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교롭게도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의 영장실질심사는 12·3 불법계엄 1년이 되기 하루 전인 2일 열린다. 영장의 발부 여부는 3일 새벽쯤 나올 것이다.
그러나 영장 발부 여부보다 중요한 질문이 있다. 불법계엄 후 1년여 탄핵, 대통령 선거 등 수많은 일이 있었지만 일이 복잡하게 흘렀을수록 질문은 간명하게 만들어야 한다. 계엄 해제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던 수많은 의원,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추경호 의원이 반드시 답해야 할 질문이다. “당신들은 왜, 그날 국민의힘 당사 혹은 국회에 있었는데도 계엄 해제 표결에 참여하지 않았는가?”
추 의원은 불법계엄 당시 의원총회 장소를 바꾸며 혼선을 초래했다는 의심을 받는다. 그 결과 108명의 국민의힘 의원 중 계엄 해제 표결에 참여한 의원은 18명뿐이었다. 추 의원은 “그 누구에게도 계엄 해제 표결 불참을 권유하거나 유도한 적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시민들은 왜 국민의힘 다수 의원이 표결에 불참했는지 명확한 해명을 듣지 못했다.
전시나 사변이 아니었는데 대통령은 계엄을 선포했고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 군인들이 들이닥쳐 민주주의를 유린하려 했다. 그때 계엄이 잘못됐다고 판단한 의원들은 국회 담을 넘어 계엄 해제 표결에 참여했다. 표결 불참 의원 90명 중 김대식, 김희정, 송언석, 신동욱, 임이자, 정희용, 조지연, 추경호 의원은 심지어 국회에 있었다. 이 밖에 나경원 의원 등 30여명은 국회에서 10분 거리인 국민의힘 중앙당사에 있었다. 한동훈 당시 대표가 계엄 해제 표결을 위해 국회 본회의장으로 와달라고 했는데도 말이다.
추 의원은 이미 계엄 선포 직후 윤석열 전 대통령과 통화를 한 것만으로도 의심스럽다. 나경원 의원도 마찬가지다. 양측이 진술을 거부하는 한 표결 불참의 동기를 알 수 없지만 정치인에게 중요한 것은 행위의 의도보다 행위의 결과다.
맞지 않길 바라면서 추정되는 답을 말해본다. 계엄이 성공할까봐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것 아닌가. 당시 집권여당으로 대통령의 계엄 시도가 성공했는데 계엄 해제 표결에 참여했을 경우 불이익이 커지는 걸 두려워했던 것 아닌가. 계엄이 성공하길 바랐던 것이라고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내란 특검은 추 의원이 “계엄해서 잘됐으면 이런 얘기도 안 나왔을 텐데”라고 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추 의원의 계엄 긍정 의사가 알려진 것은 처음이다. 추 의원은 “기억이 없다”고 해명했지만 충격적이다.
계엄이 성공했을 경우 유력 정치인들이 벙커로 잡혀 들어가고 비판언론으로 찍혀 단전·단수 대상으로 지목된 경향신문 등 언론사들은 계엄사령부 지시를 받았을 것이다. 시민들은 그런 상황을 두고 보지 않았을 것이고 광장에 수백만의 사람들이 모여 군대와 대치했을 것이다. 윤석열의 시도가 성공했다면, 희생자가 나왔을 가능성은 상당히 컸을 것이다.
계엄이 성공할 경우를 대비했든, 작게는 계엄의 실패를 막아주려 했든, 계엄의 성공을 기대했든 중요하지 않다. 민주주의 위기 앞에서 정치인은 결과로 책임지는 것이다. 계엄을 적극적으로 막으려 하지 않았던 것은 이미 역사에 기록됐다. 불법계엄 1년, 국민의힘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아야 한다. 그것이 시민들에게 보이는 최소한의 도리다.
임아영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