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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2025년, 우리가 다시 만난 세계는?

입력 2025.12.07 20:23

지난해 12월 거리로 뛰쳐나온 시민들이 불법계엄으로 침몰할 뻔했던 민주주의를 건져냈다. 탄핵 광장은 응원봉으로 빛났고 깃발로 넘실댔다. 사회적 소수자들이 발언에 나섰고 광장은 경청했다. 광장의 사람들은 일찌감치 정권 탄핵을 넘어 차별과 혐오 없는 세상을 외쳤다. ‘다시 만난 세계’를 부르며 염원한 평등과 연대의 세상은 남태령에서 농민과 만남으로, 지하철역에서 장애인과 만남으로 빛났다. 광장은 어두울수록 밝아졌고 추울수록 따뜻해졌다. 놀람과 분노로 열린 광장은 환호와 희망으로 마무리되었다. 광장의 시간이 지나며 정권이 바뀌었고 이제 숨 가빴던 한 해가 지나간다. 우리는 과연 새로운 세계로 한발 내디뎠을까? 우리가 살려낸 민주주의는 건강할까? 우리 사회는 이윤보다 생명을, 성장보다 안전을 더 중히 여길까?

광장에 기대어 집권한 민주당

국민의힘은 불법계엄을 ‘의회 폭거’에 맞선 행위로 정당화하며 극우 행태를 보인다. 그런데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건 국민의힘이나 극우세력만이 아니다. 지난달 말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대통령 집무실을 집회 금지 장소로 추가하는 내용의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제 광장의 소리는 듣지 않겠다는 뜻인가. 광장에 기대어 집권한 더불어민주당이 앞장서서 민주주의의 근간인 집회의 자유를 훼손하려고 한다. 그러고도 국민주권정부인가. 불법계엄 사태로 권력구조를 포함한 개헌 여론이 높아졌지만, 국회에는 아직 개헌을 논의할 구조조차 없다. 검찰·언론·사법 개혁에는 발 빠르던 민주당이 정치개혁에는 왜 이리 더딘가. 벌써 권력에 취했나. 화무십일홍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즉시 9년 동안 공석이던 특별감찰관을 임명하겠다고 했지만 민주당은 여태 반응이 없다. 갈수록 혐오와 차별이 기승을 떠는데 차별금지법은 논의되지도 않는다. 광장에서 나왔던 사회대개혁 과제는 대부분 옛이야기가 돼버렸다.

성장은 여전히 힘이 세다. 지난 9월 서울행정법원은 새만금신공항 기본계획 취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항공기 안전을 위협하는 조류충돌 위험과 생태적 악영향을 지적했다. 기후위기 시대에 강력한 탄소 흡수원인 갯벌을 없애고 탄소 대량 배출원인 항공기 운항을 늘릴 공항을 짓는다는 것도 상식적이지 않다. 이런 면에서 지난번 취소 판결은 역사적이며 상식적이다. 그래도 공항을 짓겠다며 항소한 국토교통부는 몰상식하다. 물론 대형 토건사업인 공항을 건설하면 경제는 성장한다. 무엇이 더 중한가?

세계가 인공지능(AI)으로 들썩인다. 그런데 AI는 거저 돌아가지 않는다. 반도체와 데이터센터가 받쳐줘야 하는데 모두 막대한 전기가 든다. 반도체 국가산단을 짓겠다는 용인에 전기를 공급하려면 발전소를 새로 짓고 전국에서 전기를 끌어와야 한다. 지금 정부가 내세우는 에너지 고속도로의 종착지는 결국 수도권이다. 지역은 수도권의 에너지 식민지로 떨어지고 송전탑 대란으로 지역의 삶과 자연은 뿌리째 흔들리게 된다. 지역과 사람을 차별하고 경제는 성장한다. 무엇이 더 중한가?

지금 그 열망에 부응하고 있나

세계보건기구는 야간노동이 ‘노동 주기 리듬’을 교란하여 혈압·혈당 조절 장애, 인지기능 저하, 심혈관질환 위험을 늘린다고 경고한다. 올해 쿠팡 물류센터 야간노동자 4명이 숨졌다. 모두 일용직 또는 계약직이다. 택배기사도 올해 4명이 숨졌다. 지난 11월 제주에서 숨진 쿠팡 새벽배송 노동자는 매주 6일 11시간30분씩 일했다. 15일 연속 새벽배송을 한 동료도 있었다. 새벽배송 제한 논란에 대해 쿠팡은 말이 없다. 목숨을 건 야간노동과 새벽배송 덕에 쿠팡의 이윤만 날로 늘어난다. 무엇이 더 중한가?

이주노동자는 여전히 임금체납은 물론 폭력과 차별에 시달린다. 지난 2월 전남 나주에서 스리랑카 노동자를 비닐랩으로 벽돌과 함께 감아 지게차로 들어 올렸다. 사람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논다. 지난 7월 경북 구미에서 폭염으로 베트남 노동자가 숨졌다. 그날은 혹서기 단축 근무였지만 이주노동자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차별이 사람을 죽인다. 지난 10월 대구에서 베트남 유학생이 정부의 합동단속을 피하다가 추락사했다. 토끼몰이로 사람을 죽인다. 만만한 나라 사람에게 가하는 비열하고 냉혹한 인종차별이다. 참담하고 부끄럽다.

우리가 지금 다시 만난 세계는 여전히 이윤과 성장을 생명과 안전보다 중시한다. 경쟁과 효율을 앞세우는 ‘만나고 싶지 않은 세계’다. 광장이 닫히며 우리가 염원했던 세계로 가는 길도 사라졌다. 아니, 가본 적 없는 세계라 본디 길이 없었는지 모른다. 루쉰의 말대로 길은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생겨난다. 광장에서 우리가 만나고 싶은 세계를 보았고 광장이 연대와 협력, 존중과 돌봄의 마음으로 열렸다면, 광장을 기억하고 일상을 광장의 마음으로 채워야 한다. 일상의 광장화로 새로운 세계로 가는 길을 내야 한다. 그런 간절한 마음으로 새해를 맞는다.

조현철 신부·서강대 명예교수

조현철 신부·서강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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