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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비닐계의 ‘빌런’, PVC

입력 2025.12.11 19:58

수정 2025.12.11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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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이라는 책 제목처럼 내게도 금지된 소망이 있다. 바로 항공 여행이다. 이 지면에서 최소 5년은 비행기를 안 타겠다고 선언했었다. 다른 친환경 실천은 사심으로 좋아서 하는데 오직 이것만은 예외다. 해외로 떠나는 사람들이 부러워 가끔 배알이 꼬일 지경이니까.

그런데 희소식이 들려왔다. 유럽연합(EU)은 올해부터 유럽 공항에서 급유하는 모든 항공기에 지속 가능 항공유(SAF) 사용을 의무화했다. 2025년 최소 2%를 사용해야 하며, 2030년까지 6%, 2050년까지 70%로 확대할 계획이다.

지속 가능 항공유는 폐식용유, 농업 부산물, 동식물성 기름 등인데 기존 석유계 연료 대비 탄소 배출량을 최대 80%까지 줄일 수 있다. 우리 곁에도 지속 가능 항공유가 널려 있다. 치킨집에서 버려지는 폐식용유다. 그런데 이런 바이오 자원만으로는 부족해서 떠오른 소재가 있으니, 바로 흔히 버려지는 비닐이다.

원래 폐비닐은 재활용계의 천덕꾸러기 같은 존재였다. 라면 봉지처럼 플라스틱에 알루미늄이 섞여 있는 혼합 재질에 오염된 경우가 많아 물질로 재활용하기 힘들다. 폐비닐 중 극히 일부만 질이 떨어지는 팔레트나 화분 생산 등에 재활용되고, 대부분 태워서 에너지를 얻는 고형 연료가 된다. 재활용 가치가 없으니 폐비닐은 쉽게 종량제 봉투에 버려졌다. 하지만 폐비닐을 기름으로 되돌리는 열분해 기술이 발전하고 지속 가능 항공유에 대한 수요가 생기면서 상황이 변했다. 폐비닐에서 기름을 짜서 비행기를 띄우는 세상이 된 것이다. 국내 정유사들도 열 분해유 기술 개발에 뛰어들고, 서울시는 주택가와 상가에 폐비닐만 담는 전용 수거 봉투를 배포 중이다. 갑자기 왕후장상의 유일한 핏줄이 된 천덕꾸러기처럼 폐비닐은 귀한 존재가 되었다.

폐비닐 수거 전용 봉투에는 과자 봉지, 비닐장갑, 뽁뽁이, 양파망, 음식 포장 비닐, 보온 팩, 자투리 비닐 등 모든 비닐을 넣어도 된다. 오직 한 가지, 마트와 분식점, 중국집 등에서 사용하는 랩만은 종량제 봉투에 버려야 한다. 랩은 PVC 플라스틱인데 태울 때 다이옥신이 나오고 일부 제품에는 프탈레이트와 중금속 등 환경호르몬이 들어 있다. 게다가 PVC 처리 시 유해가스가 재활용 기계를 부식시키므로 PVC 랩은 폐비닐로 배출해서는 안 된다. 우리 몸과 지구를 해치고 끝내 재활용까지 막는 폐비닐계의 ‘빌런’인 것이다. 독일, 대만 등에서는 식품 포장재에 PVC 사용을 금지했으며, 국내에서도 2019년 PVC 랩 사용이 금지되었다. 다만 연 매출 10억원 미만 업체는 금지 대상에서 제외되어, 현재 마트와 식당에서 사용하는 랩의 약 80%가 여전히 PVC다. 이와 달리 가정용 랩은 폴리에틸렌 소재라 폐비닐 수거 봉투에 넣어도 된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7~8년에 한 번씩 죄책감 없이 비행기를 타고 싶다. 지속 가능 항공유가 더 많이 사용되길 소망한다. 그 마음으로 플라스틱의 약 30%를 차지하는 폐비닐을 싹싹 긁어모은다. 더불어 폐비닐 재활용을 해치는 나쁜 플라스틱 PVC가 전면 금지되기를 바란다. 사심을 담아 PVC 랩 금지 서명에 동참해 주길 부탁드린다.

[녹색세상]폐비닐계의 ‘빌런’, PVC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고금숙 플라스틱프리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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