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드라마 <모범택시 3> 스틸컷. SBS 제공
<모범택시> 시즌 3가 돌아왔다. 초반부터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더니, 방송 6회만에 최소 시청률 14.3%를 돌파했다. <모범택시> 시리즈는 “베일에 가려진 택시회사 무지개 운수와 택시기사 김도기가 억울한 피해자를 대신해 복수를 완성”(공식 소개)하는 작품으로, 2010년대 이후 급증한 악을 응징하는 다크 히어로 또는 사적 복수 서사의 흐름을 보여준다.이러한 소재의 인기는 그동안 충분히 논의되었듯 공적 시스템에 대한 불신, 계급과 자본이 가해와 피해를 결정하는 부조리, 폭력을 정당화하는 쾌락 등이 원인이다. <더 글로리> <비질란테> <살인자ㅇ난감> <빈센조> <마우스> 등이 대중적 인기와 윤리적 질문을 동시에 쏘아 올렸다. 악을 처단하고 피해자의 억울함을 위로 한다는 점에서 사적 복수는 지극히 한국적인 한풀이, 해원(解寃) 서사와도 겹친다. 소위 ‘정의 구현’의 이름으로 통쾌하게 복수하는 사이다 서사의 인기를 이해하는 한편, 악인을 철저히 타자화하고 가해자에 대한 엄벌만이 피해자들의 유일한 해결책인 양 제시되는 상황은 우려스럽다. 복수와 처벌 외에 피해자가 어떻게 회복하고 이후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지, 그를 위해 공동체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같은 고민은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복수와 가해자 처벌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으며 오히려 피해자가 직접 그 부담을 짊어지면, 또 다른 피해를 낳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한 창작물에서 복수를 행한 후 몰려오는 허무함이나 고통을 다루었다. < 친절한 금자 씨>(박찬욱 감독, 2005)에서 금자(이영애)는 감옥에서 13년간 치밀하게 준비한 끝에 죽어 마땅한 범죄자 백선생(최민식)에게 복수한다. 백선생이 저지른 또 다른 범죄의 피해자들 또한 여기에 연루된다. 복수는 마냥 통쾌하지만은 않으며, 처절하고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금자는 스스로 손에 피를 묻히면서 “그토록 원하던 영혼의 구원”을 포기한다. <더 글로리>(넷플릭스)에서 동은은 평생을 준비한 복수가 이루어진 뒤 자살을 시도 한다. “피해자들이 잃어버린 것 중에 되찾을 수 있는 게 몇 개나 된다고 생각하세요? 나의 영광과 명예. 오직 그것뿐이죠. 누군가는 그걸 용서로 되찾고 누군가는 복수로 되찾는 거죠. 그걸 찾아야 비로소 원점이고 그제야 동은 후배의 열아홉 살이 시작되는 거니까요.”<더 글로리>에서 동은의 복수를 돕는 조력자 주여정의 대사다. “나의 영광과 명예”란 곧 존엄이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은 피해자의 존엄 회복에 필요하지만, 처벌이 자동적으로 피해자의 존엄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죽으려던 동은을 살린 것은 통쾌한 복수가 아니라, 동은을 지지하고 일으키는 주변인이다. 현실에서도 가해자가 누구인지 밝혀내지조차 못하거나, 가해자를 처벌하지 못한 피해자들이 때로는 회복에 성공하고, 또 완전히 치유되지 못했더라도 피해 이후로도 이어지는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그럼에도 사적 복수 서사에서 가해자 처벌은 매혹적인 소재이자, ‘정의 구현’의 필요충분조건처럼 작동한다. 실제로 계급과 약자됨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보호받지도 피해를 인정받지도 못한 피해자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가해와 피해 사실이 명확하게 드러나야 하는 국가 폭력의 역사, 수사기관의 부패, 엘리트 남성의 얼굴을 한 사법 체계의 기울어진 판결이 초래하는 문제는 진실 규명과 가해자 처벌 없이는 회복되기 힘든 피해다. <호텔 델루나>(tvN)에는 불법촬영으로 고통받다 원귀가 된 피해자가 등장하는데, 기술이 생산하는 새로운 형태의 디지털 성폭력을 가볍게 여기는 법 때문에 피해가 증폭된다. 가해자는 승승장구한다. 사적 복수는 가해자를 살해하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허구속에서나마 현실의 부조리를 고발한다. 하지만 이런 식의 사적 복수 서사에서 가해는 주로 악질적인 개인의 차원으로 축소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불법 촬영이 그토록 치명적인 피해를 입힐 수 있는 구조를 논하지 않고서는, 불법촬영의 가해자가 설사 죽는다 하더라도, 피해자는 공동체로 안전하게 복귀할 수 없다. 영상을 유포하고 보는 불특정 다수, 여성의 성적 훼손을 여전히 가장 큰 문제로 여기는 가부장제 문화, 타인의 피해 사실을 타산지석으로 소비하는 폭력 등은 촘촘하게 쌓이고 얽혀 또 다른 거대한 가해를 구성한다. 그리고 이런 평범한 얼굴의 ‘먼지 가해자’들과 구조적 한계는 사적 복수 서사의 관심사가 아니다. 회복과 치유의 서사는 훨씬 어렵고 복잡하며 섬세하지만 사적 복수는 쉽고 빠르고 효능감을 보장한다. ‘나’ 는 악인도 가해자도 아니라는 순진한 믿음, 악인에 대한 타자화와 거리두기를 주춧돌 삼아서.
