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2030 랭귀지 프리 교실’
지난달 21일 전남 영암군 삼호서초등학교의 ‘2030 랭귀지 프리’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이 교사의 설명에 따라 환경·기후와 관련한 주제를 놓고 의견을 나누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 가구 유입 많은 곳
AI 동시통역과 시각자료로 소통
12개국에서 온 중도 입국 학생들
언어의 장벽 사라져 수업 자신감
다양성을 차별이 아닌 자산으로
지난달 21일 오후 전남 영암군 삼호서초등학교. 6학년 교실 대형 전자칠판에 “지구 환경과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는 질문이 떴다. 사르비나(13)가 가장 먼저 손을 들었다.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사르비나는 지난해 초 입국해 한국어가 서툴다. 사르비나가 우즈베크어로 “환경 오염을 줄여야 해요”라고 말하자, 문장이 곧바로 칠판에 한국어 자막으로 옮겨졌다.
학생들은 자막을 읽으며 끄덕였다. 옆의 학생은 “맞아”라고 공감한 뒤 “숲을 없애고 바다를 더럽히는 행동부터 멈춰야 해요”라고 생각을 보탰다. 칠판 한쪽에는 ‘나무를 심자’ 등 학생들이 떠올린 키워드가 하나둘 쌓였다. 언어의 장벽에 막혀 있던 아이들의 생각이 인공지능(AI) 번역기를 통해 이어지는 순간이었다.
이 교실은 전남교육청이 미래 수업 모델로 조성한 ‘2030 랭귀지 프리(Language Free) 교실’이다. 특정 언어를 기준으로 수업을 끌고 가기보다, AI 동시통역과 시각자료를 활용해 학생들이 ‘개념’으로 토론에 참여하도록 설계된 수업 모델이다. 언어가 달라도 같은 주제를 함께 탐구하고 일반화된 문장을 만들어내는 과정 자체가 목표다. 전 학년을 대상으로 매주 10시간가량 진행된다.
이런 수업 방식은 지역적 특성과 맞닿아 있다. 영암군은 현대중공업과 대불국가산단이 인접해 외국인 노동자 가구 유입이 많은 지역이다. 전남교육청 통계(지난 4월1일 기준)를 보면 도내 다문화 학생은 1만2374명에 달한다. 이 중 ‘부모 모두 외국인’인 학생은 582명(전체 다문화 학생의 4.7%)이다. 외국인 가정 학생의 31.6%인 184명이 영암에 모여 있다.
교실도 마찬가지다. 이 학교 전교생 300여명 중 약 100명(30%가량)이 외국 가정 학생이다. 재학생 국적만 12개에 이른다.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중앙아시아 학생이 가장 많고, 베트남, 몽골, 중국, 러시아 등이 뒤를 잇는다.
한국어가 익숙하지 않은 중도입국 학생들은 수업을 따라가는 과정이 힘들었다. 삼호서초는 언어로 인한 학습 격차를 줄이기 위해 지난 8월 전남교육청 지원을 받아 일반 교실의 1.5배 크기로 탐구 공간을 따로 마련했다. 교실마다 AI 실시간 통번역 기기와 대형 전자칠판을 갖추고, 학생들이 자국어로 말해도 곧바로 수업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변화는 빠르게 나타났다. 쉬는 시간마다 공통언어를 쓰는 친구들끼리 어울리던 모습이 줄었다. 수업 시간에도 함께 화면을 보며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모습이 늘었다. 발표 차례가 오면 망설이던 아이도 천천히 자기 생각을 끝까지 말했다. 베트남 국적의 한 학부모는 최근 학교에 전화를 걸어 “아이가 몰라보게 밝아졌다. 감사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수업을 진행하는 김현미 수석교사는 “언어 때문에 배움에서 소외되는 학생이 없도록, 모두가 함께할 수 있는 교실을 만들고 싶었다”며 “학생들이 개별 경험을 넘어 보편적 개념을 스스로 도출하고, 세계시민으로서 책임을 찾아가는 모습이 바로 수업 대전환이 지향하는 배움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전남교육청은 삼호서초 사례를 토대로 참여 학교를 단계적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이 교실은 다양성이 차별이 아닌 자산이 되는 상징적 현장”이라며 “언어 장벽으로 소외되는 학생이 없도록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