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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약

그러니까, 워킹맘도 노동자인지라, 워킹맘에게 필요한 것은 새벽배송이라기보다는 시간이다.

워킹맘의 고충은 경제협력개발기구 1위에 빛나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한국 노동자들의 보편적 고충이자 여성에게 돌봄 책임을 떠넘기는 성역할 고정관념의 산물이다.

이런 문제는 항상 외면하는 주체들이, 오로지 기업 논리를 방어하거나 노동시간 규제를 비판할 때만 '워킹맘'을 핑곗거리로 소비하는 것은 좀 치사하고 비겁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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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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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노동자인데요

입력 2025.12.03 22:02

수정 2025.12.04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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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워킹맘’이라는 키워드를 넣고 포털 뉴스 검색을 했다가 워킹맘 당사자로서 조금 황송해졌다. “새벽배송이 없어지면 장은 어디서 보나, 워킹맘의 분노” “워킹맘까지 들고 일어났다, 새벽배송 금지가 답일까” “워킹맘은 웁니다, 새벽배송 사라질 수도”라는 헤드라인들이 검색창을 뒤덮고 있어서다. 나의 분노와 슬픔에 이 사회가 그동안 이렇게까지 공감하고 있었다는 말인가.

아무튼 워킹맘으로서 말하자면 새벽배송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보다는 살림의 책임을 자연스럽게 엄마 몫으로 돌려버리는 언어에 대해 가장 먼저 지적하고 싶다. 어째서 아침 식재료를 사고 아이 준비물을 챙기고 집안의 자잘한 생필품을 보충하는 일은 모두 ‘워킹맘’의 역할인 건지, 워킹대디는 왜 안 들고 일어나는지. 돌봄은 여성의 역할이라는 시대착오적 성별 고정관념은 이와 같은 보도 언어를 통해 더욱 공고해진다.

장시간 노동과 성별 고정관념 속
새벽배송을 ‘워킹맘 분노’로 포장
노동자들끼리 싸움 붙이는 현실
안전한 일터 만드는 게 우선이다

사실 새벽배송은 지금 우리 가족에게 필수재에 가깝다. 다섯 살 딸을 키우는 우리 부부는 출근과 퇴근 시간을 서로 엇갈리게 맞추고, 아이를 유치원에서 1분이라도 더 빨리 데려오려고 매일 발을 동동 구르며 산다. 장은 보통 퇴근하는 버스나 늦은 밤 잠들기 직전 휴대전화와 손가락으로 본다. 컬리와 오아시스에서 새벽배송으로 식재료를 받아보는 게 일상이다. 4년 전 복직하면서 가입한 쿠팡 유료 멤버십은 아직 끊지 못하고 있다. 새벽배송 옵션을 클릭할 때면 죄책감을 느끼지만 마트에서 카트를 끌 시간은 정말 없다. 정확히는 그럴 시간이 구조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시간이 없는 이유는 육아와 일을 병행하기에 한국 노동자들이 일하는 시간이 과도하게 길기 때문이다. 매일 칼퇴근을 사수하기 위해 애를 쓰고 주중 개인 여가시간을 최소화하는데도 아이는 유치원에서 하루에 9시간을 보낸다. 엄마아빠를 우주만큼 사랑한다는 아이와 함께 놀 수 있는 시간이 하루 두세 시간밖에 안 된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가끔씩 가슴이 서늘해지곤 한다.

그러니까, 워킹맘도 노동자인지라, 워킹맘에게 필요한 것은 새벽배송이라기보다는 시간이다. 워킹맘의 고충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위에 빛나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한국 노동자들의 보편적 고충이자 여성에게 돌봄 책임을 떠넘기는 성역할 고정관념의 산물이다.

이런 문제는 항상 외면하는 주체들이, 오로지 기업 논리를 방어하거나 노동시간 규제를 비판할 때만 ‘워킹맘’을 핑곗거리로 소비하는 것은 좀 치사하고 비겁한 일이다. 주 52시간제가 기업 경쟁력을 저해해서 문제라고 하지 않으셨는지, 주 4.5일제는 시기상조라고 하지 않으셨는지… 이런 생각을 떨쳐버리기가 어렵다.

기업의 혁신을 위해 새벽배송 서비스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는 주장은 기업의 경쟁력을 위해 노동시간을 연장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노동자가 원하면 얼마든지 장시간 노동도 야간노동을 할 수 있어야 할 수 있다는 프레임은 결국 장시간 노동을 보편적인 것으로 만들고, 칼퇴근해서 아이를 하원시키러 뛰어가야 하는 노동자를 직장에서 죄인으로 만들 뿐이다.

쿠팡에서 일하다 숨진 배송기사가 올해만 4명이라고 한다. 물류센터 야간노동자까지 합치면 8명이나 죽었다. 플랫폼 기업의 특성, 인센티브 기반의 임금 구조, 배송 마감시간 압박, 특수고용직노동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 등이 구조적으로 과로를 유발한다. 어떤 노동자들이 밤새 속도전과 과로를 감내해야 다른 노동자들이 일상을 유지할 수 있다는 걸 곱씹어보면 정말 기이하다. 아니 그리고 정말 새벽배송이 그렇게까지 필수적인 인프라라면 그 배송을 수행하는 노동자들이 죽어나가는 상황을 방치해서는 안 되지 않나.

워킹맘을 만능방패 삼아 노동자끼리 싸움 붙이는 대신, 어떻게 안전한 일터를 만들지 방법을 찾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다치고 죽어가는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든 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김승섭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말처럼. 혹시 바쁜 맞벌이 부부를 위해 뭔가 도움을 더 주고 싶으시다면, 부디 연간 노동시간을 OECD 평균 아래로 줄이는 데 힘을 보태주시길.

남지원 젠더데스크

남지원 젠더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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