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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체험, 가짜 미술

입력 2025.12.10 20:06

길가 벽면 쪽으로 낙엽이 수북하게 쌓였다. 어떤 것들은 가루가 되어 부서진다. 아스팔트 위에, 보도블록 위에 흩어지고 쌓이는 낙엽은 안쓰럽다. 산속이나 대지에 떨어졌다면 자연스레 흙으로 스며들고 곤죽이 되어 그 무엇으로 환생할 텐데 도시의 낙엽은 그럴 기회를 갖지 못하고 사라진다. 이 낙엽을 밟는 것은 나름 운치가 있어 쌓인 낙엽 더미를 일부러 밟으며 걸어간다. 그 많은 마른 낙엽 중에 제법 잘생긴 놈들을 애써 찾는다. 바닷가나 강가에서도 멋진 돌들을 찾곤 했다. 그렇게 골라온 돌들은 일상의 공간에 고완품이거나 미술작품처럼 품위 있게 자리한다. 길에서 주운 저 마른 낙엽 하나만으로도 어딘가가 환하게 밝아오는 느낌이다.

나는 그 순간 스스로 부드럽고 따스한, 감동을 주는 작은 불빛을 내 안에 켠다. 나 자신을 동력 삼아 어둡고 삭막한 삶을 조금 밀어내고, 그 자리에 조명을 밝히는 셈이다. 그렇게 삶을 견딜 만하게 해주는 그 무엇을 도모하는 일이 예술일 것이다. 예술은 스스로 거창하거나 대단한 일이라고 강변하지 않는다. 그러나 예술은 목적에 종속되거나 도구화된 삶에서 벗어나 그 자체에 순수하게 몰입하게 하며, 이를 통해 자신을 더 높은 상태로 고양시키는 일이다. 또한 세상을 온전히 흡입해내고 그것을 전적으로 충만하게 즐기는 일이기도 하다. 뛰어난 예술가들은 그렇게 향유하는 자기 삶을 진솔하게 보여주는 이들이다. 그들에 의해 우리는 세상과 사물을 보는 새로운 눈과 감각, 삶을 향유하는 방법을 배운다.

최근 젊은 작가들이 자기 작업에 대해 언급한 일련의 영상이나 노트를 접하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그 내용이 지나치게 현학적이거나 난해하다는 인상이다. 내 이해가 미치지 못하는 부분도 있겠지만 작업을 대단한 그 무엇으로 치장하고 싶은 욕망이 앞서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1970년대 한국 단색조 작가들은 미술이 도를 닦는 일, 정신을 수양하는 일이라고 강변했다. 미술을 신비한 영역으로 부양시켰다. 오늘날 젊은 작가들은 자신의 작업을 심오한 철학, 인문학과 동일시하고 있다. 20세기 이후 미술은 지난 미술을 비판하고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개념적 성향으로 치달아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결과 미술작품이 지나치게 개념의 도해처럼 이해되고 있는 현실은 우려스럽다.

서구 현대미술의 우상파괴주의는 지난 미술의 소중한 성과나 작가마다의 고유한 회화 제작술을 무가치한 것으로 폄하했다. 오늘날 과거의 역사를 부단히 복기하고 체험하면서 이를 자기만의 고유한 것으로 만들려는 작가들의 노력을 엿보기는 어렵다. 다들 현대미술이란 이름 아래 오로지 현재의 시간에만 매몰되어 있다. 현재 미술에서 유행하는 주제나 스타일만이 관심이다. 유사한 주제, 문제의식, 다른 이의 그림을 동일하게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작업에 대한 진솔한 자기 체험과 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라 마치 정해진 특정 대본을 공통적으로 읽는 것 같았다. 누군가 미술은 이런 주제를 다루어야 하고 특정한 스타일로 만들어야 한다고 얘기해주는 듯하다. 아마도 젊은 작가들은 기성 작가들, 그중에서도 미술계에서 주목받는다고 여겨지는 이들의 작업과 내용을 부단히 학습하면서 그와 유사한 것을 만들려는 것 같다. 그런 젊은 작가들의 작업 상당수는 가짜다.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들, 그리고 오랜 시간 갈고닦아 이룬 자기 방법론의 흔적을 경시하고 정보와 유행에 의지한 채 그럴듯한 겉멋에 휘둘리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렇게 많은 이가 현대미술가라는 역할을 어설프고 조악하게 수행하고 있다. 겉멋과 폼이 지배하는 미술계다.

박영택 미술평론가

박영택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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