랜드)는 인플루언서급 엑스(구 트위터) 사용량을 자랑한다. 2023년 10월, 투수 조지 커비의 시속 73마일짜리 너클볼 영상을 올렸고, 댓글에서 구속 vs 제구 논란이 벌어졌다. 루커는 이렇게 적었다.

“끼어들어서 미안, 그런데 시속 97마일(약 156㎞) 넘는 가운데 공이, 92마일(약 148㎞)짜리 구석에 꽂히는 공보다 훨씬 치기 힘들어. 진짜, 훠얼씬 힘들다고.”

실제 2023시즌 메이저리그 투구를 분석한 결과 98마일 이상의 ‘가운데 몰린 공’의 피OPS는 0.609였던 데 비해 92마일 이하의 ‘스트라이크존 구석에 꽂힌 공’, 즉 제구 잘된 공의 피OPS는 0.810이나 됐다. 올 시즌 KBO리그 기준 OPS 0.609면 리그 꼴찌에서 2번째, OPS 0.810이면 17위로 김현수(LG, 0.806) 바로 위다.

2. 구속은 겉멋이고, 제구는 노력일까.

오랜 야구 격언 중에 ‘좌완 강속구 투수는 지옥에서라도 데려와야 한다’는 말이 있다. 빠른 공을 던지는 왼손 투수의 희소성을 뜻하는 동시에 ‘구속’은 재능의 영역이라는 함의를 담았다. 반면, 제구는 기술의 영역이고, 많이 던지면(열심히 노력하면) 발전시킬 수 있는 것으로 여겨져왔다.

그런데 이는 최근 수년간 급격하게 이뤄진 일본 투수들의 구속 증가를 설명할 수 없다. 일본에서 갑자기 ‘재능’들이 태어난 것은 아니다. 구속 역시 노력의 영역이고, 사실은 제구보다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체격과 체력, 몸 움직임의 스피드는 물론이고 온몸 각 요소의 밸런스를 잡는 지루한 반복이 필요하다. 구속을 높이고, 구위를 강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많은 훈련과 연습이 제구 못지않게 필요하다.

3. 제구는 오히려 (귄위를 위한) 정치다.

‘제구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물으면 대부분 “많이 던져봐야 한다”고 답한다. 수학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에 ‘문제를 많이 풀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 게다가 숫자로 찍히는 구속과 달리 제구는 아직까지 ‘감’으로 평가하는 대상이다.

제구 집착은 코칭(교육)의 실패다. 특정 기술 발전을 위한 구체적인 방향과 방법을 제시하지 못한 채 훈련량을 강조하는 것은 과거 급진적 산업화 시절, 노동량으로 생산성을 높이던 데 멈춰 있다는 방증이다.

더 문제는 훈련량에 대한 강조가 코칭(교육)의 권위를 유지하는 정치적 수단이라는 점이다. 관리와 지시 혹은 감시로 연결되는 오래된 과거 노동의 흔적이다. 이를 통한 생산성 증가는 착시이고, 때로 이렇게 쥐어짠 노동이 혁신으로 포장되기도 한다.

4. 수능은 (어쩌면) 제구다.

여전한 제구 강조는 ‘야구’라는 종목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 야구만 문제가 아니다. 대입수학능력시험(수능)도 비슷한 길을 가고 있다. 1993년 처음 치러진 수능은 지식과 정보 수용의 핵심 경쟁력(구속) 대신 문제 풀기 기술(제구) 테스트가 되고 있다. 수많은 문제 풀이를 통해 얼마나 구석으로 잘 던지느냐를 겨루고, 등급을 매기는 장치다.

올해도 55만여명이 만루 위기의 투수처럼 내몰렸다. 구석으로 공을 던지려다 밀어내기 볼넷을 허용하는. 그리고 또 강요받는다. “더 많은 문제를 풀어야 해.”

이용균 콘텐츠랩에디터

이용균 콘텐츠랩에디터

  • AD
  • AD
  • AD

연재 레터를 구독하시려면 뉴스레터 수신 동의가 필요합니다. 동의하시겠어요?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콘텐츠 서비스(연재, 이슈, 기자 신규 기사 알림 등)를 메일로 추천 및 안내 받을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레터 구독을 취소하시겠어요?

뉴스레터 수신 동의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안녕하세요.

연재 레터 등록을 위해 회원님의 이메일 주소 인증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시 등록한 이메일 주소입니다. 이메일 주소 변경은 마이페이지에서 가능합니다.
이메일 주소는 회원님 본인의 이메일 주소를 입력합니다. 이메일 주소를 잘못 입력하신 경우, 인증번호가 포함된 메일이 발송되지 않습니다.
뉴스레터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로 인증메일을 발송했습니다. 아래 확인 버튼을 누르면 연재 레터 구독이 완료됩니다.

연재 레터 구독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경향신문 홈으로 이동
뉴스레터 구독
닫기

전체 동의는 선택 항목에 대한 동의를 포함하고 있으며, 선택 항목에 대해 동의를 거부해도 서비스 이용이 가능합니다.

보기

개인정보 이용 목적- 뉴스레터 발송 및 CS처리, 공지 안내 등

개인정보 수집 항목- 이메일 주소, 닉네임

개인정보 보유 및 이용기간-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단, 관계법령의 규정에 의하여 보존할 필요가 있는 경우 일정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관할 수 있습니다.
그 밖의 사항은 경향신문 개인정보취급방침을 준수합니다.

보기

경향신문의 새 서비스 소개, 프로모션 이벤트 등을 놓치지 않으시려면 '광고 동의'를 눌러 주세요.

여러분의 관심으로 뉴스레터가 성장하면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매체처럼 좋은 광고가 삽입될 수 있는데요. 이를 위한 '사전 동의'를 받는 것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광고만 메일로 나가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뉴스레터 구독
닫기

닫기
닫기

뉴스레터 구독이 완료되었습니다.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닫기

개인정보 이용 목적- 뉴스레터 발송 및 CS처리, 공지 안내 등

개인정보 수집 항목- 이메일 주소, 닉네임

개인정보 보유 및 이용기간-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단, 관계법령의 규정에 의하여 보존할 필요가 있는 경우 일정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관할 수 있습니다.
그 밖의 사항은 경향신문 개인정보취급방침을 준수합니다.

닫기
광고성 정보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의 새 서비스 소개, 프로모션 이벤트 등을 놓치지 않으시려면 '광고 동의'를 눌러 주세요.

여러분의 관심으로 뉴스레터가 성장하면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매체처럼 좋은 광고가 삽입될 수 있는데요. 이를 위한 '사전 동의'를 받는 것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광고만 메일로 나가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닫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