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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용자’는 없었다

입력 2025.12.21 19:55

수정 2025.12.21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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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는 지난 11일 검찰 고위급 인사를 발표했다. 지난달 대장동 개발비리 사건 1심 선고에 대한 검찰의 항소 포기에 반발하며 항의 성명에 이름을 올린 김창진 부산지검장·박현철 광주지검장·박혁수 대구지검장이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전보 발령됐다. 검찰 내부망에서 지휘부 결정을 강하게 비판한 정유미 법무연수원 연구위원(검사장)은 고검검사(차장·부장검사)로 사실상 강등됐다. 김 지검장과 박현철 지검장은 인사 발표 직후 사의를 밝혔고 정 검사장은 소송을 제기했다.

법무부는 이번 인사의 이유를 명확하게 밝혔다. 특히 정 검사장을 겨냥해서는 보도자료에 “업무 수행 등에 있어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공정성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부적절한 표현으로 내부 구성원들을 반복적으로 비난해 조직의 명예와 신뢰를 실추시킨 대검검사급 검사를 고검검사로 발령했다”고 명시했다.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검찰이 ‘기계적 항소’를 자제하기로 한 것은 칭찬할 만하지만, 하필 그 시작이 이재명 대통령이 연루된 사건이라는 점에는 의구심이 크다. 그러니 검찰 내부에서 지휘부를 비판하고, 설명을 요구하는 것도 당연하다. 그리고 이후 ‘보복성 인사’를 당한 인사들이 바로 사직을 하거나, 법적 다툼을 벌이는 것도 이해한다.

그런데도, 이들의 ‘투쟁’에 선뜻 박수를 보내기는 어렵다. 지난달 27일 밤, 또 다른 항소 포기 결정을 접하며 느낀 씁쓸함 때문이다. 그날 검찰은 이른바 ‘국회 패스트트랙 충돌’ 사건으로 기소된 전현직 국민의힘 의원들의 1심 판결에 대해 항소를 포기한다고 밝혔다. 6년을 끌어온 사건의 무게감에 비하면 허무할 정도로 신속한 결정이었다.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사건 때처럼 검찰 구성원들이 반발하면 기사를 쓰려고 기다렸다. 밤까지 사무실에 앉아 검찰을 취재하는 기자에게 수시로 물어봤다.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아무래도 그런 용자는 없는 것 같습니다.”

대검찰청은 항소 포기를 발표하면서 “범행 전반에 대해 유죄가 선고되었고, 피고인들의 범행 동기가 사적 이익 추구에 있지는 않은 점에 더하여, 사건 발생일로부터 6년 가까이 장기화된 분쟁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고 보이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항소를 제기하지 않기로 결정하였다”고 밝혔다.

‘범행 전반에 유죄가 선고되었다’는 점은 항소 포기 사유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사적 이익 추구가 없었다’는 점과 ‘장기화된 분쟁을 최소화할 필요’라는 논리에는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당장 서울서부지법 난동 사건으로 재판을 받는 정윤석 영화감독의 사례를 보자. 정 감독은 지난 1월 사건이 벌어졌을 때 현장에서 이를 촬영하다 시위대와 함께 건조물 침입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1심 법원은 지난 8월 정 감독의 행위 중 일부(특수건조물침입)는 무죄로 판단하고 단순건조물침입죄만 인정해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그런데 검찰은 이 판결에 불복해 즉각 항소했다. 또 1심과 마찬가지로 범행의 중대성, 다른 공동 피고인과의 형평성 등을 고려해야 한다면서 항소심 재판부에 징역 1년형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했다.

검찰이 패스트트랙 의원들에게 적용한 ‘자비로운 잣대’를 정 감독 사건에 적용할 수는 없었을까. 그간 한국사회의 일들을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온 정 감독이 서부지법 난동 사건 현장에 간 것을 두고 ‘사적 이익 추구가 없었다’고 판단하면 어땠을까. 최소한 패스트트랙 저지 과정에서 쇠망치와 ‘빠루’를 들었던 사람들보다는 행위 동기가 훨씬 더 공익적이고 비폭력적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분쟁의 최소화’는 또 어떤가. 검찰이 진정으로 ‘장기화된 분쟁의 종식’과 ‘사회적 비용 절감’을 원칙으로 삼는다면, 정 감독과 같은 활동가에게야말로 항소를 포기하고 관용을 베풀어야 마땅하지 않은가.

정 감독 사건과 비교하면 대장동 사건과 패스트트랙 사건에서 항소를 포기한 검찰의 의도는 너무도 명확해 보인다. 그리고 이런 ‘선택적 항소 포기’에 검찰 구성원들은 ‘선택적 반발’로 호응했다. 검찰과 그 구성원들은 이런 선택으로 ‘조직의 안정’을 얻었을지 모르나, ‘시민의 신뢰’라는 존립 근거를 스스로 허물었다. 무엇보다 ‘용자’가 사라진 조직, 비판 기능이 선택적으로 작동하는 조직이 시민들에게 “우리를 믿고 권한을 맡겨달라”고 말할 자격이 있는가.

홍진수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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