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단체소송, 권리 침해 금지만 가능…개보위 “손배 포함 검토”
1인 10만원 배상이면 쿠팡은 3조원대 부담해야…기업들 예의주시
3370만명의 이름·전화번호·주소가 유출된 쿠팡 사태를 계기로 ‘대표 원고’가 제기한 소송으로 다수 피해자도 일괄 배상을 받을 수 있는 ‘집단소송 제도’ 도입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집단소송제 입법 논의는 수년째 진전이 없었으나 최근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검토 의지를 밝히면서 탄력이 붙고 있다.
8일 정보기술(IT) 업계에 따르면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기업들이 가장 예의주시하는 대목은 집단소송제 도입 여부다. 올해 해킹 사태를 겪은 기업의 한 관계자는 “집단소송이 본격 도입될 경우 수천만명의 고객에게 10만원씩만 배상해도 몇분기 영업이익이 통째로 날아갈 수 있다”며 “집단소송과 징벌적 손해배상 모두 업계에선 가장 민감하게 지켜보는 이슈”라고 말했다.
쿠팡 사태에 엄정 대응 기조를 세운 정부는 집단소송제 도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3일 국회 정무위원회가 연 긴급 현안질의에서 송경희 개인정보보호위원장은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에 단체소송 규정이 있지만, (권리 침해) 금지 청구만 가능하고 손해배상 청구가 포함돼 있지 않다”며 “손해배상을 포함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시민사회에선 쿠팡 사태 초기부터 집단소송제 도입을 강력히 요구해왔다. “정부의 과징금은 기업의 수익에 비해 ‘새 발의 피’일 뿐이며 소비자들이 소송을 제기하기는 너무나 힘들고 지난한 과정”(4일 디지털정의네트워크 논평)이기 때문이다.
참여연대 역시 지난달 30일 “미국 증시에 상장된 쿠팡이 미국에서 이러한 사고를 일으켰다면 집단소송제 등으로 인해 최소 수천억원 보상을 이행해야 했을 것”이라며 “왜 우리 국민은 제도의 미비로 역차별을 당해야 하느냐”고 했다.
2014년 롯데·농협·국민카드에선 1억건이 넘는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4년이 흐른 뒤 법원은 이 중 롯데카드의 경우 피해자에게 1인당 10만원씩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만약 이 사건에 징벌적 배상이 적용돼 기업에 5배(50만원)를 물린다 해도 추가 부담은 수십억원에 그친다. 수백만~수천만명으로 추산되는 피해자 중 3577명만 소송에 참여해서다.
그러나 쿠팡 사태에서 집단소송이 가능해지면 극단적으로 3370만명에게 10만원씩만 배상해도 3조원대 부담이 생긴다.
미국에서 수조원의 제재가 내려지는 것도 집단소송 영향이 크다. 정치 컨설팅회사가 페이스북 이용자 약 8700만명의 개인정보를 불법 수집해 미국 대선 등 정치 광고에 활용한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 스캔들’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 사건으로 페이스북은 연방거래위원회(FTC)의 과징금 약 6조원(50억달러) 외에도 피해자들과의 집단소송 합의금으로 약 1조원(7억2500만달러)을 내야 했다.
이은우 법무법인 지향 변호사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가운데 집단소송 혹은 유사 제도가 없는 국가는 한국, 튀르키예뿐”이라며 “집단소송제를 쿠팡 처벌의 기본 축으로 삼고, 여기에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결합하는 방식이 타당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