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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시민의 것이다

입력 2025.11.20 19:58

수정 2025.11.20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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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를 좋아한다. 나이가 들면서 걷는 맛을 조금은 더 알게 된 것 같다. 주말에는 서울 주변 둘레길을 찾지만, 주중 점심에는 틈날 때마다 서울 시내를 걷는다. 청계천도 있지만 종로·을지로 등 오래된 거리를 더 선호한다. 서울극장·단성사·피카디리·대한극장 등 단관 극장 시절 개봉관이 옹기종기 모여 있던 종로에서 을지로, 충무로까지 이어지는 길은 옛 풍경과 크게 다를 바 없어 좋다. 을지로3가에서 명동성당으로 이어지는 길은 단풍이 많아 가을에 걷기 적합한 것 같다. 경제·문화 선진국에 오른 한국의 오늘을 상징하듯 날이 갈수록 높아지는 고층 빌딩 뒤편의 옛 거리들은 도시의 여백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운상가도 즐겨 찾는다. 외형은 낡았지만, 내부엔 아기자기한 공간이 많다. 전자부품 상점들과 카페·서점 등이 무질서한 듯 무심한 듯 섞여 있다. 세운상가와 청계상가 등의 3층을 잇는 1㎞의 공중보행로는 짧은 산책코스로 지인들에게 추천했다. 철거를 앞둔 상가를 삶의 터전으로 삼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황정은 작가의 <백의 그림자>를 읽은 뒤 세운상가라는 공간이 더 친숙하게 느껴졌다. 광화문광장도 어슬렁거리기 좋다. 많은 직장인이 그렇듯 기자도 점심시간에 자주 광화문광장을 배회하면서 마음을 다스린다,

그런데 도시 곳곳의 여백을 언제까지 즐길 수 있을까 걱정이 든다. 입맛대로 서울을 재구성하겠다는 한 사람의 고집 때문이다. 서울시장은 번쩍번쩍한 고층 빌딩으로 뒤덮인 도시를 최고의 선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서울시가 세계유산인 종묘에서 불과 170m 떨어진 세운4구역 재개발지구에 최고 145m의 초고층 건물을 허용하는 규제완화를 한 것이 대표적이다. 기존 상한선 71.9m에서 두 배 넘게 상향한 것이다. 종묘 경관 훼손 비판에도 아랑곳없다. 전임 시장이 보존하기로 했던 세운상가도 일찌감치 철거방침을 정했다.

그는 광화문광장도 바꾸려 한다. 한국전쟁 참전국들에 감사를 표하기 위한 ‘감사의 정원’을 짓겠다면서, 받들어총 모형의 6·25m 돌기둥 23개를 세우겠다고 했다. 광장의 미관을 해치는 것은 물론 광장을 지키고 있는 이순신 장군과 세종대왕께도 죄송한 일이다. 그의 뜻대로 감사의 정원이라는 게 지어진다면 광장은 아스팔트 보수세력들로 채워지고, 휴식의 공간은 이념의 공간으로 변질될지 모른다.

서울시는 2022년 10월 시장이 프랑스 파리, 스위스 로잔, 스페인 마드리드,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등으로 출장을 떠난다는 보도자료에 이렇게 썼다. “이번 출장에서 도시건축 시스템부터 수변·생태가 어우러진 도심 개발 등 유럽의 다양한 사례를 통해 멋스러운 도시, 세계인이 살고 싶고 찾고 싶고 투자하고 싶은 서울을 만들기 위한 정책 구상을 제시한다는 계획이다.” 서울은 세계인이 살고 싶지도, 찾고 싶지도 않은 도시며 멋스럽지도 않은 도시이므로, 유럽의 도시들처럼 바꿔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그래서 말 많고 탈 많은 한강버스를 밀어붙이려 하는가.

하지만 K컬처 덕분에 서울은 세계인들이 찾는 도시가 됐다. 한복 차림으로 경복궁과 광화문광장을 거니는 외국인을 많이 봤다. 서울 한 달살이도 많은 외국인의 버킷리스트에 있다고 한다. 이들이 보고 싶은 건 고층 빌딩이 아니라 누추할지언정 서울의 역사가 배어 있는 뒷골목일 것이다. 유럽 도시의 유럽다움처럼 서울도 서울다움이 있어야 한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할 때 서울다움은 극대화된다고 믿는다. 서울을 재구성하겠다는 발상은 정치적 치적을 쌓고, 대권 발판으로 삼으려는 사적 욕망으로밖에 비치지 않는다. 서울은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서울 시민의 것이며, 대한민국 국민의 것이다. 그럼에도 뜻대로 해야겠다면, 시장이 좋아하는 주민투표 등 여론에 묻는 과정을 거치길 바란다.

<백의 그림자>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슬럼이라느니, 라는 말을 들으니 뭔가 억울해지는 거예요. 차라리 그냥 가난하다면 모를까. 슬럼이라고 부르는 것이 마땅치 않은 듯해서 생각을 하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언제고 밀어버려야 할 구역인데, 누군가의 생계나 생활계, 라고 말하면 생각할 것이 너무 많아지니까, 슬럼, 이라고 간단하게 정리해버리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에게는 쓸어버려야 할 대상이 누군가에게는 생활 터전이며, 누군가에게는 기억의 공간일 수 있다. 다시 말하지만 서울은 한 사람의 것이 아니다. 무모한 추진력으로 시대착오적인 개발을 밀어붙이고 있는 서울시장에 대한 브레이크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용욱 문화에디터 겸 문화부장

이용욱 문화에디터 겸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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