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7년 전, 프로야구 감독들에게 직접 물었다.
“홈팀이 크게 뒤진 9회초 수비 때 야수를 투수로 기용할 수 있을까요?”
어차피 역전승 가능성이 희박한 상황, 야수의 투수 기용은 2가지 효과를 갖는다. 매일 치르는 야구 경기 특성상 투수를 한 명이라도, 1이닝이라도 아끼는 건 다음 경기 승률을 높일 수 있다. 여기에 하나 더. 형편없이 지고 있는 경기를 끝까지 지켜봐준 홈팬들을 위한 서비스다. 야수가 마운드에 올라 투구를 하는 건, 흥미진진한 이벤트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자주 벌어지는 일이지만, 그때까지 한국 프로야구에선 보기 힘들었다. 아예 투수가 바닥난 상황이면 몰라도, 팬 서비스가 아니라 ‘포기’ 또는 ‘무성의’로 여겨지기 일쑤였다. 그때 질문에 감독들은 모두 “하고는 싶지만…”이라며 눈치를 봤다. 당시 리그 최고참 감독은 “아직은 분위기가 어렵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누군가 먼저 테이프를 끊어줬으면 하는 바람들이 각 감독들의 답에서 묻어났다.
역전 힘든 상황, 야수의 투수 등판
금기 깬 야구처럼 한국 사회도 변화
차트보다 ‘취향’ 중시하는 세대처럼
남보다 나를 성찰할 때 다양성 확보
금기가 깨진 건, 3년 뒤인 2021년이었다. 한화의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은 4월10일 대전 두산전에서 1-14로 뒤진 9회초 때 3루수 강경학과 외야수 정진호를 차례로 마운드에 올렸다. 야수 2명이 4점을 더 내줘 경기는 1-18로 끝났다.
한편으로 낯설었지만, 한편으로는 흥미진진했다. ‘테이프가 끊어진’ 이후 홈팀이 크게 지고 있는 상황에서 야수의 등판은 종종 이뤄졌다. 이방인에 가까운 외국인 감독, 수베로 감독이 하기 전까지 모두 ‘남’의 눈치를 봤다.
한국 야구도, 한국 사회도 ‘나’보다 ‘남’이 더 중요하다.
벤처캐피털 대표를 지낸 한 IT 업계 전문가는 “한국 사회에서는 개인 맞춤형 서비스 기획이 무척 어렵다”고 말했다. 집단 동조화가 지나칠 정도로 강해 개인 맞춤형 서비스의 효과가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내 취향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이를 추구하기보다는 ‘남들은 지금 뭘 하는지’에 더 신경 쓰고 이를 따라간다.
지금의 네이버를 만든 중요한 서비스는 ‘지식인’과 함께 ‘실급검(실시간 급상승 검색어)’이었다. 내가 궁금해 검색하고 싶은 게 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지금 ‘남들은 무엇을 검색하고 있는지’를 랭킹으로 보여주는 것이 제대로 먹혔다. 여론 형성 관련 논란 끝에 서비스가 폐지됐지만 부활한다면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강력한 무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최근 개인정보 유출 사건 등으로 논란에 둘러싸인 쿠팡도 비슷했다. 유통 공룡이 되는 데 주효했던 서비스는 댓글로 매겨지는 상품평과 지금 가장 많이 팔리는 제품에 대한 랭킹이었다. 남들이 어떻게 평가했는지가 중요하고, 지금 (혹은 최근) 이 제품이 얼마나 많이 팔렸는지가 구매 판단의 근거가 된다. ‘한 달 동안 ○○○명이 구매했어요’라며 반짝이는 문구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강력한 메시지다.
음악 스트리밍 시장도 비슷한 과정을 겪었다. 전 세계 유명한 스트리밍 앱들은 모두 ‘최적화된 개인화 알고리즘’을 무기로 내세웠지만, 한국 시장에서 고전했다. 한국 음악 시장은 이른바 ‘탑100’이라 불리는 인기 순위 중심이었다. 내 취향이 아니라 지금 남들이 어떤 노래를 좋아하는지가 더 중요했다.
패션도 비슷했다. 옷은 자신의 스타일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지만 어느샌가 모두가 비슷한 옷을 입는 장면이 익숙해졌다.
집단 동조를 향한 강력한 사회적 압력은 정치적 극단화를 부추기는 장치로도 작동한다. 내 생각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생각하는 대로 따라가고, 유튜브의 알고리즘은 이를 증폭시켰다. ‘우리가 ○○○이다’라는 선언에서 ‘우리’는 ‘나’의 복수어가 아니라 거꾸로 ‘나’를 제거한 ‘남들로 구성된 무리’에 가깝다.
이 강력한 중력에서 벗어날, 초속 11.2㎞의 힘이 가능할까. 희망은 있다.
지난 23일 발행된 경향신문 점선면 뉴스레터 ‘20대, 음원 차트를 떠났다’에 따르면 한국 음악시장의 ‘탑100’ 효용가치가 줄어들고 있다. ‘탑100’으로 성장한 멜론의 점유율은 5년 사이 크게 하락해 2위 자리도 위협받고 있다. ‘차트보다 취향을 중시하는 흐름’이 힘을 얻는 중이라는 분석이다. 10대 중후반의 두 딸도 입을 모은다. “아빠, 요즘 누가 탑100 들어.”
‘남’들을 따라가기보다 ‘나’에 대해 더 깊이 성찰할 수 있을 때 거꾸로 다양성이 확보된다. 민주주의는 다양성을 기반으로 발전한다. ‘탈탑100’의 세대가 주는 희망이다.
이용균 콘텐츠랩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