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12월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게엄을 선포하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지난해 12·3 불법계엄을 선포한 윤석열 전 대통령은 약 두 달 뒤인 지난 1월26일 재판에 넘겨졌다. 현직 대통령 신분으로는 헌정사상 최초로, 헌법상 보장된 대통령의 불소추 특권도 ‘내란 우두머리’ 앞에선 소용없었다. 1년이 지난 현재 재판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3대 특별검사’ 출범 이후 윤 전 대통령은 내란 우두머리 외에도 계엄 선포 전 북한 평양에 무인기를 투입했다는 일반이적 혐의, 자신에 대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을 방해했다는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 등으로 추가 기소됐다.
그를 가까이서 보좌하며 계엄 선포 과정에 적극 가담했거나 계엄을 막지 못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 한덕수 전 국무총리,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등도 피고인 신분으로 줄줄이 법정에 섰다.
재판이 이어질 때마다 ‘계엄의 밤’과 그들의 ‘계획’은 모두의 상식을 뛰어넘는 이야기로 다시 재현돼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구속 취소, 재구속, 그리고 반격 나선 윤석열
윤석열 전 대통령과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이 지난달 3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 사건의 속행 공판에 함께 출석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제공
윤 전 대통령은 지난 4월14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재판장 지귀연)가 진행하는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 피고인으로 처음 형사 법정에 섰다.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서 파면돼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지 10일 만이었다. 그는 “몇 시간짜리 내란이 어디 있나” “평화적인 메시지 계엄이었다”는 궤변을 늘어놓으며 혐의를 적극 부인했다.
온갖 법 기술로 버티는 그를 법정에 세우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은 ‘구속기간 만료 후 검찰의 공소 제기가 이뤄졌다’는 주장을 내세웠는데, 이를 지귀연 재판부가 받아들여 3월7일 구속이 취소됐다. 윤 전 대통령은 4개월을 자유롭게 지내다 지난 7월 조은석 내란 특검이 청구한 구속영장이 발부된 뒤에야 재구속됐다.
다시 구치소에 수감된 윤 전 대통령은 이번에는 건강 악화 등을 이유로 들어 재판 출석을 수차례 거부했다. 재판부는 “불이익은 피고인이 부담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경고했지만, 몇 달간 피고인석이 빈 채로 증인신문이 이어졌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10월30일 다시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계엄 선포 당일 ‘문짝을 부숴서라도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는 지시가 있었다고 폭로한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 증인으로 나온 날이었다. 계엄 선포 전후로 자신과 직접 소통하고, 헌재 탄핵심판에서 자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한 이들의 말을 흔드는 데 주력했지만 유리한 증언은 나오지 않았다. 윤 전 대통령은 “내가 직접 ‘체포’라고 한 적은 없다”며 부하들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특검은 물론 자신의 변호인단이나 재판부가 말할 때도 끼어들어 증인의 말에 반박했다.
계엄 당일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을 통해 ‘체포 명단’을 전해 듣고 메모로 남겨, 탄핵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의 증인신문 때도 비슷했다. 윤 전 대통령이 “검찰총장까지 한 사람이 체포 지시를 하는 게 연결이 안 되지 않느냐”며 빠져나가려 하자, 홍 전 차장은 “부하에게 책임 전가하는 것이냐”며 따졌다. 이어 계엄 자체가 “탈법적 상황”이었다며 정치인 체포 지시가 내려진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고 증언했다.
쌓이는 증언, 새로 나온 증언
지난해 11월14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왼쪽)과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머리를 맞대고 대화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윤 전 대통령 재구속엔 ‘측근’인 김성훈 전 대통령경호처 차장, 강의구 전 대통령실 부속실장의 진술 번복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이들은 경찰과 특검 조사 때 윤 전 대통령 측 변호인단이 입회했는지에 따라 진술을 다르게 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특검 측은 증거 인멸 가능성을 우려하기도 했다.
내란 중요임무 종사 혐의로 군사법원에서 재판받고 있는 여인형 전 사령관은 지난 7월 자신의 남은 재판에서 증인신문을 모두 포기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구속 만료를 앞두고 군검찰의 추가 기소로 재구속된 뒤에야 “깊이 후회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윤 전 대통령의 내란 사건 재판을 진행하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부는 김용현 전 장관과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 조지호 경찰청장과 김봉식 전 서울경찰청장 등에 대한 재판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에 군과 경찰을 보낸 혐의다.
