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사실들): 납품업체 쥐어짜 만든 ‘최저가’
선(맥락들): 노동자 갈아넣는 택배 속도전
면(관점들): 방치하면 업계 ‘표준’ 된다
대규모 개인정보 유출 사태 관련 국회 청문회를 하루 앞둔 지난 16일 서울의 한 차고지에 차량들이 주차돼 있다. 성동훈 기자
3370만명이라는 역대 최악의 고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사고를 내고도 현재까지 대규모 ‘탈팡’(쿠팡 탈퇴) 현상은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빠른 배송과 최저가로 생활 깊숙이 파고든 쿠팡에 길든 소비자들은 삶이 불편해질까 봐 탈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최종 목표는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생각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정확히 10년 전인 2015년 11월, 쿠팡의 물류사업 계획을 발표하는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역대 최악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에도 불구하고, 김 의장은 ‘쿠팡 공화국’이라는 꿈을 현실화하고 있는 듯합니다.
문제는 ‘지속 가능성’입니다. 쿠팡에서는 올해에만 8명(야간 물류센터 4명, 택배기사 4명)이 일하다 숨졌고, 입점 판매업체들은 높은 매출에 묶여 적은 마진을 감수하며 버티고 있다고 하소연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오늘 ‘에디터픽’에서는 쿠팡 초고속 성장 이면에 숨겨진 ‘그늘’을 조명한 경향신문 기획기사 ‘쿠팡이라는 일터’를 소개해드릴게요.
점(사실들): 납품업체 쥐어짜 만든 ‘최저가’
소비자들은 쿠팡의 최대 장점으로 ‘최저가’를 꼽습니다. 쿠팡이 물건을 판매하는 방식은 직매입(로켓배송)과 판매자로켓, 오픈마켓(3자 물류) 등 세 가지입니다. 직매입과 판매자로켓 모두 쿠팡 물류센터에서 보관·검수·배송이 이뤄지는데요. 가격 결정을 쿠팡이 하면 ‘로켓배송’, 판매자가 하면 ‘판매자로켓’이라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최저가는 쿠팡이 직매입하는 로켓배송 제품이 대부분입니다. 전체 상품 구성이나 매출에서 직매입이 차지하는 비중이 90%를 넘습니다.
그런데 로켓배송 상품에 물건을 공급해온 소상공인들은 “쿠팡이 납품업체를 쥐어짜고 있다”며 울상입니다. 쿠팡에 세제를 직매입으로 공급해온 지모씨(49)는 “6년 전 처음 거래했을 때 납품가가 정가의 75% 수준이었는데 올해는 60%로 낮춰달라고 하더라”며 “매출은 좋아도 남는 게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식재료를 납품 중인 정모씨(38)도 “도저히 맞출 수 없는 공급가를 제안하는데 협의가 아니고 반강제”라며 “그 가격은 맞출 수 없다고 하면 어떻게든 맞추라고 하는 식”이라고 말했습니다.
원터치로 결제하는 등 쉽게 주문할 수 있는 데다 자유롭게 반품할 수 있는 점도 소비자들이 생각하는 쿠팡의 장점입니다. 와우(유료 멤버십) 회원은 배송과 반품을 모두 무료로 할 수 있고, 30일 이내면 조건 없는 환불도 가능합니다. 이모씨(35)는 “가끔 옷을 주문할 때는 입어보고 결정하려고 다양한 사이즈와 디자인을 시킨다”며 “5벌 주문했다가 모두 반품한 적도 있다. 환불 처리도 즉시 되더라”고 말했습니다.
