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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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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 ‘일/자리’를 다시 정의해야 한다

입력 2025.11.30 19:53

수정 2025.11.30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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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5, 제미나이 3.0 등 인공지능(AI) 기술이 기하급수적으로 발전하면서 기존 일자리를 없앨 것이란 공포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 상황에서 미국 MIT가 지난 26일(현지시간) 발표한 ‘프로젝트 아이스버그’ 연구가 미국에서 큰 관심을 받았다. AI와 노동을 바라보는 관점을 근본적으로 뒤흔들었기 때문이다.

연구팀이 개발한 ‘아이스버그 지수’는 미국 1억5100만명 노동자의 직무를 분석, AI가 현재 기술 수준으로 대체 가능한 업무의 규모를 산출했다. 결과는 충격적이다. 미국 노동시장의 11.7%, 연간 1조2000억달러 규모의 임금이 이미 AI 노출 상태에 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동안 우리가 목격해온 변화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실리콘밸리의 대량 해고, 기술직 구조조정 등 눈에 보이는 충격은 전체 노출의 2.2%에 그쳤다. 5배 규모의 변화는 수면 아래에서 조용히 진행됐다. 인사, 물류, 재무, 사무행정 같은 화이트칼라 업무가 그 중심이다.

이 연구가 드러내는 핵심 통찰은 명확하다. AI는 ‘직업(job)’이 아니라 ‘일(task)’을 대체한다. 직업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 직업 안에서 사람이 수행하던 업무가 AI로 이동하고 있다. 일명 ‘일과 자리의 디커플링(탈동조화)’ 현상이다. 같은 자리에 앉아 있어도 실제로 하는 일의 내용과 양이 달라지는 구조적 분리다.

MIT 연구는 일과 자리가 탈동조화되는 현상을 데이터로 증명했다. 지금 AI가 세상을 바꾼다고 하지만 실제 경제와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을 크게 느끼지 못할 수 있다. GDP, 실업률 같은 전통 지표와 AI 노출도의 상관관계는 0.04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경제는 성장하고 실업률은 낮아도, 자리 안의 일이 AI로 이동하는 변화는 기존 통계로 전혀 포착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AI가 수행하는 업무를 포착하지 못하는 기존 경제지표의 구조적 한계다.

한국에 주는 함의는 더욱 크다. 한국은 ‘자리를 얻는 것’에 최적화된 구조다. 공무원 시험, 대기업 입사, 직급 중심 경력 설계, 정년과 호봉제. 한국에서 일자리는 ‘일’이 아니라 ‘자리’를 의미해왔다. 그러나 AI는 자리를 보지 않는다. 일을 통해 사람을 대체한다.

한국 경제가 AI에 가장 취약한 업무 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은 더 큰 문제다. MIT 연구에 따르면 AI 노출은 실리콘밸리 같은 기술 중심지가 아니라 금융, 행정, 백오피스 집중 지역에서 더 높게 나타났다. 델라웨어와 사우스다코타가 캘리포니아보다 더 해고 위험이 컸다.

한국 정부는 여전히 ‘일자리 창출’을 말한다. 그러나 지금 일어나는 변화는 자리를 만들어도 그 안에 사람이 할 일이 줄어드는 현상이다. 자리와 일이 함께 만들어지던 시대는 끝났다. 신입 채용은 축소되고, 주니어 포지션은 사라지며, 경력직 중심으로 인력 구조가 재편된다. 미국에서 22~25세 초기 경력직의 AI 노출 직종 고용이 13% 감소했다는 데이터가 이를 뒷받침한다.

교육 시스템과 직무 교육 모두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하는 이유다. 직업 단위가 아닌 스킬 단위의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가’가 아니라 ‘AI가 대체하기 어려운 어떤 능력을 기를 것인가’가 질문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복잡한 문제 해결, 대인 관계 관리, 산업별 전문 지식처럼 맥락과 판단이 필요하다. 반복적이고 정형화된 업무, 문서 중심 작업, 규칙 기반 처리는 AI에 가장 먼저 대체된다.

AI 시대 노동 재편은 이미 시작됐다. 기존 시각과 데이터로 안 보일 뿐이다. 자리는 유지되지만 일이 비어가는 조용한 변화가 진행 중이다. 일과 자리를 동일시하던 사고방식으로는 이 변화를 읽을 수 없다. 일을 다시 정의하는 사회, 조직, 사람만이 다음 시대를 준비할 수 있다.

손재권 더밀크 대표

손재권 더밀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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