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규택 국민의힘 의원이 11일 국회 본회의에서 형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하며 ‘61년 만에 국회의장이 필리버스터 방해한 곳’이 적힌 손팻말을 들어 보이자 우원식 의장이 뒤에서 보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국민의힘은 11일 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내란전담재판부 설치법 등 이른바 ‘8대 악법’을 저지하겠다며 자신들이 안건 상정에 동의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대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에 돌입했다. 여야가 합의한 법안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한 사례는 지난 9일 나경원 의원에 이어 헌정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다.
국민의힘은 이날 국회 본회의에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상정되자 곽규택 의원을 시작으로 필리버스터를 진행했다. 이 개정안은 디지털 성범죄 등에 대한 국제 공조 수사를 위해 다자협약인 사이버 범죄 협약에 가입할 요건을 갖추고 국민 알 권리를 위해 판결문 공개 범위를 넓히는 게 골자다. 전날 양당 원내대표가 본회의 안건으로 합의했다. 또 해당 개정안은 장동혁 대표와 곽 의원을 포함한 국민의힘 의원 10명이 발의한 개정안을 통합 조정한 법률안이다.
여야가 합의한 법안을 두고 필리버스터가 이뤄진 것은 전례가 없다. 그동안 필리버스터는 여야 쟁점 법안을 국회의장이 본회의에 직권 상정하거나 다수당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해 자동 상정될 경우 소수당의 마지막 반대 수단으로 진행돼왔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무차별적인 필리버스터가 “국민들에게 8대 악법의 부당성을 호소”(최은석 원내수석대변인)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입장이지만, 당 일각에선 “국민들에게 설득력이 있겠냐”는 비판이 나온다. 한 중진 의원은 “잘못된 법이면 몰라도 민생 법안들에 왜 필리버스터를 하는지 모르겠다”며 “국민들은 ‘너나 잘하라’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초선 의원은 “우리가 합의한 법안에 필리버스터를 하고 표결에선 찬성하는 모습이 모순적으로 비치지 않겠나”라고 했다.
국민의힘 의원 일부는 나 의원이 지난 9일 필리버스터를 진행한 가맹사업법 개정안에 대해 찬성 표결을 했다. 향후엔 자당 소속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에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를 진행하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여권 역시 의회 민주주의 관행을 허물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지난 9일 나 의원이 필리버스터 도중 안건에서 벗어난 발언을 했다며 발언석 마이크를 껐고, 이후 장내가 소란스러워지자 정회를 선언했다. 국회법에 국회의장이 필리버스터 발언을 중단시키고 정회를 선언할 수 있다고 해석할 수 있는 조항은 있지만, 실제 이뤄진 건 1964년 공화당 출신 이효상 의장이 당시 김대중(DJ) 의원의 마이크를 끈 이후 61년 만이었다.
우 의장은 이날 필리버스터 시작 전 “과거에도 무제한 토론 중에 의제를 벗어나는 경우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나 의원은) 작심하고 의제 외 발언을 하겠다고 선언하고 (필리버스터를) 시작했다”고 자신의 발언 제재는 합당했다고 주장했다. 우 의장은 이날 곽 의원 발언 도중 끼어들어 “안건(과 관련한 내용)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또 국회법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국민의힘은 이날 우 의장이 정치적 중립성을 지키지 않았다며 사퇴 촉구 결의안을 제출하고 형사 고발 가능성도 시사했다.
지병근 조선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여야 모두 본인들이 만든 룰을 존중하려고 노력하며 국회 운영을 해야 하는데 극한 대결을 반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형사소송법 개정안에 대한 필리버스터는 12일 오후 종료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