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임
욘 포세 지음 | 손화수 옮김
문학동네 | 200쪽 | 1만5000원
“하지만 거기, 부두 위, 내게서 겨우 몇 미터 떨어진 곳, 바로 거기에, 나는 그제야 분명히 보았다, 걸음을 멈추고 나를 향해 서 있는 엘리네가, 환영인지 아닌지, 유령인지 아닌지는 몰랐지만, …”
너무 깊은 그리움은 때때로 현실과 꿈의 경계를 지운다. 젊은 시절 짝사랑했던 여인의 이름을 붙인 나무배를 타고 언젠가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을 품은 채 바닷가 마을을 오가던 한 남자가 마침내 자신을 부르는 그녀, 엘리네를 만난 순간도 그렇다. 하지만 엘리네는 이미 결혼한 사람. 남자는 기쁨과 불안, 고민에 휩싸인다.
2023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노르웨이 작가 욘 포세의 신작 <바임>은 외딴 바닷가 마을에 홀로 사는 두 남자, ‘야트게이르’와 ‘프랑크’가 강한 의지를 가진 여인 ‘엘리네’를 만나 운명의 종착지로 삶의 배를 몰아가는 이야기다.
작가는 현실과 꿈의 경계를 흔드는 문체로 독특한 사랑과 운명의 변주를 그려낸다. 세 사람의 서사가 전형적인 삼각관계에 해당함에도 불구하고 로맨스보다 미스터리나 환상소설에 가깝게 읽히는 이유다. 총 3장으로 구성된 각각의 이야기는 엘리네와 재회한 야트게이르, 야트게이르의 친구 엘리아스, 엘리네를 회상하는 프랑크의 관점에서 서술되며 각 인물의 불안과 고독, 미련과 회한, 운명과 우연, 유령이야기까지 등장한다.
주제는 어렵지 않다. 삶은 언제나 예측할 수 없는 곳으로 흘러가고 그 안에서 서로를 기다리는 마음은 소중하다는 것. 2027년에 완성되는 <바임> 3부작의 시작으로, 1권에서 이야기가 완결되지 않고 3부작 전체를 위한 예비적 구조로 남겨두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마침표 없이 쉼표로만 이어지며 특유의 리듬과 흡입력으로 몰입을 이끌어가는 점도 독특하다. 노르웨이 신문은 “욘 포세 작품 중 가장 장난기 넘치는 작품. 로맨스, 유령 이야기, 누아르가 뒤섞여 있다”고 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