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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을 맞는 자세

입력 2025.12.10 20:11

몇년 전부터 가까운 선배들이 하나둘 환갑을 맞더니 어느덧 친구들과 필자도 그 선을 넘고 있다. 선배들이 환갑을 맞았을 때 작은 선물이라도 건넬 생각은 못했다. 평균 기대 수명이 60세에 훨씬 못 미쳤던 시대에 만들어진 풍습이 지금은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필자 자신도 그 시간 앞에 서자 삶의 전환점으로서의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역시 사람은 어떤 문제든 자기 문제와 상황이 되어야 비로소 제대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역사학에서 시간은 가장 중요한 개념이다. 얼핏 추상적으로 보이지만, 시간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변화를 그 내용으로 갖는다. 동서양의 앞선 역사학자들은 시간 자체가 어떤 모습을 가졌는지 이리저리 말했다. 그들에 따르면 크게 두 유형이다. 순환적 시간과 선형적 시간이다. 순환적 시간은 반복되는 시간이고, 선형적 시간은 머리와 꼬리가 있는 반복되지 않는 시간이다. 두 가지를 절충해서 나선형 시간을 말한 사람도 있다. 단기적으로 순환적인 듯 보여도 장기적으로는 선형적이라는 뜻이다. 시간의 모양에 대한 관념은 한 사회 전체가 공유하기도 하고, 집단적 경험을 가진 특정 세대가 공유하기도 한다.

19세기 서양에서 시작된 산업화 시대의 시간은 뚜렷한 선형적 시간이다. 20세기 중반부터 21세기의 첫 번째 4반세기를 지나는 오늘날까지 한국에서도 선형적 시간관념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선형적 시간은 성장과 진보로 측정된다. 미래를 지향하며 현재는 극복되어야 할 것으로 본다. 심지어 과거는 낡은 것, 유치하고 한심한 것이 된다. 다시 오지 않을 과거는 현재와 미래에 별다른 가치를 갖지 못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1960년대에 태어난 사람들과 그들 중 대학을 다녔던 한국인들은 선형적 시간의 독실한 신봉자들이다. 그들은 역사가 진보한다고 믿는다.

오늘날 세계 각국의 양극화된 사회는 점점 더 많은 갈등 양상을 빚고 있다. 역사에서 흔히 보던 모습이다. 또, 지난 1년간 한국인들은 과거가 결코 지나가 버리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작년 12월 계엄의 밤 이래 많은 사람들은 45년 전 광주의 경험을 소환했다. 동시에 이 기간은 한국 사회가 한강 작가의 예언적 물음인 “과거는 미래를 도울 수 있을까?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을까?”에 답하는 기간이었다.

환갑은 사람마다 자신의 삶으로 측정되고 순환적 시간으로 표시된 시간이다. 이 시기쯤 되면 시간이 더는 추상적이지 않다. 개인의 경험과 그에 대한 기억으로 그 크기가 헤아려진다. 이 때문에 환갑은 자기 생애의 끝을 감각적으로 헤아릴 수 있게 되는 시기이다. 물론 남은 삶이 조부모 세대처럼 어떤 것을 하기에도 부족한 자투리 시간은 아니지만 이제 시간은 확실히 희소한 자원이 된다. 제한된 돈이 경제적 효율성의 전제이듯, 제한된 시간은 좋은 삶, 가치를 추구하는 삶의 전제일 것이다.

우리는 선형적 시간관념이 우세한 시대에 살지만, 역사 속에서는 순환적 시간관념이 우세했던 시기나 사회가 훨씬 보편적이다. 순환적 시간은 세상과 삶의 반복되는 보편성을 인정하는 관념이다. 순환적 시간관념 속에서 우리는 다음 세대를 생각하게도 되고, 사람들이 서로 별 차이 없는 존재들임을 느끼게도 된다. 이전 시대 사람들은 환갑을 기념할 정도로 우리보다 훨씬 짧은 생애를 살았다. 하지만 그 짧은 생애 때문에 그들 삶이 우리 삶보다 가치가 덜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조선시대에 서울~부산을 20일 걸려서 이동했던 것을 지금 우리는 두세 시간이면 이동한다. 그 남은 시간이 당연히 우리의 삶을 더 가치 있게 만든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삶의 가치는 개인보다 더 큰 시간과 가치를 지닌 것에 속하려는 각자의 노력에 달린 것이리라. 그것이 무엇인지는 서로 달라도, 그것에 다가서려는 노력의 가치가 다를 리는 없을 것이다.

이정철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이정철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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