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겨울 패딩
소매 등 정돈된 라인, 세련미 더해
카키 등 자연계열 색 트렌드
겉감은 ‘무광 나일론’ 등 인기
한겨울 아우터는 코트파와 패딩파로 나뉘지만, 올해는 패딩파의 손을 들어주겠다. 혹한기에는 패딩이 코트보다 효율적인 아이템이다. 눈과 바람을 막기 위해서는 발수·내구성이 뛰어난 나일론이나 폴리에스터 외피가 제격이기 때문이다. 눈을 맞아도 부담이 없고, 보온성도 뛰어나다.
패딩의 디자인은 무게와 부피의 조율에서 시작된다. 더 따뜻해지기 위해 좀 더 길어지고, 추위를 막기 위해 더 두꺼워졌다. 롱패딩은 10여년간 겨울 거리를 지배했지만, 무겁고 제한적인 스타일링이 한계였다. 이 흐름은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변화하고 있다. 패딩이 다시 가벼워지고, 짧아지고 있다. 단순히 트렌드의 순환이 아니라, 패딩이라는 아이템 자체가 지향하는 미학이 달라진 것이다.
최근 패딩의 트렌드를 한 단어로 압축하면 ‘숏’이다. 숏패딩은 다리 라인을 가리지 않아 전체 비율을 경쾌하게 보여준다. 그리고 과하지 않은 볼륨감도 눈에 띈다. 몸통은 둥글지만 부해 보이지 않고, 소매와 밑단 처리가 얇게 정리되어 자연스럽게 떨어진다. 목선을 따라 올라오는 하이네크 바람을 막으면서 얼굴선을 단정하게 잡아준다. 숏패딩이 스타일을 해치지 않는 패딩으로 주목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실루엣의 변화가 일상적인 외출과 출퇴근, 도심 속 활동까지 넓어지면서 패딩의 역할도 동시에 확장되었다.
올겨울 가장 달라진 변화는 경량 패딩이다. 경량 패딩은 더는 아우터 속에 입는 이너의 개념이 아닌, 겉에서 단독으로 입는 아우터로 자리 잡았다. ‘경량’이라는 이름도 재정의되었다. 과거에 얇고 축 처지는 경량이 아니라, 형태감을 유지하면서 무게를 최소화한 새로운 경량 패딩, 즉 가벼움 속에 구조 감을 갖춘 패딩으로 진화했다. 그렇다면 이 가벼움과 형태감을 만드는 핵심 요소, 패딩에서 가장 중요한 충전재에 대해 알아보자. 충전재의 차이가 패딩의 성격을 결정한다. 충전재는 따뜻함뿐 아니라 무게, 부피, 착용감, 가격까지 좌우한다. 크게 구스다운, 덕다운, 합성 충전재, 일반 폴리 충전재로 나뉜다.
구스다운은 가장 가볍고 따뜻한 충전재다. 복원력이 뛰어나 눌러도 금세 원래대로 돌아온다. 고가 브랜드에 주로 사용된다. 다만 가격대가 높고 습기에 약한 것이 단점이다.
덕다운은 구스보다 무게가 조금 나가지만 가격대가 합리적이다. 일상 패딩에서 널리 쓰이며, 최근에는 기술 향상으로 구스와의 성능 차이도 크게 줄어들었다.
합성 충전재(신소재 충전재)는 과거의 ‘뻣뻣하고 무거운 솜’이 아니다. 프리마로프트, 싱슐레이트로 대표되는 초미세 합성 섬유는 가볍고 방수·속건 기능이 뛰어나며, 세탁과 관리가 쉽다. 특히 다운처럼 부하지 않으면서 깔끔한 실루엣을 만드는 데 유리하다.
요즘 소비자들은 ‘무조건 다운이 최고’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자신의 생활 패턴과 원하는 실루엣에 맞는 충전재를 고르는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다.
최근 패딩의 겉감 트렌드는 광택이 강한 원단보다는 매트한 원단이 흐름을 이끈다. 광택이 강한 원단이 주는 고전적인 느낌 대신, 무광의 나일론 또는 폴리에스터가 주는 현대적인 분위기가 선호된다. 고밀도 나일론 원단은 마찰에 강하고, 발수 코팅이 되어 있으면 눈비에도 실용적이다. 초경량 원단은 무게를 대폭 줄이면서 형태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겉감의 기술이 정교해질수록 패딩은 더 얇고, 더 가벼워진다.
올겨울 가장 두드러진 변화 중 하나는 컬러다. 몇년 전까지는 블랙 패딩이 절대적이었다면, 지금은 브라운·카키·올리브·베이지·아이보리와 같은 자연계열의 색이 주도권을 잡고 있다. 패딩은 부피가 있는 아우터이기 때문에 컬러가 전체 인상에 큰 영향을 준다. 그중에서도 자연색 계열은 얼굴 톤을 부드럽게 보이게 하고, 세련된 인상을 준다.
그럼 어떤 브랜드의 패딩이 좋을까? 대표적인 다운 패딩 브랜드인 몽클레르는 정말 다양한 디자인을 제안한다. 전통적 볼륨 패딩에서 매트하고 얇은 다운 라인까지 확장하며, 정교한 디자인과 디테일까지 갖춘 라인이 풍부하다. 에르노는 도시형 경량 패딩의 상징같은 브랜드다. 다운과 합성 충전재를 섬세하게 조합해 무게는 덜고, 형태는 더 단정하게 만드는 능력이 탁월하다. 피레넥스는 프랑스다운 전문 브랜드로, 자체 생산한 유럽산 고급 구스다운을 사용한다. 클래식하면서도 미니멀한 감성의 패딩으로, 경쾌한 컬러감 덕분에 젊은층 사이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은딩에 특화된 디스커버리는 국내 유행을 잘 반영한 숏패딩부터 미드, 롱패딩까지 다양한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 노스페이스는 숏패딩 트렌드를 탄탄하게 이끌고 있다. 체형을 부드럽게 감싸는 볼륨 조절, 가벼운 무게, 일상 활용도의 조합이 뛰어나다.
패딩은 부피로 따뜻함을 증명하던 시대는 지났다. 충전재는 다양해졌고, 겉감의 기술은 더 정교해졌다. 컬러는 부드럽고, 더 깊어졌다. 패딩을 고르는 기준은 가볍지만, 가벼워 보이지 않는 ‘나만의 스타일’을 찾는 데 있다.
파리에서 공부하고 대기업 패션 브랜드에서 패션 디자이너로 20여년간 일했다. 패션 작가와 유튜버 ‘르쁠라’로 활동 중이다. 최근 세 번째 저서 <세계 유명 패션 디자이너 50인>을 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