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80주년 경향신문

나의 마지막 할매



완독

경향신문

공유하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X

  • 이메일

보기 설정

글자 크기

  • 보통

  • 크게

  • 아주 크게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본문 요약

인공지능 기술로 자동 요약된 내용입니다.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본문과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내 뉴스플리에 저장

나의 마지막 할매

입력 2025.12.04 22:09

수정 2025.12.04 22:10

펼치기/접기
[정지아의 할매 열전]나의 마지막 할매

1976년 12월, 한강이 꽁꽁 얼어붙었던 혹독한 겨울에 그 할매를 처음 만났다. 만난 곳은 종암동 어느 한옥이었지만 그 할매는 천생 구례 할매였다. 나무 대문을 밀고 들어섰을 때 한복 차림의 할매는 개조해서 미닫이문을 단 마루에 한쪽 다리를 세운 채 앉아 있었다. 할매는 한달음에 시멘트 마당으로 달려왔다. 아무 말도 없이 내 어머니의 등을 쓸어내리던 할매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나는 난생처음 겪는 서울의 추위에 잔뜩 움츠린 채였다. 버짐 핀 얼굴이 허옇게 질려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내 손을 잡아끈 할매는 마룻바닥을 일일이 손으로 더듬더니 제일 따뜻한 자리에 나를 앉혔다. 할매는 어머니 등을 쓸던 거친 손으로 이번에는 내 머리를 하염없이 쓰다듬었다.

야무지게도 생겼다.

나를 바라보던 그 할매의 눈빛이 내 기억에 각인되었다. 그 전까지 그토록 복잡한 눈빛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를 예뻐하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반가운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그러나 거칠고 투박한 손이 따뜻하기는 한정없이 따뜻했다.

친척 할머니라던 그 할매가 사실 어머니의 전 시어머니라는 것은 대학생이 된 뒤에야 알았다. 징용에 끌려갔던 할매의 아들은 구사일생 목숨을 건져 조국으로 돌아왔다. 그 시절 수많은 이들이 그랬듯 붉은 물이 들어서. 중매로 만난 여자와 결혼을 하고, 그 여자에게도 붉은 물을 들인 아들은 여순사건 직후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붉은 물이 들었다고는 하나 어느 날 어느 시에 어디로 모이라는 연락 정도밖에 한 적 없던 여자는 당시 임신 중이었고, 세월이 그리 독할 줄 상상도 하지 못했던 터라 남편 뒤를 따르지 않았다. 붉은 물 든 아들을 뒀다는 죄로 집에서 쫓겨나 남자는 남자끼리, 여자는 여자끼리 친척 집을 전전하며 하루하루 목숨을 연명했다. 며느리의 산달이 다가오자 친척들이 꺼리는 게 온몸으로 느껴졌다. 하기야 빨갱이라면 때려죽여도 죄가 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빨갱이 새끼가 자기 집에서 태어난다는데 겁먹지 않을 사람이 있었겠는가.

할매는 며느리 손을 잡고 쫓겨난 집을 찾아들었다. 시절이 하수상하기로서니 설마 애 낳으러 왔다는데 뭘 어쩌랴 싶었던 것이다. 오래 비워 둔 집의 구들은 쉬 데워지지 않았고 아직 온기도 돌지 않는 방에서 손자가 태어났다. 물이 끓어 막 목욕을 시키려는 참인데 경찰이 들이닥쳤다. 몸 풀 때까지만이라도 봐달라고 사정했지만 경찰들은 인정사정없이 방 구들을 괭이로 찍었다. 아직 씻기지도 못한 손자를 들쳐업은 며느리와 할매는 북풍한설 몰아치는 들판에 우두커니 섰다. 대체 어디로 가야 할까. 바람을 맞으며 고민하던 할매는 결단을 내렸다.

아이, 암만해도 우덜은 다 죽은 목심맹키다. 어차피 죽을 목심, 니는 니 서방헌티 가서 항꾼에 죽어라. 갸도 죽기 전에 지 새끼 얼굴은 함 봐야제. 우리집 종손인디. 나는 여개서 내 식구들허고 항꾼에 죽을란다.

