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 1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동북아평화공존포럼 토론회에서 행사 순서를 기다리며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대북정책을 둘러싼 외교부와 통일부간 갈등이 충돌 양상을 보이고 있다. 외교부와 주한미국대사관이 주도해 ‘한·미 대북정책 공조회의’를 가동키로 한 것이 계기가 됐다. 통일부는 16일 첫 회의가 열리는 한·미 대북정책 공조회의에 대해 “한·미간 외교 현안 협의에 대한 내용이기 때문에 통일부는 불참하기로 했다”며 “대북정책 사안에 대해서는 필요시 통일부가 별도로 미측과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15일 밝혔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 10일 “한반도 정책, 남북관계는 주권의 영역으로 동맹국과 협의의 주체는 통일부”라며 공조회의 구성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바 있다.
문재인 정부 시기 한·미 워킹그룹이 미국의 ‘남북협력 심의기구’로 기능하면서 남북관계를 옥죄었던 전례를 감안하면, 통일부의 불만은 수긍이 가는 측면이 있다. 남북이 2018년 항인플루엔자 약물 타미플루의 대북 인도적 지원에 합의했음에도 워킹그룹이 운반 트럭의 대북제재 위반 여부를 따지며 시간을 끌다 무산된 바 있다. 미국 측 대표인 케빈 김 주한미국 대사대리가 대북제재 유지론자라는 점도 이번 협의체가 ‘제2의 워킹그룹’이 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이번 갈등을 ‘부처간 정책 주도권 싸움’으로만 보기 어려운 이유다. 임동원·정세현 등 전직 통일부 장관 6명이 이날 “외교부 주도의 한·미 워킹그룹 가동 계획을 중단”하라는 성명을 내며 우려를 공개 표명했다.
물론, 북한이 ‘적대적 두 국가론’를 내걸고 남북관계 단절을 꾀하는 현실 속에서 대북정책에 신중을 기할 필요는 있다. 그러나 한·미 협의체가 구성될 경우 한국의 정책 자율성이 위축될 수 있다는 점도 자명하다. 전직 통일부 장관들이 지적했듯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미 정부 실무부처 간에 의견차가 있는 대북 정책에서 굳이 미국 실무자들과의 협의체를 가동하는 것이 어떤 실익이 있는지도 생각해볼 문제다.
이재명 정부는 ‘국민주권 대북정책’을 펼치겠다고 밝혔지만, 출범 6개월 동안 이를 실감케 하는 정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을 비롯한 ‘동맹파’가 대북정책을 주도한 데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미 연합연습을 둘러싸고도 지금 정동영 장관과 위성락 실장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부 내 불필요한 마찰이 정책 동력을 훼손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한국이 대북정책에서 ‘정책 주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구조가 만들어지는 것 또한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