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윤석화. 연합뉴스
<신의 아그네스>로 유명한 ‘1세대 연극 스타’ 윤석화 배우가 19일 별세했다. 향년 69세.
19일 연극계에 따르면 뇌종양으로 투병해 온 윤석화는 이날 오전 10시쯤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유족과 지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윤석화는 2022년 7월 연극 <햄릿> 이후 그해 10월 악성 뇌종양 수술을 받아 투병해왔다.
1956년 서울에서 태어난 윤석화는 1975년 연극 <꿀맛>으로 데뷔했다. 연극 <신의 아그네스>, 연극 <딸에게 보내는 편지>, 뮤지컬 <명성황후> 등에 출연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린 것은 1982년 실험극장에서 초연된 연극 <신의 아그네스>였다. 당시 미국 뉴욕에서 공부 중이던 윤석화는 번역도 함께 맡은 이 작품에서 주인공 아그네스 역을 맡았다. 이 작품은 연일 매진을 기록하며 당시 국내 연극계 최장기 공연 기록을 세웠다. 또 단일 공연으로 관객 6만5000명을 동원하며 연극계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윤석화는 이 작품으로 1983년 제1회 여성동아대상을 받는 등 20대 후반의 나이에 연극계 스타로 떠올랐다. 그는 1992년 산울림극장에서 초연한 1인극 <딸에게 보내는 편지>를 비롯해 <하나를 위한 이중주>, <덕혜옹주> 등 수많은 연극에 출연했다.
뮤지컬 무대에서도 활약했다. 한국 창작뮤지컬의 상징적 작품인 <명성황후>의 1대 명성황후 역을 비롯해 <사의 찬미>, <아가씨와 건달들>, <마스터 클래스> 등의 작품에 출연했다. 1987년 신성일과 함께 출연한 <레테의 연가>와 2011년 <봄눈> 등 영화에도 출연하며 매체를 가리지 않고 활동을 이어왔다.
그는 활발한 연기 활동으로 백상예술대상 여자연기상을 네 차례 받았고, 동아연극상, 서울연극제, 이해랑 연극상 등을 받았다. 2009년 연극·무용부문에서 대한민국문화예술상을 받았다.
배우 윤석화가 2019년 서울 대학로 ‘정미소’에서 열린 <딸에게 보내는 편지> 제작발표회에서 노래 시연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연기뿐 아니라 제작자로도 변신해 자신의 이름을 딴 ‘돌꽃컴퍼니’를 세우고 만화 영화 <홍길동 95>를 제작했고, 1999년에는 경영난을 겪던 공연예술계 월간지 객석을 인수해 발행인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2002~2019년에는 서울 대학로에 소극장 ‘정미소’를 운영하기도 했다.
연극 데뷔 전에는 CM송 가수로도 이름을 날렸다. ‘12시에 만나요 부라보콘’으로 시작하는 아이스크림 부라보콘 광고송과 ‘하늘에서 별을 따다, 하늘에서 달을 따다 두 손에 담아 드려요’라는 음료수 오란씨 광고송이 유명하다. 직접 출연한 커피 CF에서는 ‘저도 알고 보면 부드러운 여자예요’라는 대사를 유행시키기도 했다.
입양문화 활성화를 위해서도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2003년과 2007년 각각 아들과 딸을 입양한 그는 국내 입양 풍토를 공개적으로 바꾸는 데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5년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논란도 있었다. 2007년 허위 학력 논란이 연예계를 휩쓸었을 당시 학력 위조 사실을 인정했으며, 2013년에는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했다는 논란에 휩싸여 활동을 중단하기도 했다.
투병 중에도 무대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던 윤석화는 2023년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열린 연극 <토카타>에 5분가량 우정 출연한 것이 생전 마지막 무대가 됐다.
윤석화는 2010년 경향신문 칼럼(‘모든 날이 새 날입니다’)에서 “아무리 힘든 날이라도 … 아침이면 어김없이 찬란한 해가 되어 떠오르듯이 모든 날이 새날”이라고 지난 배우 생활을 긍정했다.
“우린 순수와 진실을 무대에서 ‘배우’로서 ‘배우’면서 여기까지 왔고, 우리가 함께 가는 이 길이 재미있거나 결코 편안한 길은 아니지만, 연극이라는 예술을 통해, 깨지고 무너진 영혼에 ‘의미’의 창을 내어주는 기특한 전사들은 아닐까요? 연극이라는 허구의 세계가 일상의 무의미한 습관과 관습이라는 순류를 거슬러서, 새로운 의미와 가치의 역류를 뛰어넘는 거예요. 그리고 그것이 연극배우로서의 자긍심이자 헌신이라고 생각해요. 그 헌신의 의미와 가치를 똑같은 배우의 몸으로 재현할 수는 없을지라도, 이미 경험한 관객들의 기억이라는 소중한 창고에서, 혹은 머지않은 미래에 후배들을 통해 다시 누군가의 삶으로 전이될 거예요.”
빈소는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 유족으로는 남편 김석기 전 중앙종합금융 대표와 아들, 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