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적 대통령제 손보자’ 요구 분출했지만…아직 개헌특위 출범 못해
전문가들 “정부·여당 적극 나서야”…“시민사회가 논의 주도” 주장도
12·3 불법계엄의 배경으로 제왕적 대통령제가 지목되면서 정치권에서 개헌론이 부상했지만 계엄 1년을 앞둔 현재 논의는 멈춰 있다. 전문가들은 “개헌이 곧 내란 종식의 완결”이라며 정국 주도권을 쥔 정부·여당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올 상반기 정치권에서 개헌론이 부상했다. 대통령 권한을 축소·분산하는 개헌을 통해 불법계엄 배경으로 거론된 현행 대통령제를 손봐야 한다는 요구였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이재명 대통령은 대통령 4년 연임제와 대선 결선투표제 도입을 골자로 한 개헌을 공약했다. 김문수 당시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대통령 4년 중임제, 이준석 개혁신당 후보는 감사원의 국회 이관, 권영국 민주노동당 후보는 대선 결선투표제 등의 개헌을 내걸었다.
현 정부 출범 이후에도 개헌은 핵심 의제로 거론됐다. 이 대통령은 지난 7월 제헌절 경축식에서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국민 중심 개헌의 대장정에 힘 있게 나서주실 것을 기대한다”고 취임 후 개헌을 처음 언급했다. 9월에는 국정기획위원회가 국정과제 1호로 개헌을 제시했다. 대통령 4년 연임제 및 대선 결선투표제 도입, 감사원의 국회 이관, 대통령 재의요구권 제한 등 대통령 권한을 축소하는 게 핵심이다. 국정기획위는 국회 개헌특별위원회가 구성될 경우 이르면 내년 6월 지방선거, 늦어도 2028년 4월 국회의원선거와 동시에 개헌안에 대한 국민투표를 실시하겠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우원식 국회의장도 제헌절 경축사에서 “전면적 개헌보다 단계적이고 연속적인 개헌이 필요하다”며 단계적 개헌론을 제안했다.
우 의장은 지난 8월 “3대 특검이 일정한 성과를 낼 9월 말이나 10월 초쯤 국회에서 개헌특위를 만들어 개헌안을 성안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회 개헌특위는 현재까지 출범하지 못했다. 국회의장실 관계자는 1일 통화에서 “양당에 개헌과 관련해 논의해달라고 얘기한 상태”라며 “올해 안에 개헌특위가 출범될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개헌안을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국민투표에 부치려면 내년 3월 초까지는 개헌안이 합의돼야 한다.
전문가들은 내란 수사와 재판으로 12·3 불법계엄에 대한 법적 청산이 이뤄지는 것과 별개로 정치적 종식을 위해서는 개헌이 필수라고 설명했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비상계엄을 겪은 상황에서조차 1987년 헌법을 고치지 못한다면 앞으로 어떤 사태를 더 겪어야 개헌할 수 있나”라며 “내년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승리해 정권이 안정되면 개헌의 기회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승진 국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내란의 절차적 종식은 계엄 해제와 탄핵으로 완료됐고, 법적 종식은 수사와 재판으로 진행 중”이라며 “마지막으로 내란이 반복되지 않는 정치적 종식을 이뤄내기 위해선 개헌 등으로 제도를 바꿔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원래 개헌 의제는 블랙홀처럼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기 때문에 정권 말에 나온다”며 “정권 초기에 나왔다는 것은 평가할 만하다”고 말했다.
개헌 동력을 살리기 위해서는 정부·여당이 적극적으로 나서고, 시민사회도 참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개헌은 이 대통령과 민주당이 주도해야 하는데, 그럴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며 “여권에선 계엄·내란 청산을 먼저 강조하고 국민의힘도 개헌이 무산된다 해서 아쉬울 게 없다”고 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개헌 논의를 정치권이 이끌어 나간다면 이 국면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며 “시민사회가 논의를 이끌고 그 흐름 속에서 여야 타협의 여지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