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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된 ‘말발굽 이론’

입력 2025.12.01 20:11

수정 2025.12.01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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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빈의 두 번째 의견]수정된 ‘말발굽 이론’

1차원적 정치 지형이 2차원적 지형으로 급변하는 것은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는 급진 세력의 발흥 통한 급속한 변화로 귀결될까 아니면
기존 온건 세력의 혁신을 통한 안정 속 변화로 귀결될까
서로를 좌파, 우파로 몰아붙이면서 1차원에만 갇혀 있는
우리의 정치 및 담론 지형은 이 현상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

새로 선출된 조란 맘다니 뉴욕시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브로맨스’가 여러 사람의 주목을 끌었다. 맘다니 시장은 미국 민주당, 그것도 맨 왼쪽에 해당하는 민주적 사회주의자 그룹의 일원으로서 사회주의자로 자처하는 이이며, 트럼프 대통령은 주지하다시피 미국 정치 우경화의 선두에 있는 인물이다. 이 두 사람이 백악관에서 오랜 대화를 하고 나서 날 선 질문들을 던지는 기자들 앞에 나타나 화기애애하게 협력과 상호이해를 과시하는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놀라움, 심지어 충격까지 안겨주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과 맘다니 시장이 기성 정치·정치인들과 다른 정치를 펼치려 하는 점에서 공통점이 많다고 하였고, 어떤 이들은 J D 밴스 부통령이 이를 불편하게 여겨 자리를 피한 것이라고까지 하였다.

백악관에서의 일이야 각종 스턴트에 능통한 노회한 정치인과 능소능대의 재능을 보이는 신진 정치인의 깜짝 서커스라고도 볼 수 있지만, 더욱 중요한 점은 두 사람의 지지층이 일부 겹치기까지 한다는 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승리했던 뉴욕의 선거구들 중 무려 30%가 이번에는 맘다니 지지로 돌아섰다고 한다.

퀸즈의 자메이카 힐스는 트럼프가 승리한 곳이었지만 이번에는 맘다니가 무려 85%의 득표를 이루었다고 한다. 맘다니 시장 본인도 자신에게 투표한 이들의 10% 정도는 저번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를 찍었던 이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이번에 처음 나타난 것이 아니다. 이미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도 맨 왼쪽의 후보였던 버니 샌더스와 맨 오른쪽 후보였던 트럼프 사이에 그 지지자들이 상당히 겹쳐지는 양상이 나타난 바 있다.

언뜻 이해하기 힘든 이 맨 왼쪽과 맨 오른쪽 정치 세력의 근접 현상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이에 관련된 이론으로 ‘말발굽 이론’이라는 것이 있다. 흔히 여러 정치 세력의 이념적 스펙트럼을 전선 위 참새처럼 맨 왼쪽에서 맨 오른쪽까지 극좌, 중도좌파, 중도우파, 극우로 일렬로 늘어놓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맨 왼쪽으로 갈수록 오히려 맨 오른쪽과 더 닮아가게 되며 따라서 정치 지형은 쭉 뻗은 막대기로 생각하기보다는 맨 왼쪽과 맨 오른쪽이 근접해 있는 말발굽 모양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이론이었다. 이러한 생각은 이미 1930년대 유럽의 극좌·극우 정당을 관찰한 이들이 이야기했던 바이며, 특히 1960년대에 프랑스의 장피에르 파예가 좀 더 구체적인 이론으로 제시한 바 있었다. 하지만 이 이론은 주로 권위주의, 포퓰리즘적 선동, 폭력 사용 등의 현상적 특징을 근거로 한 것이지 정교한 정치 분석에 입각한 것으로 보기는 힘들며, 특히 좌파 정당과 우파 정당의 상이한 세계관과 이념 및 정책의 차이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널리 받아들여지는 이론이 되지는 못했다.

체제 전환기엔 정치 지형 2차원으로

그런데 이 ‘말발굽’이라는 형상을 항시적으로 고정된 것으로 놓는 대신 체제 전환기에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좀 더 역동적인 이론으로 바꾸어 놓는다면 어떨까? 체제 안정기에는 유럽의 경우 사회민주당이나 노동당과 같은 이름의 중도좌파 정당과 기독교민주당이나 보수당과 같은 이름의 중도우파 정당이 번갈아 집권하며 정치를 안정시킨다.

대다수 사람들이 현재의 사회제도 및 질서를 큰 불만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면, 현재 사회의 골간을 유지한 상태에서 그 운전대만 왼쪽 혹은 오른쪽으로 틀자고 하는 정당들이 번갈아가며 집권당이 되는 식으로 의회 정치가 운영되는 모습이다. 게다가 선거 때마다 중도좌파와 중도우파 정당을 오가는 ‘스윙보터’, 즉 부동층이 존재하므로 이 두 정당은 이념의 경직성을 버리고 사회 분위기에 따라 ‘우클릭’과 ‘좌클릭’을 번갈아가면서 선거에 임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현상유지’를 원하는 이들이 다수를 차지하게 되면 이에 근거하여 ‘중도합의’의 정치가 나타나게 되고, 극우와 극좌 세력은 그 왼쪽, 오른쪽 끝으로 밀려나게 된다. 정치 세력들의 분포는 이렇게 긴 막대기와 같은 1차원의 직선상에 각각 자리 잡게 된다.

