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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의 두 원리

입력 2025.12.03 22:11

수정 2025.12.03 2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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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작가 주세페 디 람페두사의 베스트셀러 소설 <표범>은 19세기 이탈리아 민족국가 탄생기에 몰락하는 시칠리아 귀족의 이야기다. 새로운 세상이 도래할 때 낡은 귀족의 운명은 어찌 될 것인가? 가문의 수장 돈 파브리초에게 젊은 조카 탄크레디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 우리가 나서지 않으면 저들이 공화국을 만들 거예요. 모든 것이 그대로 유지되길 바라면 모두 다 바꾸어야 해요.” 이 말은 낡은 것을 유지하기 위해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역설을 정확히 표현하고 있다.

탄크레디는 자기 말대로 새로운 이탈리아를 위해 싸우는 가리발디 군대에 합류한 뒤 이탈리아 삼색기를 휘감고 귀환한다. 그리고 부와 출세에 대한 야망에 불타 돈 파브리초의 딸 대신 급부상한 갑부의 딸에게 빠져든다. 한때 표범이고 사자였던 귀족이 부르주아라는 자칼이나 하이에나로 변신하는 것이다. 돈 파브리초도 자기 시대의 황혼을 바라보며 탄크레디의 변신을 인정하고 표표히 물러난다. 미국 역사사회학자 이매뉴얼 월러스틴은 그런 변신을 가리켜 ‘람페두사 원리’라 부르며 역사적 변화의 한 패턴으로 파악한다. 특권층이 체제 위기를 의식하면서 아무것도 변화하지 않도록 모든 것을 변화시키거나, 변화시키는 듯이 보이려 할 때 람페두사 원리를 말할 수 있다고 한다. 이는 특권층의 생존 전략인데, 그 핵심이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 있으므로 전략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상대편은 물론이거니와 자기편까지 속여야 한다. 그런 은밀한 변신 전략은 15~16세기 유럽에서 해체되던 봉건귀족이 신흥 부르주아로 탈바꿈할 때 성공적으로 작동했다.

그런데 람페두사 원리에 반대되는 원리도 있을 법하다. 이를 오스트리아 작가 페터 한트케의 소설 <진정한 느낌의 시간>에서 찾을 수 있다. 주인공인 파리 주재 오스트리아 외교관 그레고르는 어느 날 노파를 살해하는 꿈을 꾼 뒤 자신이 완전히 바뀌었음을 깨닫는다. “갑자기 그는 더 이상 예전의 자신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발각당하지 않기 위해 지금까지와 똑같은 삶을 살아야 했으며 무엇보다 예전의 자신으로 남아 있어야 했다.” 이를 ‘한트케 원리’라고 지칭할 만하다. 몸을 바꾸는 일만큼이나 바뀐 몸을 숨기는 일도 쉽지 않다. 그레고르는 초조하게 자신의 변화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자기 얼굴이 파시스트처럼 무표정하고 지나치게 엄숙해 보이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실제로 그레고르의 변화는 한 작가에게 발각된다. 작가는 그레고르가 예전처럼 보이려고 절망적으로 애쓰는 모습을 보고서 그가 완전히 변했음을 알아챘다고 말한다. 아무것도 변화하지 않았음을 보이려는 억지스러운 노력이 도리어 변화되었다는 사실을 노출한 셈이다.

변신이자 은신의 전략으로서 한트케 원리는 가령 20세기 전반 파시스트들의 경우에 적용될 수 있다. 파시스트들은 기성 정치의 목표와 수단, 스타일과 결별한 완전히 새로운 정치 세력이었다. 그런데도 제도권에 진입하고 권력에 접근하기 위해 짐짓 법과 질서를 수호하는 전통적 보수 세력인 척 처신했다. 물론 그런 은폐와 위장의 기술을 이해하지 못한 다수의 파시스트는 거리낌 없이 행동했고, 이는 진짜 보수 세력에게 큰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적과 친구를 모두 속이는 일은 역시 어려운 법이다.

이상의 두 사례는 역사 속에서 종종 확인되는 변신의 두 원리다. 람페두사 원리는 새로운 것이 밀물처럼 몰려들 때 낡은 세력이 취하는 원리다. 특권층은 변화를 거부할 때 맞닥뜨릴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차악을 받아들인다. 혁명을 피하려고 개혁을 추구하는 식이다. 한트케 원리는 옛것은 가고 새것은 오지 않은 상황에서 새로운 세력이 취하는 원리다. 틀에 박힌 것에 염증을 느끼면서도 날것 그대로의 충동도 터뜨리지 못하는 동안, ‘커밍아웃’의 순간이 시시각각 다가온다.

장문석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장문석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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