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당 1억~1억2000만원 지원금
66㎡ 규모 집 한 채 짓기도 ‘역부족’
피해 주민 17.7%, 복구 계획 못 세워
“늙은이가 뭔 재미로 살겠어. 명절마다 손주 밥해 먹이는 게 낙인데… 이제 물 건너가뿌렸지.” 경북 안동시 일직면 명진2리에서 지난 23일 만난 반영희 할머니(90)가 절구통에 깐 마늘을 쏟아부으며 말했다. 할머니가 나무 절굿공이를 몇차례 내리치자 알싸한 마늘향이 올라왔다. 주방과 거실이 한 공간으로 이뤄진 27㎡(약 8평) 남짓한 좁은 컨테이너 임시조립주택은 금방 마늘 냄새로 가득 찼다.
반 할머니는 지난 3월 경북 산불로 집을 잃었다. 의성에서 시작돼 안동·청송·영양·영덕으로 번진 불은 1986년 이후 작성된 산불 통계상 역대 최대 피해 면적(9만9289㏊)을 태웠다. 이때 집을 잃은 이재민 4349명이 아직 2623개의 임시조립주택에 거주하고 있다. 반 할머니는 “지난 추석에는 잠잘 곳도 없고, 밥해 먹일 곳도 없어서 애들에게 오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임시주택을 벗어나 새집을 짓는 일은 쉽지 않다. 산불로 주택이 완전히 소실된 이재민에게는 가구당 1억~1억2000만원을 지급했는데 건축비 상승 등으로 집을 다시 짓기에는 역부족이다. 김남수씨(58·영양군 석보면)는 “샌드위치 패널로 경량철골구조 집을 지어도 3.3㎡당 700만원은 줘야 한다”며 “목조는 800만원, 콘크리트는 1000만원을 훌쩍 넘는데 건축비를 알아볼 엄두도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66㎡ 규모의 집 한 채를 지으려면 최소 1억4000만원이 든다는 뜻이다.
그린피스·녹색전환연구소·재난피해자권리센터 ‘우리함께’ 등이 실시한 ‘2025 경북 산불 피해주민 실태조사’ 결과에도 주택 피해를 본 주민의 17.7%는 ‘주택 복구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고 답했다. 가장 큰 이유는 비용 부족(42.1%)이다.
사과 등 과수농사를 짓던 농민들은 생계에 직접 타격을 받았다. 이번 산불로 경북지역 사과 재배지 1560㏊가 피해를 본 것으로 집계됐다. 타버린 사과나무를 뽑아내고 새 묘목을 심어도 수확까지는 최소 5년이 걸린다. 안동 임동에서 사과농사를 짓는 김동규씨(57)는 “올해는 빈 땅에 콩과 고추를 심어 입에 풀칠했다”며 “사과가 다시 열리기까지 앞이 막막하다”고 말했다.
피해주민 실태조사에서 산불 이전 수준과 비교해 ‘10% 미만 회복’에 그쳤다는 응답이 37.3%로 가장 많았다. 이기형씨(50대·청송)는 “산불로 일터를 잃어버린 사람은 이웃집 품앗이를 하며 일당을 벌어 버티고 있다”며 “산불 특별법이 마련됐다고 하는데 솔직히 체감되는 게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