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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식민지, 거래되는 수면

입력 2025.12.01 19:54

수정 2025.12.01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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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도시의 불빛이 꺼지지 않는 시간. 누군가는 제주도의 어두운 도로 위에서 배송트럭을 몰고, 누군가는 빵 공장의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서 있다. 최근 쿠팡과 SPC에서 들려오는 연이은 부고는 이 시간의 적막을 깨트린다. 제주에서 고정 야간근무를 하던 30대 배송기사의 사망, 6일 연속 야간근무 후 숨진 SPC 60대 노동자, 그리고 올해 쿠팡 물류센터에서 보고된 복수의 심혈관계 사망 사례들.

최근 ‘중대재해전문가넷’은 이러한 일련의 죽음을 두고 “심야노동과 연속근무, 회복 부족이 겹쳐 발생한 예고된 재해”라고 규정했다. 나는 이들의 진단에 동의하며, 이 죽음의 기저에 깔린 한국 사회의 ‘생체 리듬의 정치학’에 주목한다.

사고 조사를 들여다보면, 한국 사회가 과로사를 대하는 기만적인 태도가 보인다. 사고의 원인을 운전 미숙이나 기계 결함으로 돌리지만, 본질은 생물학적 폭력이다. 국제암연구소(IARC)는 야간작업을 ‘2군 발암물질’로 지정했다. 인간은 수만년간 진화시켜온 일주기 리듬에 따라 밤에는 쉬어야 하는 존재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시간 규율이 이 생물학적 한계선을 넘어서는 순간, 노동자의 몸은 ‘병리학적 현장’이 된다.

최근의 사망 사고들은 단지 ‘피곤해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 24시간 멈추지 않는 앱과 알고리즘이 노동자의 신체를 ‘접속 상태’로 강요하는 과정에서, 임계점을 넘은 육체가 붕괴한 결과다. 플랫폼 자본주의는 인간을 기계처럼 전원을 껐다 켤 수 있는 ‘대기 상태의 부품’으로 전락시켰다.

그렇다면 누가 이 위험한 새벽 2시에 깨어 있는가? 여기서 우리는 ‘수면의 계급화’라는 서늘한 진실을 마주한다. 고소득 전문직이 ‘양질의 수면’을 향유하며 내일을 준비할 때, 배송기사, 청소노동자 등 필수 노동자들은 깨어 있어야 한다. 수면은 더 이상 보편적인 생리 현상이 아니라 자원이다. 한국 사회의 편리함인 ‘새벽배송’은 사실 누군가의 ‘잠 잘 권리’를 헐값에 매입해 구축된 것이다. 이는 나의 편의를 위해 타인의 생체 리듬을 착취하는 ‘시간 주권’의 극심한 불평등을 보여준다.

이러한 착취가 가능한 이유는 한국 특유의 문화적 기제 때문이다. 첫째, ‘압축적 근대성’이 낳은 시간의 강박이다. 수백년에 걸친 서구의 근대화를 불과 반세기 만에 따라잡아야 했던 한국에서 시간은 정복해야 할 적이었다. “남들이 잘 때 뛰어야 한다”라는 논리는 밤을 휴식의 시간이 아닌, 선진국을 추격하기 위해 활용해야 하는 ‘잉여 시간’으로 전락시켰다. 밤샘 노동은 비효율이 아닌 ‘열정’으로 포장되었고, 우리는 밤을 잊은 채 질주하는 법을 내면화했다.

둘째, 외환위기 이후 고착화된 ‘생존주의’와 ‘건강의 현금화’다. 사회안전망이 붕괴된 각자도생의 시대,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당장의 ‘야간수당 1.5배’는 먼 훗날의 건강보다 시급한 생존의 동아줄이다. 자본은 이 절박함을 파고든다. 노동자가 자발적으로 자신의 수면과 건강을 팔아 소득을 보전하게 만드는 구조, 이것이 한국형 심야노동의 본질이다.

프랑스가 노동법전을 통해 심야노동을 ‘원칙적으로 예외적인’ 행위로 규정하고, 독일이 야간노동의 대가로 금전적 수당과 더불어 ‘유급 보상휴식’을 부여하도록 해 건강권을 최우선 원칙으로 삼는 것과 달리, 한국은 다른 길을 택했다. 우리는 성인 노동자의 심야노동을 제한 없이 허용하되, 이를 ‘통상임금의 50% 가산’이라는 금전적 보상 중심의 접근에 머물러 있다. 즉, 한국 사회는 노동자의 망가지는 생체 리듬에 가격표를 붙여 거래 가능한 상품으로 만들었다.

그 결과 노동자들은 ‘사회적 시차증’을 앓으며 ‘시간적 유배자’가 된다. 남들이 잘 때 일하고 일할 때 자야 하는 이들은 가족 및 지역사회와 시간을 공유하지 못한다. 시간적으로 격리된 심야노동자들은 물리적으로는 사회 안에 있으나, 관계적으로는 단절되어 고립된다. 이는 결국 가정의 해체와 사회적 소외라는 2차적 비용을 발생시킨다.

이제는 멈춰야 한다. ‘휴식’보다 ‘돈’을 지불하는 사회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밤은 자본의 이윤을 위한 시간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답게 회복해야 할 시간으로 돌려주어야 한다. 편리함이라는 달콤한 마취제에 취해 타인의 수면을 매수하고, 알고리즘의 속도에 맞춰 인간의 몸을 소모하는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영원히 잠들지 못하는 피로 사회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새벽 2시의 노동이 ‘성실함’이 아니라 ‘야만’으로 기록될 때, 비로소 죽음의 행렬을 멈출 수 있다.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김관욱 덕성여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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