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SBS의 새 음악 예능 <우리들의 발라드>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10~20대가 부르는 1990년대 발라드라는 참신한 기획이 성공적으로 작동한 덕분이다. 경연이라는 형식을 취했지만, 명곡의 향연과 추억 여행의 성격이 강했던 이 프로그램은 젊은 K팝 세대에게는 보석 같은 우리 가요를 재발견할 기회를, 그 시대를 살아온 이들에게는 완벽한 기억 소환의 장을 제공했다. 무려 30~40년에 걸친 세월을 아우르는 이런 세대 통합은 지상파 TV가 아니었다면 가능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뛰어난 기획도 한몫했지만, 결국 이를 가능하게 한 건 음악의 힘이었다. 1990년대 발라드는 음악 전문가들이 그 시기를 ‘황금기’로 부르는 이유 중 가장 핵심적인 요소였고, 젊은 신인 가수들의 목소리를 통해 그 매력이 다시금 확인된 셈이다.
현재 우리가 ‘발라드’라고 부르는 가요의 실질적 원년은 1985년, 놀랍게도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40년 전이다. 유재하가 작곡한 조용필의 ‘사랑하기 때문에’, 이영훈과 이문세의 위대한 동행을 알린 ‘소녀’, 일본 작곡가 유자키 류도의 곡을 나미가 부른 ‘슬픈 인연’이 모두 그해 발표됐다.
이광조, 김현식, 이선희 역시 비슷한 시기에 발라드풍 음악을 경쟁적으로 내놓으며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열어젖혔다. 떠나온 고향과 헤어진 가족에 대한 그리움, 구슬픈 선율에 깃든 한과 애조가 두드러졌던 가요는 1980년대 중반을 지나며 젊고 도회적이며 세련된 작풍으로 빠르게 변모했다. 유재하, 이영훈, 김창기, 박주연, 윤상, 김동률 등 젊은 송라이터들이 감각적인 표현으로 시대의 정서를 주도했고, 이문세라는 걸출한 발라드 가수를 시작으로 변진섭, 신승훈, 이승환 등이 연이어 등장해 장르의 슈퍼스타로 자리 잡았다. 이어 윤종신, 조성모, 성시경으로 이어지는 팝 발라드의 굳건한 계보가 형성됐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김종서, 김경호, 임재범 등 언더그라운드 출신 록 보컬리스트들 역시 새롭게 열린 발라드의 시대에 합류해 강렬한 보컬의 유전자를 가요에 이식했다. 처절한 남성성의 발현이자 노래방 시대의 대표 레퍼토리인 ‘록 발라드’가 그렇게 탄생했다. 발라드의 유행은 모든 장르로 확산됐다. 서태지의 등장 이후 새 시대정신으로 떠오른 젊은 흑인음악 뮤지션들은 발라드의 작법과 정서를 적극 활용해 ‘한국형’ 흑인음악을 만들어냈다. 김조한, 박정현, 거미, 휘성의 음악은 한국의 발라드 감성을 R&B라는 장르에 녹여낸 시도로, X세대는 물론 밀레니얼 세대에게도 새로운 ‘고전’으로 자리 잡았다.
음악의 유행은 돌고 도는 법이고, 한때 ‘현대성’과 ‘세련미’의 상징이던 발라드는 어느새 ‘추억’의 가요가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발라드는 그저 ‘유물’이기만 한 것일까? 들여다보면 그 계보는 의외로 꾸준히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권진아와 정승환은 1990년대 발라드의 감성을 충실히 계승하면서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K팝 시대를 대표하는 디바인 아이유와 태연의 가장 중요한 레퍼토리 역시 여전히 발라드다. 아이돌들은 ‘팬송’의 형태로 발라드를 활용하고 있다. 발라드가 결국 ‘사랑’을 노래하는 장르라면, 시대가 변해도 각 세대는 새로운 종류의 ‘사랑’ 이야기를 써 내려가며 젊은 대중과 소통하고 있는 셈이다. 발라드의 전성기는 지나갔을지언정, 아련하고 애달픈 사랑노래의 역사는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여전히 40년 전통의 레시피와 감성이 살아 숨쉬고 있다.
김영대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