하지만 체제 전환기가 되면 어떻게 될까? 근본적인 기술 전환이 벌어지면서 산업구조와 노동시장이 요동을 치고, 물가는 동요하고, 양극화가 극심해지고, 지정학적 조건과 대외 정책의 환경이 상전벽해의 변화를 맞으며, 사회·문화적인 갈등이 극에 달하며,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현재와 같은 상태로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한다고 외치기 시작한다. 이렇게 ‘현상타파’를 원하고 부르짖는 이들이 많아지면 정치 지형은 1차원의 직선이 아닌 2차원의 평면으로 변한다. 이념적인 좌우에 따라서 정치 세력을 분류하던 X축에 더하여 ‘현상유지냐 현상타파냐’라는 관점으로 정치 세력을 분류하는 Y축이 생겨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평온하던 시기의 정치 세력 분류 막대기는 그 왼쪽 끝과 오른쪽 끝이 휘어서 말발굽 모양, 최소한 반달 모양으로 변한다. 급진좌파와 급진우파는 각각의 방식으로 완전히 새로운 제도 및 질서를 외치는 ‘현상타파’ 세력이 되어 Y축의 바깥으로 멀어지게 되며, 중도 정당들은 기존의 정치 및 사회 질서를 최대한 유지하려 노력하는 ‘현상유지’ 세력이 되어 X축 위에 머물게 된다.

‘생계비 안정’ 싸고 현상타파 공명

대공황과 세계 정치의 변동으로 체제 전환기를 맞은 1930년대를 전후하여 나타난 여러 급진적 정치가와 정치 세력의 언뜻 이해하기 힘든 변화는 이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탈리아 사회당의 주요 지도자였던 무솔리니가 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파시스트 정당을 창설한 것도, 벨기에 노동당의 지도자로서 혁명적 사회주의자였던 헨드릭 드 만이 나치에 부역하는 민족사회주의로 당을 끌고 갔던 것도, 온건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였던 베르너 좀바르트가 나치를 지지하는 독일 국가주의자로 변했던 것도 이러한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번 뉴욕시장 선거를 전후하여 나타난 트럼프와 맘다니 그리고 두 사람의 지지자들이 보여준 모습을 과도하게 해석하는 것은 물론 금물이다. 두 세력의 세계관과 이념 및 정책은 결코 넘을 수 없는 큰 간격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흥미로운 현상이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전통적인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의 지지자들은 트럼프가 출마했을 때도 거부 반응을 보였지만 이번 뉴욕시장 선거에서는 맘다니에 대해서도 대단히 불편한 태도를 보이곤 했다. 백악관에서 트럼프와 맘다니 합동 기자회견이 열린 뒤 워싱턴포스트에는 아예 두 사람을 싸잡아서 하나로 몰아가는 내용의 글이 실리기도 했다.

반면 트럼프와 맘다니 두 사람은 기자회견에서 맘다니가 선거운동 기간 핵심적인 구호로 외쳤던 ‘생계비 안정’을 한목소리로 다시 강조하였다. 너무나 높아진 물가와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는 뉴욕의 생활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특단의 비상조치를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는 태도이다. 아마도 트럼프와 맘다니를 번갈아가며 찍은 많은 이들이(대부분 서민들일 것이다) 공명했던 것은 우파와 좌파를 가르는 무수히 많은 쟁점이 아니라 바로 이 부분이었을 것이다. 기성 권력과 기존의 제도 및 질서로 굴러가는 기성 정치로는 도저히 이 문제를 풀 수 없다는 ‘현상타파’의 요구가 아마도 그들의 외침이었을 것이다. 백악관에서의 떨떠름한 두 사람의 ‘브로맨스’는 이러한 맥락에서 나타난 사건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급진좌파, 중도좌파, 중도우파, 급진우파의 1차원적 정치 지형이 ‘현상유지’와 ‘현상타파’가 결합된 2차원적 지형으로 급변하는 것은 미국만의 일이 아니라 이미 유럽 각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는 모습이다. 이는 2020년대의 세계가 또다시 체제 전환기로 접어들고 있음을 나타내는 증후인 것일까? 이는 급진 세력의 발흥과 권력 장악을 통한 급속한 변화로 귀결될 것인가, 아니면 1930년대 미국과 스웨덴에서처럼 기존 온건 세력의 혁신을 통한 체제 안정 속에서의 변화로 귀결될 것인가? 서로를 좌파·우파, 심지어 극좌·극우로 몰아붙이면서 아직도 1차원에만 갇혀 있는 우리의 정치 및 담론 지형은 이러한 현상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



홍기빈 | (재)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홍기빈 | (재)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홍기빈

(재)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 대안적 사회의 정치경제 질서를 설계하고 구축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연구와 활동을 병행해 왔다. 저서로는 <위기 이후의 경제학> <비그포르스, 잠정적 유토피아와 복지국가>가 있으며, 역서로는 <도넛 경제학> <21세기 기본소득> <균형재정은 틀렸다: 현대화폐이론 입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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