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약 3만년 전, 한 어머니가 시집가는 딸에게 오랫동안 보관해오던 소중한 물건을 건넵니다. 한 손으로도 움켜쥘 수 있을 정도로 작게 만든 조각상인데요. 그런데 그 모양이 조금 특이합니다. 커다란 엉덩이와 두꺼운 허리 둘레. 인류학자들은 이 조각상에 풍요를 기원하는 주술적 의미가 있다고 추정합니다.
당시는 현재보다 평균기온이 10도 낮아 극심한 추위에 시달리던 때였습니다. 300만년 전쯤 시작된 마지막 빙하기 중에서도 기온이 가장 낮은 빙기에 해당했죠. 이런 극심한 추위에 그처럼 풍만한 몸매를 유지하기는 거의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아니 생존 자체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멀리 떠나는 딸에게 조각상을 주며 부디 잘 살기를 기원했을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이 조각상을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라고 부릅니다. 빌렌도르프는 1908년 이 조각상이 발견된 오스트리아의 지역명이고, 비너스는 이 조각상이 당시 기준으로는 미의 상징이었을 것이란 추정에 따라 붙인 명칭입니다.
그런데 비너스상이 이것 하나만은 아닙니다. 비슷한 시기 유럽과 러시아에 걸쳐 돌, 상아, 뿔, 점토 등으로 만든 다수의 비슷한 조각상들이 발견된 것이죠. 그런데 더 주목할 만한 것은 그 형태가 일정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어떤 것은 빌렌도르프의 비너스처럼 풍만하지만, 또 어떤 것은 상대적으로 날씬한 몸매를 하고 있기 때문이죠.
2021년 한 연구팀이 여러 비너스상들의 비만도와 그것들이 만들어진 시기의 기후를 비교 연구했습니다. 그러자 뚜렷한 상관관계가 나타났는데요, 극지방의 빙하가 유럽 대륙까지 확장되는 시기에는 비만도가 높아지고, 반대로 빙하가 후퇴할 때는 비만도가 낮아진 것입니다. 특히 빙하에 가까운 북쪽 지역은 비만도가 더 높았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합니다. 환경이 더 열악할수록 더욱 풍만한 몸을 갈망한 것입니다. 영양분을 많이 섭취한 풍만한 몸이 생존과 생식의 가능성을 높였기 때문이죠.
이러한 인류의 오래된 갈망은 우리 DNA에도 그 흔적을 남겼습니다. 살아남고 자식을 남기기 위해 가능한 한 많은 영양분을 축적하려는 경향이 생긴 것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필요한 영양분의 정보를 파악하고 전달하는 체계가 발달했습니다.
맛과 향의 성분이라 불리는 것들은 바로 이 정보와 관련이 있습니다. 어떤 영양이 존재하는지 암시하는 성분들이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감칠맛 성분은 주로 단백질의 분해 과정에서 생성되기 때문에 이는 단백질이 존재한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다양한 향은 단백질, 탄수화물과 같은 영양분이 분해되어 생성되기 때문에 이 또한 영양이 풍부하다는 점을 알게 해주죠. 이러한 감각정보는 일련의 신호체계를 통해 뇌에 전달됩니다. 그러면 우리 뇌는 이것을 맛이나 향으로 인식하면서 음식의 맛을 최종 평가합니다.
그래서 잘 조리된 음식은 맛이 좋다고 느껴집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필요한 영양분들이 풍부하기 때문이죠. 결국 요리가 맛있어야만 하는 이유는, 뇌가 우리로 하여금 그것이 먹을 만한 것임을 인식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임두원 국립과천과학관 연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