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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중하는 중

입력 2025.12.25 21:46

수정 2025.12.25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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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국장 문은 열리지 않았다
폐쇄해야 할 것은 문이 아닌데
무책임과 거짓과 무관심에
붉은 경고문을 붙여야 하는데
슬픔은 너무 오래 방치되고
곳곳에 우리의 재회를 방해하는 것들이
높은 둔덕을 쌓고 있다 성벽처럼 단단한
저 둔덕 위에서 노려보고 있다 지켜보고 있다
단단한 성벽

오래된 성벽
풍경인 척 순응하고 망각하게 만드는
얼마나 비겁한 성벽인가
그러나
단단한 슬픔은 벽보다 묵직하다
밀어야 열리는 문
온몸으로 밀어야 하는 문
아교처럼 슬픔을 엮어 밀어야 하는 문
너무 지연된 약속이지만

[김해자의 작은 이야기]마중하는 중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어서
약속은 아직 유효하다
부딪쳐서 활짝 열자
하루도 잊을 수 없는 얼굴들이 있어서
우리의 슬픔은 단단하다
굳게 닫힌 입국장 문이
슬픔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열릴 때까지
우리는 여전히 마중하는 중이다

-맹재범 시 ‘마중’,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추모 시집 <보고 싶다는 말>


택배를 나르다 쓰러져 다시 일어서지 못한 사람, 건설 혹은 철거 현장에서 추락하거나 깔린 사람, 야근하다 기계에 끼이고 빨려들어가 홀로 숨진 사람들은 불상사로만 남는다. 나와 내 형제와 친구일 수도 있었던 사진과 이름들은 제트기처럼 지나가버려 애도조차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숫자로 표기된 죽음은 놀랍지 않다. 놀라운 것은 거의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다.

세월호 이후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을 온 국민이 배웠다.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들을 했지만, 이태원 참사가 일어났고, 2년 후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가 일어났다.

참혹하고 납득하기 어려운 참사를 보며 우리가 느낀 압도적인 슬픔과 절망은 단지 사고 규모 때문만은 아니겠다. 변하지 않았기에. 606조각으로 흩어진 179명의 죽음이 일상적으로 겪는 노동자의 죽음을 대하는 이 사회의 태도와 판박이였기에.

무안 참사 1주기를 맞아 낸 공동 추모시집엔 유가족이자 방송작가인 김윤미의 흩어진 조각들이 들어 있다. 폐쇄된 공항 건물 2층에 있는 ‘노란 텐트’를 지키며. “찬 공기가 틈새로 파고”드는 겨울과 “천장에서 물이 새는” 장마철을 지나 다시 추워지도록 “그 작은 공간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서로의 손을 붙잡으며 되”묻는다. “언제쯤 179명이 왜 숨졌는지 알 수 있을까”라고.

언제쯤이면 알 수 있을까. 무리하게 노선을 늘려, 48시간 동안 13개국을 오간 제주항공사의 진실을. 보잉 737-800 기종엔 꼭 달아야 했던 안전장치가 왜 없었고, 진실을 입증할 핵심 증거인 블랙박스의 기록은 왜 사라졌는지. 왜 1년이 다 되도록 제대로 사과하거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는지. “무책임과 거짓과 무관심”으로 점철된 패턴이 이전 참사와 비슷해서 더 절망스럽다.

“새 정부는 다를 거라 했는데/ 기다리라고만 해. 평생 기다려야 할 유족들에게 계속 또 기다리라고 하는 게 마땅키나 해?/ 인제 그만 나가달래./ 지역 경제 살려야 한다고/ (…) / 왜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거야?” 절규하는 유족의 말을 전하는 최지인 시인의 시 ‘務安에서’를 보며 K민주주의나 문화강국이나 경제대국이란 말들이 왜 이리 허망하고 부끄러운지.

언제쯤 참사를 보고서로 정리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는 관료들에게 윤리적인 태도를 기대할 수 있을까. 언제쯤 속도와 비용보다 사람을 우선시할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온몸으로 밀어야” 진실의 문이 열릴까. “아교처럼 슬픔을 엮어 밀어야 하는” 그 문은. 아니 질문하지 말자. 슬픔이 “너무 오래 방치되고” 있으니. 약속이 너무 지연되고 있으니. 함께 “부딪쳐서 활짝 열자”. “슬픔의 힘을 견디지 못하고 열릴 때까지.”

김해자 시인

김해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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