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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해를 보내며

입력 2025.12.02 20:02

[송혁기의 책상물림]다시 한 해를 보내며

12월의 첫날, 올해 첫 송년회에 참석했다. 날짜는 숫자에 불과할 뿐, 해가 넘어간다 해도 반복되는 하루가 새로울 건 없다고들 말한다. 그럼에도 하루하루가 주어지는 것에 감사하며 또 한 해가 감을 아쉬워하는 것은, 그것이 영원할 수 없음을 더 알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하루, 한 달 지나 또 한 해가 가니 천 날 백 날 먼 앞날을 어찌 기약하리오. 서산에 지는 해는 도주공도 살 수 없고 동해에 빠지는 썰물은 맹분도 못 돌리네. 그대는 어디에 기력을 다 썼기에 손바닥에 꽉 움켜쥔 자국 지워지지 않는가?”

조선 후기 문인 노긍이 쓴 시의 첫머리다. 최고 갑부 도주공의 재력으로도 가질 수 없고 천하장사 맹분의 힘으로도 붙들 수 없는 것이 세월이다. 하지만 마치 그것을 모르기라도 하는 것처럼 무언가를 움켜쥐려고 온 힘을 쏟곤 하는 게 우리 삶이기도 하다.

이 시는 명나라 문인 정선의 율시를 시제로 삼아서 과거시험 답안 형식으로 지은 것이다. 정선의 시는 인생이란 원래 적조조(赤條條), 즉 벌거숭이로 태어나서 벌거숭이로 돌아가는 법이니 뛰어난 공적이나 엄청난 재물, 화려한 명성, 혹은 사랑받는 외모 등 우리가 평생 중시하고 추구한 것이 무엇이든 간에 그 어느 것도 가지고 갈 수 없다는 경계로 이루어져 있다. 그에 비해 노긍의 시는 위 구절에서 갑자기 장례 치르는 광경으로 건너뛰며 독자를 낯설게 한다. 아무리 염을 하고 수의를 입혀본들, 생전에 좋은 음식과 의복을 누리던 육신은 결국 온갖 벌레들의 먹이가 되어 쓸쓸하게 썩어간다. 움켜쥔 양손을 펴보아도 텅 비어 있을 뿐,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는 사실이 구체적 묘사를 통해 실감 나게 드러난다.

다시 한 해를 보내며, 이해와 함께 떠나보낼 것이 무엇인지 돌아본다. 우리가 기력을 소진하며 연연하는 무언가가 그저 잠시 빌려 사는 벌거숭이를 치장하는 일에 불과한 건 아닐까? 노긍의 시는 이렇게 맺는다. “멈추고 멈추어 상념마저 멈추며, 듣고 또 들어 하늘의 소리를 들을지라. 깊은 꿈속 솔바람이 물결 일 듯 불어오고, 남쪽 산 계수나무꽃 수시로 나부끼네. 초라한 행색의 영공이 살아 있음을 즐겼듯이, 기쁨으로 노래하고 즐겁게 춤추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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