할매는 며느리 등을 떠밀어 지리산으로 들여보냈다.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몇년의 세월이 흘렀다. 할매의 남편은 빨갱이 아들을 둔 죄로 저 죽을 구덩이 제가 파고 산 채로 묻혀 세상을 떠났다. 산으로 들여보낸 며느리는 산에서 아들과 손자를 잃고 저 혼자 살아돌아와 감옥에 갇혔다. 감옥에서 나와 한동안 혼자 살던 며느리가 저와 똑같은, 그러니까 산에서 죽은 아들과 똑같이 붉은 물 들었던 남자와 혼인을 하겠다며 허락을 구했다. 할매는 형수가 그럴 수 있냐며 흥분하는 작은 아들을 타일렀다.

산 사램은 살아야제 워쩔 것이냐.

그 며느리가 딸을 데리고 찾아왔을 때 할매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저 혼자 살아돌아와 자식 보고 소소한 재미 누리며 사는 며느리가 조금도 밉지 않았을까? 저라도 살아 자식 재미 보며 사니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을까? 그렇더라도 내 얼굴에서 자기 손으로 탯줄 끊어 산으로 보낸, 다시는 보지 못한 종손의 얼굴을 떠올리지 않았을까? 환갑이 지난 지금도 나는 감히 짐작하지 못하겠다. 그러니 그토록 복잡하여 내 기억에 각인되었을 테지. 그날 이후 다시는 보지 못한 그 할매가 내 기억 속 마지막 할매다. 나의 사랑스러운 할매들은 모두 그 지난한 세월 속에, 그러한 세월을 살아낸 구례 속에 있다.

정지아 소설가

정지아 소설가

  • AD
  • AD
  • AD

연재 레터를 구독하시려면 뉴스레터 수신 동의가 필요합니다. 동의하시겠어요?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콘텐츠 서비스(연재, 이슈, 기자 신규 기사 알림 등)를 메일로 추천 및 안내 받을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레터 구독을 취소하시겠어요?

뉴스레터 수신 동의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안녕하세요.

연재 레터 등록을 위해 회원님의 이메일 주소 인증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시 등록한 이메일 주소입니다. 이메일 주소 변경은 마이페이지에서 가능합니다.
이메일 주소는 회원님 본인의 이메일 주소를 입력합니다. 이메일 주소를 잘못 입력하신 경우, 인증번호가 포함된 메일이 발송되지 않습니다.
뉴스레터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로 인증메일을 발송했습니다. 아래 확인 버튼을 누르면 연재 레터 구독이 완료됩니다.

연재 레터 구독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경향신문 홈으로 이동
뉴스레터 구독
닫기

전체 동의는 선택 항목에 대한 동의를 포함하고 있으며, 선택 항목에 대해 동의를 거부해도 서비스 이용이 가능합니다.

보기

개인정보 이용 목적- 뉴스레터 발송 및 CS처리, 공지 안내 등

개인정보 수집 항목- 이메일 주소, 닉네임

개인정보 보유 및 이용기간-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단, 관계법령의 규정에 의하여 보존할 필요가 있는 경우 일정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관할 수 있습니다.
그 밖의 사항은 경향신문 개인정보취급방침을 준수합니다.

보기

경향신문의 새 서비스 소개, 프로모션 이벤트 등을 놓치지 않으시려면 '광고 동의'를 눌러 주세요.

여러분의 관심으로 뉴스레터가 성장하면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매체처럼 좋은 광고가 삽입될 수 있는데요. 이를 위한 '사전 동의'를 받는 것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광고만 메일로 나가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뉴스레터 구독
닫기

닫기
닫기

뉴스레터 구독이 완료되었습니다.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닫기

개인정보 이용 목적- 뉴스레터 발송 및 CS처리, 공지 안내 등

개인정보 수집 항목- 이메일 주소, 닉네임

개인정보 보유 및 이용기간-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단, 관계법령의 규정에 의하여 보존할 필요가 있는 경우 일정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관할 수 있습니다.
그 밖의 사항은 경향신문 개인정보취급방침을 준수합니다.

닫기
광고성 정보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의 새 서비스 소개, 프로모션 이벤트 등을 놓치지 않으시려면 '광고 동의'를 눌러 주세요.

여러분의 관심으로 뉴스레터가 성장하면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매체처럼 좋은 광고가 삽입될 수 있는데요. 이를 위한 '사전 동의'를 받는 것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광고만 메일로 나가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닫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