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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약

서울특별시 마포구 상암동과 성산동 일대에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기념하며 조성된 이곳은 1978년부터 1993년까지 운영된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이 폐쇄된 자리에 만들어졌다.

1억t 이상의 쓰레기는 여전히 서울 한복판에 존재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기억에선 사라졌다.

책은 "쓰레기 처리에 관련된 제도와 기술 일체는 집단적 기억상실증과 정신 조작의 문화 장치이기도 하다"며 "쓰레기장은 소비 대중의 기억상실증을 고질화하고 소비주의적 일상에 쉽게 몰입하게끔 면죄부를 주는 장소"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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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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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묻고, 태우고, 잊었다…쉽게 버린다는 가책까지

입력 2025.12.18 19:57

  • 고희진 기자
  • 기사를 재생 중이에요

쓰레기 기억상실증

임태훈 지음

역사공간 | 392쪽 | 2만5800원

[책과 삶]파묻고, 태우고, 잊었다…쉽게 버린다는 가책까지

월드컵공원. 서울특별시 마포구 상암동과 성산동 일대에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기념하며 조성된 이곳은 1978년부터 1993년까지 운영된 난지도 쓰레기 매립장이 폐쇄된 자리에 만들어졌다. 난지도는 산업화 시대 서울과 수도권 일부 지역에서 배출한 쓰레기를 받아내 거대한 쓰레기산을 쌓았다. 하루 트럭 300대가 오가며 쌓은 쓰레기산은 지상 90m 높이로 두 개의 봉분을 이뤘다. 그렇다면 그 많던 쓰레기들은 어디로 갔을까. 허무한 답이지만 여전히 그곳에 그대로 묻혀 있다. 1억t 이상의 쓰레기는 여전히 서울 한복판에 존재하고 있지만 사람들의 기억에선 사라졌다. 가히 ‘쓰레기 기억상실증’(Waste Amnesia)의 시대다.

책은 “쓰레기 처리에 관련된 제도와 기술 일체는 집단적 기억상실증과 정신 조작의 문화 장치이기도 하다”며 “쓰레기장은 소비 대중의 기억상실증을 고질화하고 소비주의적 일상에 쉽게 몰입하게끔 면죄부를 주는 장소”라고 말한다. 길바닥이 아닌 ‘쓰레기통’에 쓰레기를 버렸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은 쓰레기에 대한 도덕적 책임감에서 해방된다. 쓰레기의 존재 자체는 그대로인데 그것을 둔 장소가 달라졌다는 이유로 자신이 소비한 쓰레기가 처리되었다고 쉽게 믿어버리는 것이다.

문학 통해 본 쓰레기 처리 제도
한국 사회의 편리한 망각 지적
“소비 대중 기억상실증 고질화
소비주의 일상 몰입의 면죄부”

다행히도 이 같은 편안한 무관심의 세계에서 “망각된 존재의 감각을 마주하게” 하는 “대항 기억의 장소”로 역할 하는 것은 문학이다. 정연희의 소설 <난지도>에는 쓰레기를 팔아 생존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난지도 인구가 증가하자 난감해하는 공무원이 등장한다. “아이구, 나도 못해먹겠시다… 주거동 수는 720인데 세대 수는 팔십여 세대가 더해서 820세대란 말이에요. 그런데 그 세대가 전부 주민등록이나 제대로 해주는 줄 압니까? 등재된 세대는 452세대뿐이란 말이에요.”(‘난지도’ 중)

1990년 1월 난지도에서 고물을 수집하는 사람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

1990년 1월 난지도에서 고물을 수집하는 사람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

집도 절도 없이 날품팔이로 쓰레기를 주워 팔아 먹고사는 이들이 난지도로 모여들었다. “서울우유 병은 한 개에 10원, 에프킬라 통은 15원, 전기제품 부속품의 하나인 진공관은 2백원, 브라운관은 4백원이었다.” 유재순의 르포르타주 소설 <난지도 사람들> 역시 당시의 기록을 통해 한국 사회의 손쉬운 망각을 저지한다.

1993년 쓰레기 매립장이 폐쇄된 이후 난지도 소재 소설은 더 이상 발표되지 않고 있다. 거대한 쓰레기산이 눈앞에 보였던 과거와 달리 현재 한국 사회에서 쓰레기는 더 깊숙이 감춰진 존재가 됐다. 문학은 이제 시선 바깥에 놓인 것들을 찾아 독자에게 들이밀고 은폐된 진실을 알린다.

정화조에서 유독가스로 질식사한 청소 노동자의 죽음을 다룬 김성달의 소설 ‘아무도 모른다’와 발전소 도수관의 삿갓조개를 제거하던 비정규직 노동자가 겪는 절망을 그린 배지영의 ‘삿갓조개’가 그렇다. “종학은 가파르고 비좁은 계단을 타고 내려가 정화조 뚜껑을 열었다. 눈앞에 노란 가스가 층을 이루고 있었다. 아주 노란색이었다. 순간 메탄과 암모니아가 섞인 가스가 콧속으로 들어와 바로 폐를 찔렀다. 머리가 띵했다.”(‘아무도 모른다’ 중) “사실 그들의 노동 매뉴얼엔 45분 노동에 15분 휴식이 기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일해서는 하루 열 시간 작업 시간을 도저히 채워나갈 수 없었다.”(‘삿갓조개’ 중)

매립할 쓰레기가 무생물이 아닌 생명체일 때도 있다. 공장식 사육이 늘어나며 조류 인플루엔자와 구제역 등 가축 전염병으로 인한 대규모 폐사가 유행처럼 번진다. 최악으로 기록된 2010~2011년 구제역 파동 당시 약 4개월 동안 348만마리의 가축이 땅에 묻혔다. 살처분 현장이 도심과 멀리 떨어진 곳이라는 점 때문에 도시의 소비자들은 이 같은 지옥도 역시 금세 잊는다. 대형 마트에 깔끔하게 정육된 고기들에 살처분 현장의 고통 따위는 담겨 있지 않다. 그러나 강영숙의 <문래에서>, 김숨의 <구덩이>, 이상권의 <젖>과 <삼겹살> 등 살처분 현장의 참상을 고발한 소설들 덕택에 고통의 기억은 다시 생명력을 가진다.

책의 부제는 ‘버려진 것들로 읽는 문학과 기억의 문화사’다. 쓰레기를 통해 한국 사회가 마주한 병리적 현상으로 저자가 명명한 ‘쓰레기 기억상실증’을 문학 작품과 함께 풀어나간다. 마지막에 가서는 지난해 12·3 불법 계엄의 명분이 된 북한 오물 풍선에 대해서도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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