소비자들에게는 더 없이 편리한 쿠팡의 반품정책. 그런데 반품 과정은 쿠팡이 아닌 업체 책임으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판매자로켓으로 인테리어 소품을 파는 유모씨(40)는 “제품에서 술집 냄새가 나는데도 전액 환불해줬다”며 “고객 책임을 증명하려면 업체가 고객과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증빙해야 하는 등 복잡해 자체 손실로 처리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오픈마켓으로 패션잡화를 판매 중인 고모씨(54)는 “택배사 사정으로 도착을 못한 경우 다른 e커머스들은 업체 귀책이 아닌데, 쿠팡은 상품 배송 중 환불 요청도 업체가 왕복 택배비를 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쿠팡이 최근 자체브랜드(PB) 제품을 공격적으로 확대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소상공인들은 우려하고 있습니다. 쿠팡에는 ‘곰곰’ ‘탐사’ ‘코멧’ 등 생필품부터 신선식품까지 망라한 19개 브랜드가 있는데요. 판매제품은 휴지와 마스크·커튼·빨래 바구니뿐만 아니라 플라스틱 팔레트와 검정 비닐봉지 등도 있습니다. 인테리어 소품 등을 쿠팡에서 팔고 있는 유씨는 “쿠팡이 생활용품 상자 같은 사소한 것을 직접 만들어 판다. 우리로선 (다른 경쟁업체뿐만이 아니라) 쿠팡이랑도 가격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종우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쿠팡이 판매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으니 뭐가 잘 팔리는지, 돈이 되는지를 알고 PB로 마진을 늘리려고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대형마트나 편의점 등도 PB 제품을 판매합니다. 하지만 라면 등 대기업과 경쟁하는 제품을 PB로 내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쿠팡처럼 소비자들이 브랜드와 상관없이 구매하는 제품을 PB로 만들어 소상공인들과 직접 경쟁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쿠팡이 지난 7일 대규모 정보 유출 사건과 관련해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정 공지와 피싱을 포함한 2차 피해 방지 등을 공지했다.사진은 이날 서울 중구 쿠팡 물류 센터 모습. 문재원 기자
선(맥락들): 노동자 갈아넣는 택배 속도전
‘로켓배송’으로 대표되는 쿠팡의 배송 시스템. 이 역시 노동자의 삶을 갈아넣은 결과입니다. 쿠팡의 배송 체계는 크게 물류센터를 담당하는 쿠팡풀필먼트서비스(CFS)와 이후 배송 전 과정을 맡는 쿠팡로지스틱스서비스(CLS)로 나뉩니다. 이들이 상품을 입·출고하면 위탁 대리점 소속 택배기사들이 밤낮없이 고객 문 앞까지 배송하는 구조인데요.
물류센터에서 2년간 야간조로 일하고 퇴사한 조혜진씨는 “정해진 시간 안에 타겟(목표 물량)을 맞추도록 작업을 해내는 것이 관리자들의 가장 큰 책임”이라고 말했습니다. 관리자는 ‘걷지 말고 뛰어라’ ‘스캔은 1초에 1개씩 찍어라’ ‘하차 속도 더 빨리 해라’ 등의 주문을 끊임없이 방송한다고 하는데요. 작업 속도가 떨어지면 고성과 욕설이 날아옵니다. 조씨는 주 5~6회 야간노동을 하며 체중이 16kg 줄었습니다. 쿠팡에서 일했던 A씨도 “다른 물류업체보다 쿠팡의 분위기가 훨씬 공격적”이라며 “관리자가 확성기를 들고 작업장을 돌아다니며 ‘빨리 하라’고 독촉한다”고 말했습니다.
문제는 택배노동자들에게 쿠팡 외 대안이 없다는 겁니다. 쿠팡 노동자 B씨는 “지금 쿠팡을 그만둬도 갈 곳이 없다”며 “물류가 쿠팡으로 쏠리면서 다른 택배사는 물량 자체가 줄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쿠팡의 이커머스 시장 점유율은 22.7%, 택배 시장 점유율은 37.6%로 모두 1위입니다. 이제 대안은 사라졌고, 보상은 오히려 줄었습니다. 쿠팡 퀵플렉스 실태조사에 따르면 건당 평균 수수료는 지난해 775원에서 올해 729.8원으로 떨어졌습니다. 배송기사 C씨는 “처음에는 배송량에 따른 인센티브가 있었지만 그것도 없어지고, 건당 수수료도 3년간 4~5번은 깎였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12일 서울 시내 한 주차장에 쿠팡 배달 트럭들이 모여 있는 모습. 연합뉴스
면(관점들): 방치하면 업계 ‘표준’ 된다
쿠팡의 초고속 성장 이면에는 극한의 효율과 실적을 강조하는 경영철학이 있습니다. 로켓배송과 물류 투자를 ‘혁신’이라고 포장하지만, 쿠팡이 상품이나 노동자를 다루는 방식은 전근대적인 방식의 ‘착취’에 가깝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이를 방치하면 쿠팡의 경영철학이 업계 ‘표준’이 될 수 있다는 게 더 큰 문제입니다. 실제로 쿠팡의 성공은 배송업계 전체를 속도전으로 밀어 넣고 있는데요. CJ대한통운과 한진택배는 올해부터 주 7일 배송을 도입했습니다.
권영국 쿠팡노동자의 건강한 노동과 인권을 위한 대책위원회 대표(정의당 대표)는 “플랫폼 기업 독점 규제를 어떻게 할지, 수탈당하고 있는 중소 상공인 권리를 어떻게 보호할 건지 등에 대한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쿠팡 계획대로라면 오는 2027년 전국은 쿠세권(쿠팡 로켓 배송 생활권)이 됩니다. ‘쿠팡 공화국’이 목전으로 다가온 지금, 더 늦기 전에 ‘쿠팡이라는 일터’에 대한 근본적인 점검이 필요할 때라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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