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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세계인권선언 77주년 기념할 자격이 있는가

입력 2025.12.07 20:25

불편한 초대장이 도착했다. 10일 열리는 세계인권선언일 기념식에 초청한다는 내용으로, 초대자는 안창호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었다. ‘누구나 존중받는 사회를 향한 우리의 걸음을 되돌아보는 자리’라고 소개했지만, 공허하다 못해 비아냥거리는 듯했다. 내란 옹호 세력을 비호하고, 성소수자 차별·혐오에 앞장서 온 인물,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는 것도 모자라 성소수자 관련 진정 사건에도 부당 개입하며 인권을 훼손한다고 지적받는 사람이 초대장을 보내다니, 이런 코미디 같은 상황이 또 어디 있겠는가.

지난 1년 우리 사회는 큰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민주주의·인권을 지키려 광장에 나선 시민들은 다름과 차이에 빛으로 화답했고, 차별·혐오 없는 사회가 곧 민주주의의 완성임을 이야기하며, 차별금지법 제정을 해결해야 할 과제로 제시하기도 했다. 윤석열을 퇴진시키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존엄과 권리의 주체로서 민주주의 사회를 향해 한 걸음 더 내디뎌야 한다는 사실 또한 확인했다.

여전히 내란을 획책하고 이를 옹호하는 세력들이 활개를 치고, 극우적 이념과 혐오 정서가 확산하는 등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게다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인권의 마지막 보루와도 같은 국가인권위원회마저 퇴행을 거듭하고 있다. 광장의 중심에서 무지갯빛 목소리를 채웠던 여성과 소수자들의 일상은 여전히 위협받고 있는데, 우선순위에서 밀려 ‘나중’을 반복하고 있는 정치 현실에서 과연 무엇이 바뀌었고, 앞으로 바뀔 수 있는 것인지 의심하며 사람들이 떠난 그 광장에 여전히 머물고 있다.

세계인권선언문 초안을 작성한 프랑스 법률가 ‘르네 카생’은 선언문을 그리스 신전 현관 전면부에 비유하며 모든 사람은 존엄과 평등하고(제1조), 그 어떤 이유로든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제2조)는 내용이 인권 토대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12·3 불법계엄에 맞서 추운 겨울 광장을 뜨겁게 만드는 등 1년을 돌이켜보았을 때, 12·10 세계인권선언 77주년을 맞이한 지금, 인권 토대 위에 놓인 권리들이 안전한 상황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전쟁 참상을 딛고 인간의 생명과 존엄의 소중함을 일깨운 세계인권선언 탄생의 의미가 기념할 자격조차 없는 사람들에 의해 더럽혀지고 있다. 성소수자 관련 진정 사건들은 해결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고, 성소수자 혐오적 태도를 견지하는 위원장이 있는 한 국가인권위원회가 과연 한국 사회가 나아가야 할 인권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지 굉장히 의문스럽다. 안창호 위원장은 한가로이 인권을 기념할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사퇴해야 마땅하다. 그것이야말로 세계인권선언 77주년을 기념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고, 국가인권위원회 정상화를 위한 시작이다.

정민석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 대표

정민석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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