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빙 <친애하는 X>에서 백아진 역을 맡은 배우 김유정 비하인드 스틸 컷. 티빙 제공
백아진(김유정)을 알고 지낸 사람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이런 천사가 없다’고 철석같이 믿거나, ‘저 정도면 악마’라고 혀를 내두르거나. 27일 최종화(10화)까지 공개된 티빙 오리지널 드라마 <친애하는 X>는 결코 선하지 않은 주인공, 톱스타 백아진의 불우한 과거와 화려한 성공, 그리고 파멸을 그린다.
부모로부터 방치와 학대를 당한 유년기. 백아진은 남을 이용하는 법을 익힌다. 자신을 애정 혹은 동정하게 만드는 건 쉽다. 거슬리는 사람은 약점을 잡아 눈앞에서 치워버리면 된다. 되도록 직접 응징하기보다 자신을 아끼는 이들을 살살 꼬드겨 대신 행동하게 한다. 백아진이 짠 판에서 벌어진 일은 협박, 살인 방조, 살인 등이다.
티빙 <친애하는 X>에서 백아진 역을 맡은 배우 김유정 비하인드 스틸 컷. 티빙 제공
눈 깜빡 않고 사람들을 장기말처럼 이용하는 백아진은 분명 죄 많은 인물이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백아진을 아주 응원하지는 못하더라도 ‘망하지는 않기를’ 바라게 된다.
백아진 역을 맡은 배우 김유정의 공이 크다. 동명의 원작 웹툰 설정만큼 아름다운 외모가 개연성을 만들기도 하지만, 더 인상 깊은 건 그의 연기다. 김유정의 백아진은 시청자조차도 “널 위해 뭐든 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게 사랑스럽다가도, 가면을 벗고 돌변할 때는 위압적인 분위기를 내뿜는다. 또 혼자 있을 때의 공허한 낯은 안쓰러움을 자아낸다. 그 다채로운 얼굴은 <친애하는 X>의 흡인력을 높인다.
티빙 <친애하는 X>에서 백아진 역을 맡은 배우 김유정. 티빙 제공
영화 <우아한 거짓말>(2014) 이후 오랜만에 악역을 연기한 김유정은 ‘나는 아진이를 응원하지 않는다’는 마음을 잊지 않으려 했다고 한다. 지난 25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이 작품이 “‘내가 이 아이를 응원할 수 있는가,’ 그러나 ‘이 아이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가’라는 상반된 질문을 계속하게 했다”고 했다. 양가감정 속에서 김유정은 “마냥 미워할 수도, 응원할 수도 없는 경계를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친애하는 X>가 공개되고, 백아진을 응원하는 시청자 반응에 그는 “의아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편집된 방영본을 보고 납득했다. 김유정은 “촬영 당시에는 몰랐는데, 화면으로 표현된 걸 보니 백아진이 애처로워 보일 수 있겠더라”며 “시청자들이 아진에 대해 ‘혼란스러운 감정’을 가졌으면 했던 감독님의 소망이 잘 반영된 것 같다”고 했다. <친애하는 X>는 tvN <도깨비>, <미스터 션샤인>, 넷플릭스 <스위트홈> 등을 연출한 이응복 감독이 연출에 참여했다.
백아진을 마냥 손가락질하기 어려운 건, 악행의 대상이 대부분 그를 먼저 괴롭힌 이들을 향한다는 데 있다. 대학 등록금을 빼앗은 것도 모자라, 백아진이 아르바이트해 번 돈을 주기적으로 받으러 오는 도박중독자 아버지 백선규(배수빈)가 대표적이다. 김유정은 “아진이 반격할 때 카타르시스를 느끼기도 했다”며 “평상시에 느끼기 힘든 감정을 극한으로 쓰는 스트레스도 공존했다”고 했다.
티빙 <친애하는 X>에서 톱스타가 된 백아진(김유정)의 모습. 티빙 제공
티빙 <친애하는 X>에서 백아진 역을 맡은 배우 김유정. 티빙 제공
앞서 백아진의 아역을 맡은 배우 기소유의 부모는 인스타그램을 통해 “(김유정 배우가) 소유에게 꼭 상담사분 붙여주셔야 한다며 너무 걱정했다고 한다. 리딩 회식 때도 ‘힘든 일 있으면 꼭 연락하라’고 다가오셨다”는 미담을 전한 바 있다. 김유정은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는 행동을 표현해야 하는 작품이었기에 사전부터 심리상담가 분들께 자문도 많이 구했었다”며 “그 과정에서 아역 배우가 (심리 상담)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다. 저도 필요하면 요청하겠다고 감독님께 말씀드렸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4살에 CF 모델로 시작해 아역 배우로 활동한 경험에서 우러나온 제안이기도 하다. 그는 “어려서 촬영할 때는 못 느꼈지만, 나중에 많이 지나고 보니 무의식적으로 쌓인 상처나 자극적인 감정이 잔상처럼 있긴 하더라”며 “현장에서 바로 상쇄해줄 장치가 있으면 좋겠다고 많이 생각했기에 요청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김유정은 20여 년의 연기 인생을 돌아보며 “보람차다”고 했다. “잘 해왔고 잘 할 거다.” 가족과 팬들이 자주 건네는 그 말이 김유정에게는 큰 힘이다. 그는 “가끔 저도 쫓기는 감정이 들거나 불안할 때도 있는데 그런 말을 들으면 ‘차곡차곡 잘 해왔으니, 잘할 수 있을 거야’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마음이 끌리는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은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나, 메시지가 있는 작품에 끌리는 것 같아요. 캐릭터도 중요하겠지만, 이야기 안에서 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에 의미를 두는 중입니다. 다양하게 해보면 좋겠죠.” 김유정은 차분하고도 또렷하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