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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국가안보전략

입력 2025.12.21 20:01

수정 2025.12.21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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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이후 미국 대통령은 국가의 핵심 이익과 이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를 담은 국가안보전략(NSS)을 발표해왔다. 최근 공개된 NSS는 오랜 관행에서 벗어났을 뿐 아니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17년 1기 재임 당시 내놓았던 전략과도 중요한 측면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 문서는 우리가 이미 예상해왔듯 미국을 거래 중심적인 국가로 그려낼 뿐 아니라, 아시아·태평양과 유럽에서 오랫동안 유지돼온 미국의 약속들로부터 한발 물러서는 듯한 인상도 준다. 적어도 향후 3년 동안 한국은 이 NSS가 예고한 낯설고 새로운 환경 속에서 외교안보 전략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2017년 NSS에는 ‘미국 우선주의’식의 요란한 수사가 담겨 있었지만, 두 주요 권위주의 강대국에 대해서는 분명히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 당시 문서는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의 힘과 영향력, 그리고 이익에 도전하며 미국의 안보와 번영을 약화시키려 한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2기의 방향 담긴 문서
국경·이민과 서반구 문제에 초점
북한은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아
이재명 정부엔 ‘자율성’여지

특히 중국을 미국 외교·국방 정책에서 이른바 ‘페이싱 위협(pacing threat)’으로 규정한 인식은 트럼프 1기 외교정책의 핵심이었고, 이 점은 2022년 발표된 조 바이든 행정부의 NSS에서도 상당 부분 유지됐다. 트럼프의 대중정책은 결론을 맺지 못한 무역전쟁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동시에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의 전진 배치 군사 태세와 확장억제에 대한 강한 의지도 포함하고 있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미국의 동맹과 파트너들이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요구가 뒤따랐다.

반면 이번 NSS는 국경과 이민 문제, 그리고 서반구에 초점을 맞춘 훨씬 축소된 미국의 대전략을 제시한다. 물론 이웃 국가들과의 관계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가 세계 질서의 향방을 좌우할 중심 무대라고 보기는 어렵다. 과연 그린란드와 베네수엘라가 일본, 한국, 그리고 유럽의 나토 동맹국들만큼 미국에 중요한가?

이번 보고서에서 눈에 띄는 것은 과장된 수사뿐 아니라 빠져 있는 내용과 침묵이다. 이 문서는 애초에 그런 지배가 가능했는지는 차치하더라도 미국의 지배적 역할을 부정하고, 대신 억지를 통해 지역별 세력균형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해당 지역의 파트너들은 동맹의 책무라는 관점에서 다뤄지지 않는다. 이들에 관한 언급은 부담 분담이 아니라 부담 전가에 대한 강조로 시작되며, 곧바로 트럼프식 압박을 통해 미국이 얻어낼 수 있는 경제적 거래에 초점이 옮겨진다.

이런 접근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다만 이번 NSS에서는 중국 역시 전략적·이념적 경쟁자가 아니라 미국이 거래를 해야 할 경제적 강국으로 취급된다. 러시아를 다루는 방식은 더욱 초라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길고 고통스러운 과정이 결국 난처한 ‘평화 계획’ 논의로 이어지고 있는 현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내 목표를 어떻게 좌절시킬 것인지를 고민하기보다 트럼프 행정부는 합의가 성사될 경우 가족과 지인들까지 관여할 수 있는 온갖 거래에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그 합의는 유럽과 우크라이나를 사실상 배제한 채 논의되고 있다.

이 모든 변화는 한국에 무엇을 의미하는가? 미국은 한국이 미국과 체결한 비현실적인 경제적 합의들을 성과로 내세울 것이다. 이재명 정부로서는 각 거래를 냉정하게 검토하면서 자국의 경제적·기술적 이익을 어떻게 지켜낼 수 있을지에 꾸준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안보 측면에서는 상황이 훨씬 불분명하다. 개인적으로 나는 여론과 군 내부 모두에서 동맹에 대한 지지가 트럼프의 발언이 시사하는 것보다 훨씬 깊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2017년 NSS에서는 분명히 언급됐지만 이번 문서에서는 단 한 차례도 등장하지 않는다. NSS의 안보 관련 내용과 여러 설명자료를 보면, 안보가 거의 전적으로 경제적 관점에서 이해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트럼프식 정치 스타일상 한국이 과장된 미국의 요구에 맞춰줄 수밖에 없다는 시각도 있다. 과연 그럴까? 아니면 미국의 관심 분산이 오히려 한국으로 하여금 진보 정부들이 오랫동안 추구해온 자율성을 모색할 여지를 제공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자율성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이다. 그것이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NSS를 계기로 이는 국내에서 충분히 논의해볼 만한 쟁점이 됐다.

이번 칼럼을 끝으로 경향신문에 기고하는 글은 마지막이 된다. 그동안 독자 여러분과 생각을 나눌 수 있어 참으로 뜻깊었고, 언젠가 다시 그런 기회를 갖게 되기를 바란다.

스테판 해거드 UC 샌디에이고 석좌특별명예교수

스테판 해거드 UC 샌디에이고 석좌특별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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