결국 사적 복수물은 일련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엄벌주의와 격리(<모범택시> 에는 사설 감옥이 나온다)는 일그러진 세계의 문제를 해결할 효율적인 방법이고, 범죄자들은 상종할 가치가 없다! 단순하고 통쾌하다. 그러나 갱생과 교화의 가능성을 믿지 않는다면 공동체 역시 존속할 수 없다. 범죄자에게 낙인을 찍고 배척한다면 또 다른 범죄로 유입되는 무한 굴레만 남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형량만을 강화한다면, 범죄 사실을 은폐하고자 피해자의 생존율이 낮아질 위험이 커진다. 적절하게 가해자를 처벌하지 못하는 문제를 개선하되, 무작정 처벌을 강화하는 것은 범죄를 억제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전 세계적인 연구와 사례로 충분히 입증되었다. 하지만 피해자의 회복과 치유를 논의하는 것만큼이나, 교화와 갱생의 서사 또한 쉽지 않다. ‘범죄자 미화’ 또는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논란이 수반되기 때문이다. <백종원의 레미제라블>(ENA)에서는 소년범 9호 처분을 받았던 출연자가 등장해서 방영 전부터 논란이 일었다. 이때 노래로 비행 청소년의 교화를 시도한 <송포유>(SBS, 2013)가 함께 언급되었는데, 당시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이가 나중에 음주운전 사고를 저지르는 등의 문제로 “역시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 라는 냉소가 만연했다. 그러나 당시 <송포유>는 프로그램 내의 전문가 없이 청소년을 방송에 노출시켜 섣부른 교화를 시도하거나 자신의 잘못에 대한 성찰 등을 간과하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보기 싫거나 불편하다는 이유로 가해자들의 가시화 자체를 막거나 갱생과 교화의 가능성을 차단할 수 없다. 미화와 악마화라는 극단적인 이분법 외의 스펙트럼 속에, 이 ‘나쁜’ 타자들의 자리가 마련되어야 한다. 악인 몇의 인생이 망하는 것보다 무고한 피해자가 더는 발생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2024년 방영한 < 놀아주는 여자>(JTBC)는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로, 남자 주인공 서지환(엄태구)은 직원의 80%가 전과자인 육가공업체의 대표다. 그 자신이 전국 최대 조직폭력집단 보스의 외아들이었고, 자기 손으로 아버지를 감옥에 보냈다. 서지환이 운영하는 ‘목마른 사슴’의 직원들은 자주 전과자라는 과거에 발목이 잡힌다. 문제가 없는 상품도 전과자들이 일하는 회사라는 사실이 드러나면 거부당하고, 고객에게 대놓고 차별과 폭행을 당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서지환은 “너희가 저지른 죄가 있으니, 감수해라”라고 말하는 동시에 직원들을 향한 굳건한 신뢰를 보낸다. ‘목마른 사슴’에서 중시하는 것은 ‘갱생의 의지’이고, 직원들은 종종 관성처럼 실수하지만 뉘우친다. 처음에는 지환과 목마른 사슴 의 일원들을 편견 어린 눈으로 보던 고은하(한선화) 또한, 그들이 달라지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점을 알아본다. 다소 이상적이고 낭만적으로 보이고, 로맨틱 코미디라는 특성상 서지환의 범죄는 약자 대상이 아니라는 한계가 존재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소중하다.
최근 디스패치가 배우 조진웅의 소년범기록을 공개하면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일었다. 이 사건은 여러 사안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예를 들면 디스패치가 행한 것은 일종의 사적 복수 대행이고, 열람 권한이 없는 정보를 함부로 다루었다. (배우 개인의 사례와 무관하게) 소년범은 취약한 계급의 청소년들이 범죄에 연루된다는 통계가 있기에 일반 범죄와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 동시에 범죄 피해자에 대한 구제와 지원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 소년범이 어떤 처분을 받았는지는 피해 당사자조차 알 수 없어 피해자가 소외되는 문제, 피해자의 회복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등이 모두 다른 층위에서 논의되어야 하는 부분이다. 이 문제를 포함하여 그 동안 우리 사회가 엄벌주의의 효능감과 사적 복수의 짜릿함에 기대어 피해자의 회복과 치유에는 무심하고, 교화와 갱생에 필요한 역할을 방관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개인을 제물 삼아 공분과 분노만 자극하는 것을 넘어서는, 흠결 있는 삶은 ‘나’와 무관하다는 믿음을 넘어서는 시도가 필요하다.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