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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과 파격, 모두를 아우르는 시스템

입력 2025.11.20 20:05

수정 2025.11.20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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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22일 개봉한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이 마침내 2025년 영화 흥행 순위 정상에 올랐다. 11월19일 기준 누적 관객 수 563만명. 상반기 인기를 끌었던 웹툰 원작 <좀비딸>과 같은 관객 수다. 하지만 <귀멸의 칼날>은 여전히 하루 1만명 이상의 관객이 들고 있어, 곧 단독 1위가 될 예정이다.

올해 영화 흥행 순위에서 흥미로운 점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인기다. 지난 9월24일 개봉한 <체인소맨: 레제편>은 312만명으로 6위이고, 3월 개봉 <극장판 진격의 거인 완결편 더 라스트 어택>은 94만명이다. 그 외에 <명탐정 코난: 척안의 잔상> <극장판 짱구는 못말려: 초화려! 작열하는 떡잎마을 댄서즈> <극장판 도라에몽: 진구의 그림이야기> 등 익숙한 일본 애니메이션들이 10만 넘는 관객을 기록했다.

돌이켜보면, 일본 애니메이션은 한국에서 늘 인기였다. 1967년 TBC의 한·일 합작 <황금박쥐>를 시작으로 1970년 <우주소년 아톰> 그리고 <마징가 Z>와 <요술공주 샐리> 등 일본 애니메이션은 세대를 넘어 한국 대중문화의 기저에 있었다. 1980년대에 폭력적이라며 로봇 애니 방영을 금지했어도 큰 영향은 없었다. 1990년대에는 <드래곤 볼>과 <슬램덩크> 중심으로 일본 만화 시장이 들끓었고 애니메이션도 화제였다. 다만 극장용 애니메이션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파괴력이 약했다. <명탐정 코난>과 <도라에몽> 등 아동 대상 애니 정도가 쏠쏠한 성적을 올렸다.

후지모토 다쓰키의 단편 8개를 모은 애니메이션 <후지모토 타츠키 17-26>. 후지모토의 기괴하고 도발적인 작품 세계를 잘 보여준다. 사진 크게보기

후지모토 다쓰키의 단편 8개를 모은 애니메이션 <후지모토 타츠키 17-26>. 후지모토의 기괴하고 도발적인 작품 세계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흐름은 변한다. 2023년 개봉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490만명을 기록했다. 1990년대에 만화 <슬램덩크>에 열광했던 3040 관객이 찾았고,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 관객들까지 끌어들였다. 걸작은 시대를 초월해 감동을 주고, 잘 만든 애니메이션은 아이들만 보는 오락이 아니라 시대를 초월하는 ‘시네마’가 될 수 있음을 입증한 것이다.

<귀멸의 칼날: 무한성편>은 소년만화의 ‘왕도’의 길을 걷는 작품이다. 한때 600만부를 발행했던 만화 주간지 ‘소년점프’는 <드래곤 볼> <원피스> 등 우정과 노력, 승리의 소년만화로 1980년대 이후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강력한 적에 맞서 함께 싸우면서 친구가 되고, 승리를 바탕으로 성장해 더 강한 적과 맞서는 서사는 진부해 보일지라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귀멸의 칼날>은 가족애를 바탕으로 직관적인 선악 구도와 대결 그리고 매력적인 캐릭터를 변주해 한·일 양국에서 올해 최고의 흥행작이 되었다. 고전적 서사의 힘은 2025년의 대중에게도 유효하다.

<귀멸의 칼날>이 왕도를 걷는다면, <체인소맨>은 개성적인 아웃사이더다. <귀멸의 칼날>의 ‘탄지로’는 혈귀를 물리치고 여동생을 인간으로 되돌리겠다는 목적이 분명하다. <체인소맨>의 ‘덴지’는 그저 배불리 먹고, 사랑하고, 오늘을 잘 사는 것이 중요하다. 원초적이고 개인적인 욕망이 덴지를 움직인다. <체인소맨>의 작가인 후지모토 다쓰키의 세계는 기이하고 불친절하다. 플롯은 예상을 배반하고, 연출은 B급 영화처럼 거칠다. 노력하면 반드시 성공한다는 전통적인 서사를 믿을 수 없는 시대, 상하좌우 엉망진창인 세상에서 오늘의 욕망에 충실한 덴지는 역설적으로 더 큰 공감과 해방감을 준다. 젊은층이 열광하는 이유다.

지난해 9월5일 개봉해 30만명이 본 <룩 백>과 올 10월24일부터 메가박스에서 상영한 <후지모토 타츠키 17-26>은 후지모토 다쓰키의 기이한 세계를 보여준다. SF, 판타지, 일상물을 넘나드는 도발적인 상상력은, 날것의 매력으로 마니아를 끌어들이고 점점 확장해 나간다. 동시에 후지모토의 세계 밑바닥에는 좋아하는 것에 대한 진심과 열정이 진하게 깔려 있다.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 산업은 전형적인 성공 공식을 따르는 메이저만 편애하지 않는다. <체인소맨>처럼 기괴하고 마이너한 감성의 작품도 연재 기회를 얻고, 독자의 반응을 얻으면 과감하게 애니메이션으로 뻗어간다. 메이저와 마이너, 왕도와 사도가 서로를 배척하지 않고 공존하며 거대한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힘은 보편적인 것과 실험적인 것 모두를 품어내고, 지원하며, 성공으로 이끄는 시스템 자체다. 성공을 부러워하며 ‘성공 법칙’만 따라 하지 말자. 결국은 다양성이고, 도전이다.

김봉석 문화평론가

김봉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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