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의 아침이 밝았다. 의사 누가는 예수의 태어남을 일러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라고 했다. 예수의 사명은 인류 구원이었으니, 그가 이 땅에 온 사건은 말 그대로 ‘복음’(福音)이었다. 아주 잠깐 이런 생각을 했다. 인류 구원이 사명이라면, 좀 더 드라마틱하게 세상에 현현(顯現)했으면 어땠을까. 하늘을 가르고, 온갖 광채가 쏟아지고, 구름을 타고 왔더라면 세상 사람들이 모두 그를 구원자로 믿었을 일 아닌가. 그럼에도 예수는 신생아의 모습으로 작은 구유에 누워 세상에 왔다. 스스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예수 곁에는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뿐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방박사 세 사람이 한동안 곁을 지켰다.
한 소녀가 있었다. 가난한 엄마와 아빠는 방학 동안 다소 여유가 있는 친척인 킨셀라 부부에게 소녀를 맡겼다. 소녀에게는 언니들과 동생들, 곧 태어날 동생도 있었다. 아빠는 “애가 말썽을 안 피워야 할 텐데요”라는 말을 남기고 횅 하니 가버렸다. 첫날 밤 소녀는 말썽 아닌 말썽을 피웠다. 긴장 때문일까, 매트리스에 실례를 하고 말았다. 하지만 킨셀라 아주머니는 “이렇게 습기가 차지 뭐니”라며 낡은 매트리스를 탓했다. 아주머니는 마당에서 매트리스를 꼼꼼하게 빨고는 햇볕에 말렸다. 아주머니는 소녀를 곁에 두고 귀 청소는 물론 빗질도 꼼꼼하게 해주었다. 킨셀라 아저씨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동네 학교 학생들도 살갑게 챙겼다. 학교 지붕 교체 비용을 마련하고자 온 사람들에게 아저씨는 이렇게 말했다. “나한테 애가 없다고 해서 다른 집 애들 머리에 비가 떨어지는 걸 보고만 있을 수 없지.” <이처럼 사소한 것들>로 국내에도 나름의 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아일랜드 출신 작가 클레어 키건의 <맡겨진 소녀>의 한 대목이다.
1994년 개봉한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주요 무대는 1939년 폴란드의 한 도시다. 냉정한 사업가 오스카 쉰들러는 유태인 소유의 그릇 공장을 인수해 막대한 부를 챙길 꿈에 부풀었다. 인건비 없이 유태인들을 부려먹을 수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터. 오스카는 나치 독일의 전쟁이 반가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연한 일로 만난 유태인 회계사와 가까워지면서 오스카는 홀로코스트의 실상과 직면한다. 기회주의자였지만 죄 없이 죽어가는 유태인들의 참상을 목격하는 순간, 양심이 되살아났다. 수용소에서 유태인들을 구하기로 마음먹은 오스카는 유태인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적힌 ‘쉰들러 리스트’를 만들고, 대탈주를 감행한다. 오스카의 진심에 공감하기 시작한 유태인들은, 그가 자신들에게 곁을 내어준 것에 감사했다.
소녀는 방학 동안만 킨셀라 부부의 집에 머물렀지만, 오롯한 사랑을 경험했다. 무심한 아빠가 한 번도 잡아준 적이 없는 손을 킨셀라 아저씨는 수시로 잡아주었다. 보폭도 맞춰 걸어주었다. 킨셀라 아주머니는 살갑게 엄마 역할을 대신했다. 사고로 아들을 잃었던 부부에게 소녀는, 아니 모든 아이들은 금지옥엽이었다. 부부가 내어준 ‘곁’ 덕에 소녀는 사랑을 알게 되었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서 주인공 오스카 쉰들러는 “한 생명을 구하는 건 온 세계를 구하는 겁니다”라고 말한다. 그가 생존한 1100여명의 유태인들에게 ‘곁’을 내주지 않았다면, 그만큼의 세계는 사라졌을 것이다. 갓난아기 예수의 곁을 지킨 요셉과 마리아, 동방박사들이 없었다면, (기독교 신앙 유무와는 별개로)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예수가 낮고 가난하고 사람들의 ‘곁’에서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 나는 누군가에게 ‘곁을 내어주는 사람’인지 되묻는 성탄절이다.
장동석 출판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