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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한다

입력 2025.12.10 19:57

불수능에 대한 여론이 뜨겁다. 특히 절대평가인 영어 1등급 비율이 3.11%에 불과하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은 “난이도 부분을 더 면밀히 살피지 못했다”면서 앞으로 “6~10% 수준의 1등급 비율을 목표치로 삼고 출제 방향을 잡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절대평가란 성취 목표에 따라 출제된 문항들을 통해 평가하는 방식이며, 교육과정에 따른 목표치가 분명하다면 그 결과로 1등급이 3%가 나오건 10%가 나오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단지 절대학습성취의 결과를 드러낼 뿐, 시험의 실패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등급별 비율을 먼저 정해놓고 문제 수준을 그에 맞추겠다는 원장의 말은 결국 이 시험이 무늬만 절대평가일 뿐 실제로는 선발의 편의를 위해 관습적으로 이루어지던 상대평가의 재판이라는 의심을 피하기 어렵다. 또한, 교육부가 이를 전혀 몰랐다는 듯 “수능 출제와 검토 전 과정에 면밀한 조사를 즉시 시행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며 책임을 전가하는 태도 역시 이해할 수 없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기술적 실수라기보다는, 지난 30여년 동안 이어온 물수능 불수능, 오답 논란, 재수생 증가 등, 제 본분을 잃어버리고 단지 선발의 편의를 위해 이리 꼬이고 저리 뒤틀린 수능의 난맥상을 그대로 보여준다.

1993년 처음 실시된 수능을 설계했던 박도순 초대 교육과정평가원장은 대학 수학을 위한 자격시험 성격이었던 수능이 시간이 지나면서 단지 선발을 위해 학력고사처럼 변질되었다고 비판한다. 그 후 10년이 지난 2003년, 당시 이종재 한국교육개발원장은 수능 비중을 대폭 낮춰 자격고사화하자는 의견을 공식 제기했다. 이때부터 이미 문제는 심각했던 것이다. 최근에도 비판은 이어졌다. 서울대 입학본부장을 지낸 권오현 교수는 현행 수능이 교육적인 요소가 빠지고 게임처럼 변했으며, 궁극적으로 그 개선에는 한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 때 교육과정평가원장을 지낸 성기선 교수 역시 “수능으로 고통받는 교육은 이제 끝내야 한다”고 못 박았다. <경쟁교육은 야만이다>를 쓴 김누리 중앙대 교수는 ‘교육적 수능’은 애초 성립 불가능한 형용모순이라고 했고,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 역시 수능에서 매번 문제 오류가 반복되는 이유는 ‘객관식 문항의 출제에서 오류를 완벽하게 바로잡고 난이도를 적절히 조절하는 일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외국 석학들도 한국의 수능은 터무니없이 어려운 문항들로 채워져 있다고 했다. 올해 국어 17번 논란에 대해 평가원이 ‘출제의도를 알면 정답을 말할 수 있다’는 식의 궤변을 늘어놓는 것은 수능이 얼마나 교육적 가치를 잃고 그 기능이 변질되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요컨대, 이제 수능은 그 사명을 다했으며,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할 시기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문재인 정부는 소위 조국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수도권 주요 대학들에 정시선발 비율 40%를 강제함으로써 꺼져가는 수능에 다시 불을 지폈다. 지난 5월 발간된 한국교육개발원 브리프는 서울 주요 대학 정시 40% 정책과 수능 중심 전형 확대가 n수생 증가와 교육 불평등 심화의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분석했다. 물론 교육부는 현재 고1부터 40% 정책을 완화하겠다고 발표했지만 고교학점제 기반 입시를 생각하면 완화 정도로는 어렵다. 과감하게 수능에서 난도를 낮추고 모든 과목을 절대평가답게 출제, 평가함으로써 자격고사화하거나, 아예 이참에 수능을 폐지하는 대전환이 필요하다.

수능이 폐기되면 적어도 다음과 같은 긍정적 변화들이 나타날 수 있다. 첫째, 수능을 겨냥하던 n수생 규모가 확실히 줄어든다. 둘째, 적어도 대규모 수능시장을 겨냥한 사교육 시장이 붕괴한다. 셋째, 수능 점수가 사라지면 대학서열화 경향도 약화된다. 넷째, 대학들은 자신만의 입시방식을 고민하게 된다. 다섯째 고교학점제 이후 교육 정상화의 틈새가 넓어진다. 물론 수능이 사라진 자리에 부정 입학의 씨앗이 자랄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교육부는 재정사업 지원 철회 등 대학 차원의 생존이 걸릴 만큼의 징벌적 대응을 해야 한다. 또한 수능에 기대던 재도전 기회를 대체할 새로운 기회의 창구가 마련되어야 한다. 미국과 같은 편입제도, 유럽과 같은 대학 간 학생이동, 그리고 무전공 입학 또한 또 다른 재도전 기회가 될 수 있다.

급속한 인구 급감과 AI 산업의 소용돌이 속에서 한국 사회는 더 많은 청년들의 사회참여를 기다리고 있다. 더 이상 전 국민이 수능으로 애태우고, 청년들이 소중한 시간을 n수에 바치는 일은 중단돼야 한다. 이재명 정부 최대 과제는 수능에 마침표를 찍는 것이다.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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