계엄 때 국회로 출동한 군인들은 그동안 내란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 “‘총’을 언급하는 대통령 목소리를 들었다”며 추가 증언을 이어갔다. 계엄 당일 국회 앞으로 갔던 이민수 중사는 법정에서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과 윤 전 대통령이 통화하는 내용을 들었다”며 “총을 이용하라는 취지로 말했던 것 같다”고 했다. 수사기관에서 4차례 조사받는 동안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증언이었다.
당시 같은 차량을 타고 있었던 오상배 전 수방사령관 부관(대위)도 윤 전 대통령이 “두 번, 세 번 계엄 하면 된다고 했다”고 말했다.
곽종근 전 사령관도 윤 전 대통령과 마주한 법정에서 처음으로 “대통령께서 한동훈 국민의힘 전 대표 등 정치인을 거론하며 ‘내 앞에 잡아 오라, 총으로 쏴서라도 죽이겠다’고 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대통령실 CCTV와 드러난 거짓말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구속 기소된 윤석열 전 대통령과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지난달 1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한 전 국무총리의 내란 우두머리 방조 등 혐의 재판에 증인과 피고인으로 출석한 가운데 12·3 불법계엄 당시 국무회의 폐쇄회로영상(CC)TV 영상이 재생되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제공
계엄을 막지 못한 국무회의 등 ‘계엄의 밤’도 재판에서 재현되고 있다. 내란 방조 혐의 등으로 기소된 한덕수 전 국무총리 재판에서는 국가 기밀에 해당하는 대통령실 내부 폐쇄회로(CC)TV가 처음으로 법정에서 공개됐다. 그간 윤 전 대통령은 국무회의가 제대로 진행됐다고 주장했으나, CCTV가 보여준 ‘내란의 밤’은 피고인들의 거짓말을 낱낱이 드러냈다.
한 전 총리와 이상민 전 장관은 “계엄 관련 문건을 받은 적 없다”고 했으나, 영상 속에선 대통령 집무실을 나온 뒤 접견실에 앉아 문건을 돌려보는 장면이 고스란히 담겼다. 김용현 전 장관이 국무회의 정족수를 점검하는 듯 손가락으로 참석 인원을 세고, 계엄 선포 후 강의구 전 실장이 국무회의가 제대로 열렸다는 것처럼 보이게 문건에 서명하도록 하는 모습도 나왔다.
계엄이 선포 전부터 불법적이었음을 드러내는 증언과 증거들이 재판 과정에서 계속 드러났지만, 윤 전 대통령은 한 번도 국민들에게 진정한 사과를 한 적이 없다. 그는 자신의 재판은 물론 한 전 총리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와서도 “금방 끝날 계엄이었다” “국무위원들은 모르는 대통령만의 결정이 있다”는 말만 반복했다. 또 군이 국회나 선관위에 투입된 것에 대해선 김 전 장관의 판단이었고 자신은 멈추라고 했다는 식으로 책임을 전가했다.
윤 전 대통령을 포함해 김 전 장관, 조 청장까지 내란 재판의 가장 큰 줄기를 맡은 지귀연 재판부는 당초 올해 말 변론을 종결하겠다고 했으나 증인신문 과정이 길어지면서 오는 29일에야 세 개 사건을 병합하겠다고 밝혔다. 또 내년 1월 5·7·9일 세차례에 걸쳐 결심 공판을 진행하며 피고인 신문과 검찰 구형, 양측 최종 진술까지 들을 예정이다. 보통 결심 공판 이후 1~2개월 안에 선고가 나오는 점을 고려하면 내년 2월 비로소 내란 사태에 대한 법적 판단이 나올 전망이다.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외환 혐의 사건은 지난 1일 첫 공판준비절차를 진행했다. 이 사건을 진행하는 형사합의36부(재판장 이정엽)는 내년 1월 첫 정식 공판을 진행하고, 2~3월에는 주3~4회에 걸쳐 기일을 잡는 등 최대한 빠르게 진행하겠다는 계획이다.
내란 사태 관계자 중 한 전 총리가 가장 먼저 법적 판단을 받을 예정이다. 형사합의33부는 내년 1월21일을 한 전 총리에 대한 선고 기일로 정했다. 내란 공범 혐의를 받는 만큼 12·3 불법 계엄이 내란이었는지에 대한 법적 판단도 나올 것으로 보인다. 앞서 특검은 “대한민국에서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며 한 전 총리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