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원·달러 환율의 불안과 함께 집중 조명되는 것이 바로 엔화 약세라고 할 수 있다. 불과 2개월여 전만 해도 달러당 145엔을 하회했던 엔·달러 환율이 달러당 157엔 수준까지 단기에 급등했다. 엔화 약세가 심화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그 원인으로 새로 일본 총리로 취임한 ‘포스트 아베’, 다카이치 사나에의 엔화 약세 정책에 대한 기대 강화가 거론되고 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여파로 일본은 극심한 내수 침체와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으로 인한 슈퍼 엔고로 수출의 동반 부진을 겪은 바 있다.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2012년 아베 신조가 총리로 취임한 이후 내수 부양 차원에서의 디플레이션 우려 해소, 그리고 수출 부양 차원에서 엔화 약세를 유도하기 위한 과감한 엔화 유동성 공급 정책이 시행된다. 이를 ‘아베노믹스’라 부르는데 당시 달러당 80엔을 하회하던 엔·달러 환율이 지난해에는 달러당 162엔을 기록, 10여년간 기록적인 상승세(엔화 약세)를 나타냈다.
아베노믹스로 대변되는 엔화 약세에 대한 기대는 다카이치 총리가 취임한 이후 빠르게 확산되는데 서두에서 언급한 것처럼 실제 엔화 약세 기조가 현실화되었을 뿐 아니라 우에다 가즈오 일본은행 총재와 회동한 것을 전후로 엔화 강세를 유발할 가능성이 높은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에도 제동이 걸리면서 그런 기대를 더욱 강화하는 모습이다. 또한 과감한 미국의 관세 영향으로 인한 수출 부진으로 6개 분기 만에 역성장을 한 일본 경제를 끌어올리기 위해 기존 이시바 정권의 부양책 금액을 크게 상회하는 20조엔 수준의 재정 부양책을 시행하기로 하는 등 엔화 유동성 공급을 통한 경기 부양에 적극적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에 엔화 약세 기조가 더욱 공고화될 수 있으며 엔화 약세를 바탕으로 한 일본의 환율 전쟁 여파가 한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의 수출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 역시 큰 편이다.
그러나 다카이치의 정책이 일정 수준의 엔화 약세를 자극할 수는 있지만 아베노믹스 당시와 같은 극단적 엔화 약세를 촉발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2012년 아베노믹스가 본격화되던 당시 엔·달러 환율은 달러당 75엔 수준으로 역사상 엔화가 가장 강한, 이른바 ‘슈퍼 엔고’ 상황이었다. 참고로 당시 원·엔화 환율은 100엔당 1500~1600원 수준을 기록했는데, 현재 940원 수준까지 하락한 원·엔화 환율을 보면 당시 엔화가 얼마나 강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게 한다. 지금은 당시와는 달리 엔화 약세가 매우 두드러지는데 현 상황에서 추가적으로 강한 엔화 약세를 자극하기에는 몇 가지 부담거리가 있다.
우선 물가에 대한 부담이다. 엔화 약세는 일본의 수입 물가를 끌어올리게 되며, 이는 일본 내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인다. 현재 일본의 소비자물가지수는 약 3% 수준을 나타내며 한국의 2.4%를 뛰어넘은 바, ‘디플레이션의 나라’라는 표현이 무색할 만큼 높은 물가 부담을 나타내고 있다. 여기서 엔화 약세 기조가 심화되면 인플레이션 부담이 더욱 커질 수 있는데, 이는 일본 서민 경제에 타격을 줄 뿐 아니라 물가 안정을 목표로 하는 일본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높인다. 고물가로 인한 금리 상승 가능성을 반영하며 일본 국채 금리는 17년 만에 최고치로 뛰어오른 상황이다.
또한 과도한 엔화 약세에 대한 다른 나라들의 반발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이다. 실제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을 앞두고 일본을 방문한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일본 재무상과 회담을 하면서 인플레이션 억제에 초점을 맞춘 건전한 경제정책을 펼칠 것을 제안했다. 과도한 저금리 유지 및 엔화 약세 유도를 견제하는 차원의 발언인 것이다.
아베노믹스를 떠올리게 하는 다카이치의 정책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 및 고금리 부담, 그리고 다른 국가들과의 마찰 등 엔화 약세 부작용은 과거 아베 총리 재임 당시와 같은 극단적 엔화 약세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볼 수 있다.
오건영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 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