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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이라는 로또

입력 2025.12.04 21:58

수정 2025.12.0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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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운과 노력의 비중은 얼마나 될까? 사람마다 응답이 다르겠지만, 나는 운에 큰 비중을 돌리는 편이다. 이유는 국적 때문이다. 수많은 기회를 결정짓는 국적이, 내 의지나 노력과는 무관하게 출생 시점에 정해지기 때문이다.

통상 국적을 정하는 원리인 혈통주의와 출생지주의가 모두 출생을 기준으로 한다. 혈통주의는 출생 시 부모의 국적을 따라 국적을 부여한다. 한국이 택한 방식이다. 출생지주의는 그 나라에서 출생했다는 이유로 국적을 부여한다. 미국이 대표적이다. 방법은 다르지만 모두 출생의 순간에 자동으로 결정되는 국적 취득 방식이다.

그런데 이렇게 정해진 국적에 따라 삶이 달라진다. 세계가 불평등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평화롭고 풍족한 국가의 국민으로 태어나 가지는 기회와, 분쟁지역 국가의 국민으로 태어나 가지는 기회는 다르다. 우리는 각자 주어진 조건에서 나름대로 삶을 소중하게 꾸려가기에 어떤 삶이 무조건 불행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다른 조건에서 삶의 모양이 달라지리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아예렛 샤하르는 저서 <출생권 로또: 시민권과 글로벌 불평등>에서 국적을 복권에 빗댄다. 삶에서 주어지는 기회가 상당 부분 국적에 의해 정해지고, 그 자격이 ‘로또’처럼 운으로 얻어진다는 것이다. 때때로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자부심을 넘어 다른 나라 사람을 무시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는데, 국적을 일종의 로또라고 생각하면 겸허해진다. 누구든 무시하면 안 되지만, 애초에 국적이 우월감을 가질 만한 자격을 주는 건지 묻게 된다.

국가가 출생 시점에 자동으로 구성원의 자격, 즉 시민권을 부여하는 체제를 선택한 건, 말하자면 안정적으로 회원을 확보하기 위한 유용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사람은 이동한다. 인류의 발전은 이주의 역사와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에도 누군가는 국경을 넘어 이주하고 새로운 공동체에 소속되어 살아간다. 문제는, 시민권이 여전히 출생 시점에 갇혀 있다는 점이다.

가령 어떤 사람은 평생 외국에 살고 있어도 출생 당시 부모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한국인이 된다. 반면 누군가는 평생 한국에 살고 있어도 외국인 부모에게서 태어났기에 외국인이 된다. 그럼, 우리가 실제로 공동체에 속해 부대끼며 살아가는 시간과 삶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래서 샤하르는 시민권이 ‘출생권 로또’로 정해져도 되는지 묻는다.

한국 사회에는 오랫동안 함께 살고 있는 ‘외국인’이 있다. 1883년 인천항이 열리면서 청나라에서 한국으로 이주해 살다가 한국전쟁으로 한·중관계가 단절되어 돌아가지 못하고 정착해 살아온 화교가 대표적이다. 세월이 흐르며 화교의 4·5세대가 한국에서 태어나 살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법적으로 외국인이고, 그나마 2002년이 되어서야 영주권을 부여받게 되었다. 한국이 고향이어도 한국인이 되려면 귀화를 해야 한다.

한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20여년을 살았다면 어떨까? 1년 전 안타깝게 사망한 강태완씨가 그랬다. 그는 다섯 살에 한국에 와서 미등록 상태로 초중고등학교를 다녔다. 성인이 되어 국적을 따라 몽골에 가야 했지만, 다시 대학생이 되어 한국으로 돌아와 졸업하고 취업해 한국 국적을 취득하기 위한 길을 가고 있었다. 작년 11월 산재로 사망하던 당시 그의 나이는 32세였고, 그가 한국에서 산 세월은 26년이었다. 그는 왜 ‘한국인’이 아닌가.

얼마 전 또 한 청년이 사망했다. 베트남 국적의 뚜안씨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한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어느 날 폭력적 강제 단속이 닥치자 공포에 떨다 추락해 사망했다. 무엇이 그를 극한의 공포로 몰아넣었을까. 체류자격이라는 제도가 이주민의 삶을 옥죄는 방식으로 사용되고 작동해야 옳은가. 한국에서 보낸 그의 시간과 삶은 이 공동체에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인가. 출생 시점에 갇힌 시민권이 너무나 쉽고 잔인하게 사람을 내친다.

며칠 전 국회에서는 실질적 구성원을 불안정 체류 상태로 만드는 제도의 한계를 지적하는 토론회가 있었다. 2018년 유엔 회원국들이 이주 글로벌 콤팩트를 채택하며 합의했듯, 안전하고 질서 있고 정규적인 이주를 촉진하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정규 이주가 가능한 유연한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그 제도적 상상력을 키우기 위해, 운으로 얻게 된 국적에 대해 생각하면 좋겠다. 그리고 시민권의 기준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질문해보자. 아주 길고 복잡한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우리가 공동체에서 함께 산다는 것이 시민권의 시작이어야 하지 않을까.

김지혜 국립강릉원주대 다문화학과 교수

김지혜 국립강릉원주대 다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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