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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그세스, 무분별과 부도덕의 합

입력 2025.12.07 20:12

수정 2025.12.07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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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트 헤그세스가 미국 국방장관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건 처음부터 자명했다. 소령으로 전역한 폭스뉴스 앵커가 장성들을 지휘한다는 것부터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검증 과정에서 불거진 성폭행 의혹과 숱한 외도 이력, 업무 중 만취하는 음주 습관 등은 그가 도덕성과 윤리의식을 결여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시사했다.

실제로 그의 임기는 분별없는 언행으로 점철돼 있다. 그는 지난 2월 우크라이나 지원을 논의하자고 모인 국제회의에서 ‘러시아에 빼앗긴 영토를 되찾겠다는 우크라이나의 목표는 비현실적’이라고 말해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3월에는 최고등급 기밀인 미·중 전쟁 시나리오를 브리핑하는 자리에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를 초대했던 사실이 드러났다. 같은 달 그는 민간 메신저 채팅방에 시사잡지 애틀랜틱 편집장이 초대된 사실을 모르고 예멘 후티 반군 공습 계획을 공유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국방장관이 보안이 취약한 상업용 메신저에서 군사작전을 생중계했다는 것 자체가 상식 밖의 일이다. 일반적인 정부라면 헤그세스는 짐을 싸야 했겠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애틀랜틱에 대해 “곧 망할 잡지”라고 비난했을 뿐이다.

하지만 헤그세스를 두둔한 트럼프도 그가 유능하다고 보는 것 같지는 않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미국이 지난 6월 이란을 공습했을 때 헤그세스는 작전에서 거의 배제됐다. 당시 트럼프는 마이클 쿠릴라 중부사령부 사령관, 댄 케인 합동참모본부 의장과 소통하는 편을 선택했다. 지난달 트럼프가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평화협상 중재에 투입하기 위해 선발한 국방부 인사도 헤그세스가 아니라 댄 드리스컬 육군장관이었다.

중동과 우크라이나 현안에 끼지 못한 헤그세스가 열중한 대상은 카리브해를 지나가는 베네수엘라 선박이었다. 미군은 지난 9월부터 이 지역에서 마약을 운반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선박을 타격해 80명 이상을 사망하게 했다. 이 작전은 즉각적인 비판을 불러일으켰다. 미 법률은 군이 적대 행위에 참여하지 않은 민간인을 공격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미군이 폭격한 선박이 실제로 마약을 운반했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헤그세스는 증거를 제시하는 대신 소셜미디어에 작전 영상을 올리고 성과를 자랑하기 바빴다.

최근에는 미군이 생존자를 죽이려고 2차 공격을 했다는 의혹까지 불거졌다. 지난달 말 워싱턴포스트(WP) 보도에 따르면 미군은 지난 9월2일 미사일로 베네수엘라 선박을 타격한 뒤에도 생존자 2명이 선박 잔해에 매달려 있자 그들을 다시 공격했다. 이에 대해 소식통은 헤그세스가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기 때문이라고 WP에 말했다.

생존자 2차 공격은 정당한 군사 작전이 아니다. 미 국방부가 만든 전쟁법 편람에 따르면 “난파선 생존자에게 발포하라는 명령은 명백하게 위법”이며 “생존자가 없어야 한다는 전제하에 적대 행위를 하는 것은 금지”된다. 생존자를 살해하라는 명령은 전쟁범죄가 된다는 얘기다. 심지어 미국과 베네수엘라는 현재 전쟁을 하고 있지도 않다. WP 칼럼니스트 조지 윌은 “헤그세스는 전쟁 중이 아닌데도 전쟁범죄자가 되려는 모양”이라며 “흥미로운 업적을 세웠다”고 꼬집었다.

2차 공격 의혹이 불거진 직후 헤그세스의 대응도 놀라웠다. 그는 해명하는 대신에 당시 상황은 “치명적인 공격을 의도했던 것”이며 “우리는 마약테러범들을 이제 막 죽이기 시작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자신의 잘못을 들춰낸 언론 보도를 ‘가짜뉴스’라 비난하면서 언론이 제기한 의문에 동문서답하는, 전형적인 트럼프식 대응이다. 그러나 이런 대처는 헤그세스가 국방장관을 맡기엔 부적합하다는 사실만 입증할 뿐이다. 그는 미군을 도덕적 파탄 상태로 내몰면서도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백악관은 2차 공격 명령을 내린 것은 현장에 있던 해군 제독이라면서 이번에도 헤그세스를 보호하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국방부 안에서도 제독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비열하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지금 트럼프 정부가 관리해야 할 위험은 베네수엘라가 아니라 헤그세스 같은 행정부 내의 말썽꾼들이다. 트럼프는 내년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침몰하고 있는 게 카리브해의 배인지, 아니면 자신의 지지율인지를 직시해야 할 것이다. 물론 트럼프가 정신을 차리고 당장 헤그세스를 경질한다고 해도 역대 가장 무분별하고 부도덕한 국방장관을 배출한 행정부로 역사에 남겠지만 말이다.

최희진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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