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들이 삭발했다. 용산 대통령실 건너편에 농성장을 차리고 철야농성에 들어갔다. 유가족들의 요구는 단순하다. 지금까지 국토교통부 산하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사고조사위원회)의 조사가 사실상 ‘셀프 조사’에 불과했다는 점을 지적하며, 참사를 축소·은폐한 채 마무리하려는 12월4일 예정 공청회를 연기하라는 것이다. 유가족들은 “빠른 조사가 아닌 바른 조사를 원한다”.
조사위가 아닌 유가족 말 들어야
유가족들은 사고조사위원회에 ‘12·29 여객기 참사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특별법’ 제32조에 있는 규정대로 “사고 조사 상황 및 피해 지원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필요한 사항”을 요구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밀실 조사, 셀프 조사라는 말이 나오는 가운데, 이 조사위원회를 신뢰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이런 분위기가 반영되어 현재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에서는 ‘항공·철도 사고조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통과되기 직전이다. 사고조사위원회가 국토부 산하기관이므로 독립적이고 객관적으로 사고 원인을 조사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판단되어 조사위원회를 국무총리 산하로 옮기는 내용의 개정안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7월16일, 청와대 영빈관으로 4·16 세월호 참사, 10·29 이태원 참사, 7·15 오송 지하차도 참사, 12·29 여객기 참사 유가족 등 피해자 200명을 초청한 자리에서 머리 숙여 깊이 사과했다. 이 대통령은 “사고도 마음 아픈데 사고 후에 책임자인 정부 당국자의 이해할 수 없는 태도가 더 마음 아팠을 것”이라며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이 대통령은 이태원 참사와 오송 지하차도 참사 현장을 잇따라 방문해, 7월의 이 만남이 빈말이 아니며 재난 없는 나라, 생명과 안전이 지켜지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다짐을 행동으로 보였다.
하지만 세월호,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겪었던 배신의 과정을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들 또한 고스란히 겪고 있다. 가장 유력한 사고 원인으로 지목된 무안공항의 ‘둔덕’에 대한 조사마저 흐지부지하려는 태도를 보여온 사고조사위원회를 과연 누가 신뢰할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공청회를 강행하며 “유가족 발언 금지”를 통보했다. 오죽 답답했으면 무안공항에서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까지 올라와 농성장을 차리고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겠는가.
지금 국회에서 입법이 논의되고 있는 생명안전기본법안 제5조 제3항에는 피해자의 권리를 16가지로 정리해 열거하고 있다. 지금 사고조사위원회가 벌이는 행태는 이 법률안의 “사고 원인과 국가 등에 의한 안전사고 대응의 적정성에 대한 조사를 요구하고 그 조사 과정에 참여할 권리를 포함하는 진실에 대한 권리” 등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행위다.
당장 정부는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유가족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사고조사위원회나 국토부 관료들의 말이 아니라 고통 속에 눈물 흘리는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 지금 조사위원회가 보이는 행태는 “사고 후에 책임자인 정부 당국자의 이해할 수 없는 태도”가 아닌가.
재난 거버넌스 시민과 함께 구축해야
국회는 생명안전기본법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 정부 각 부처 산하에는 25개의 사고조사기구가 운영되고 있다. 국토부 산하의 항공철도사고조사위원회와 해양수산부 산하의 해양안전심판원은 상설 조사기구이지만, 이 두 조사기구도 독립성과 전문성을 의심받아왔다. 그 외에 23개 조사기구는 비상설적인 기구로 거의 용역 수준이라서 책임감도 별로 없다. 지금까지 반복적으로 재난참사를 경험하고도 “소 잃고 외양간도 안 고치는” 행태를 반복할 수 없다. 독립성과 전문성, 민주성, 그리고 이행 점검의 권한이 보장된 독립적 조사기구를 설치해야 사고 원인에 대한 조사도 제대로 하고, 재발방지 대책 마련이며, 이행 점검도 해나갈 수 있다. 재난참사가 날 때마다 유가족들이 단식하고, 삭발하고, 오체투지하는 과거를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
생명안전기본법을 제정한 뒤에도 재난안전체계를 전면적으로 점검하고, 재난안전체계를 새로 짜는 일이 뒤따라야 한다. 나아가 재난 거버넌스를 시민들의 참여 속에 구축해야 한다. 그래야 조금은 더 안전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
우리는 12·3 비상계엄을 시민의 힘으로 넘어 민주주의를 다시 확고히 세워가는 과정에 있다. 그런 와중에 피해자들이 차가운 길바닥에서 겨울바람을 맞으며 삭발과 농성으로 호소해야 하는 현실은 참으로 고통스럽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