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윗집 사람들>의 감독 하정우.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네번째 작품이면 좀 나아져야 하는 게 인지상정이고, 경험하고 깨져봤으면 발전 이루는 게 자연의 법칙 아니었나 싶습니다. 예전에는 제가 생각해내는 코미디가 제일 웃긴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저도 더 마음을 열고, 세상을 둘러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작업했어요.”
3일 개봉한 <윗집 사람들>은 배우이자 감독인 하정우의 네 번째 연출작이다. 여러 차례 영화화된 스페인 소설 <센티멘털>이 원작으로, 한 아파트 아래 위층에서 사는 두 부부(하정우와 이하늬, 김동욱과 공효진)가 한 식탁에 모여 성적 취향 등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실내극이다.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2일 만난 하정우는 “‘내가 그동안 너무 욕심이 과했구나, 너무 많은 이야기 심어놓고 많은 걸 보여주려고 했구나’. 거기서 정리된 부분이 있었던 거 같다”며 쉬운 코미디를 의도했다고 했다. <허삼관>을 제외한 그의 연출작 <롤러코스터> <로비>는 B급 감성이 녹아있는 코미디 영화로, 일부 관객들은 박장대소하지만 다수의 호응을 얻지는 못했던 것을 의식한 말이다.
영화 <윗집 사람들> 한 장면.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그는 배우보다 ‘어떻게 하면 더 관객들을 웃길까’를 고민하는 코미디 전문 감독 같은 입장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제 개그에는 짖궂음이 있어요. 상대방이 얘기했을 때 예상치 못한 이야기로 답하는 걸 좋아해요.” 하정우는 “집에 가서 터지는 것, 신발을 벗다가 ‘이씨, 그게 생각나네’하며 뒤늦게 터지는 개그”를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만, 이번 작품에서는 그보다 즉각적인 웃음을 의도했다고 했다.
이번 영화는 러닝타임 107분이 오로지 네 배우의 대사로만 채워지는만큼 배우들의 찰진 대사, 이른바 ‘말맛’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대본 리딩 배우를 따로 고용해 호흡을 점검하기도 했다. 곽범, 이창호, 엄지윤 등 인기 개그맨들에게 대사를 감수받고, 코미디적인 요소에 대한 조언도 얻었다.
하정우는 “말 한마디 한마디를 자료 수집하듯이 조사했다”며 “처음부터 끝까지 한순간도 허투루 치는 대사가 없게 만들자는 마음으로 수집한 문장들을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10대가 많이 사용하는 신조어, 영화 <대부>(1973)나 <티파니에서 아침을>(1962) 등 고전 영화 속 명대사까지 수집했다고 한다.
영화 <윗집 사람들> 한 장면.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윗집 사람들>에는 시작부터 끝까지 한국어 자막이 나온다. 그는 “(이전) 세 작품을 연출하면서 제일 많이 듣는 이야기가 ‘대사가 안들린다. 너무 빠르다’였다”며 “(자막이) 먼저 선행되니까 웃긴 부분을 놓칠 수가 있는데, 그걸 좀 놓치더라도 이 말들이 쌓여서 마지막에 어떻게 마무리를 짓는지, 그걸 쌓아나가는 게 더 중요하다고 봤던 것 같다”고 말했다.
황당하고 웃긴 장면들이 이어졌지만, 배우들은 현장에서 웃는 일이 거의 없었다. 5주의 짧은 촬영기간 동안 대사를 외우고 다음 장면을 찍어야 하니 여유가 없었다. “촬영 때는 집중력들이 높아서 웃고 긴장이 풀릴 틈이 하나도 없었어요. 다른 현장처럼 와인 한잔 하며 영화 얘기할 시간도 없이 연기만 했죠.”
<윗집 사람들>은 그의 연출작 가운데 유일한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이기도 하다. 수위 높은 장면 없이 오로지 윗집과 아랫집 부부가 나누는 대사로만 ‘19금’ 판정을 받았다. 다양한 성적 취향을 나누는 커뮤니티를 잠입 취재해 얻은 지식을 사용했다고 했다. 하정우는 “연출부를 시켜 이런 커뮤니티 구성원들이 나누는 단계적인 대화, 세세한 규칙 등을 전부 조사했다”고 말했다.
영화 <윗집 사람들>의 감독 하정우.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그는 자극적인 소재가 눈을 끌 수는 있지만, 극중 관계 회복의 드라마가 진짜 ‘비장의 카드’라고 했다. 서로에게 냉담해졌던 ‘아랫집 부부’는 과한 ‘윗집 부부’를 만난 후, 오히려 자신들의 관계를 돌아본다. 하정우는 “TV나 유튜브를 보다가 ‘왜 이 사람 때문에 위로를 받지?’하는 순간이 있지 않나”라며 “예기치 못하게 툭 건드려져서 깨닫고, 화합하는 과정 자체가 흥미로운 것 같다”고 했다.
감독으로서 만들고픈 차기작은 아직 찾는 중이다. “어떻게 하면 또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까가 늘 고민이죠. 쉽고 어렵고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소통할 수 있는 코미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