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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말이 달린다

입력 2025.12.28 20:02

새해가 며칠 안 남았다. 병오년(丙午年)인 2026년은 ‘붉은 말’의 해다. 활기를 상징하는 두 존재가 만났으니 얼마나 ‘역동적인’ 한 해가 될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음양오행식 풀이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붉은 말이라 하면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적토마’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여포와 함께 하루 천리를 달리며 전장을 누볐다는 전설의 명마다. 소설에선 훗날 조조를 거쳐 관우가 타는 애마로도 묘사되지만, 여포의 사망 시점과 통상적인 말의 수명을 고려할 때 창작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다만, 정사 <삼국지>에도 여포가 ‘적토’라는 명마를 탄 것으로 기록된 걸 보면 적토마의 존재 자체는 사실로 추정된다.

주인인 여포가 배신을 거듭하다 비참한 최후를 맞은 점을 들어 붉은 말을 불길(분쟁)의 징조로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붉은 말에 대한 이 상반된 해석은 ‘역동적’이라는 말이 긍정과 부정을 모두 포함하는 양가적인 단어라는 것과도 연결된다.

그리 보면 2026년이 붉은 말의 해인 것은 어울린다. 새해가 어느 때보다 불확실성이 높은 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안으로는 아직도 ‘12·3 불법계엄’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주범과 공범 중 그 누구도 아직 처벌받지 않았다는 점이 이를 입증한다. 지난해 이맘때쯤엔 시간이 다소 걸릴 뿐 순리대로 처벌이 이뤄지리라 믿었다. 그뿐인가. 천신만고 끝에 잡아넣은 주범이 버젓이 풀려나 거리를 활보하는 충격적인 장면도 목격했다. 처벌이 안 되니 정리가 안 되고, 정리가 안 되니 국민통합은 하세월이다.

밖으로는 온통 물음표뿐이다. 관세협상이 타결됐다고는 하지만 트럼프가 앞으로 어찌 나올지 아무도 모른다. 협상의 성패 평가 역시 몇년 뒤에나 가능할 것이다.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전쟁은 좀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미·중·일 관계는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걸으며 우리를 시험하고 있다. 남북관계를 고쳐보려는 정부의 시도도 뜻대로 될 것 같지는 않다.

정부에 당부한다. 역동적이기에 불확실한 새해를 맞게 될 서민들을 우선 챙겨달라. 물가 관리부터 해야 한다. 마트에 가면 주먹만 한 사과 한 알이 3000원이다. 쌀값도 올들어 20% 가까이 올랐다. 공산품도, 제조식품도 돌아서면 값이 오른다. 가격표가 정찰제가 아니라 ‘시가’로 보일 정도다.

떠들썩했던 정부 업무보고가 끝났으니 향후 국가운영의 방향성도 공유해주길 바란다. 이재명 정부를 보면 뭔가 바쁘게 움직이는 듯한데, 뭘 하겠다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예컨대 몇년째 ‘집 나간’ 상태인 소득재분배나 증세 문제는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말이다.

소득재분배 문제가 국정에서 실종된 것이 꼭 전임 정부 탓만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소주성)’이 논란에 휩싸인 뒤 언제부턴가 금기어가 됐다. 한때 이 대통령을 상징하는 정책은 ‘기본소득’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 여론을 봐가면서 추진한다는 건데, 이것이 정책 철회와 어떻게 다른 건지도 모르겠다.

기본소득의 ‘전초전’으로도 불리는 ‘농어촌 기본소득’은 내년부터 시범사업이 시작된다. 재원 문제를 놓고 시작하기 전부터 많은 논란이 있다. 재원 마련을 위해 일부 지자체는 지역 복지예산을 깎기도 했다. 이런 방식이 옳은 것인지, 지속 가능한 것인지도 따져봐야 한다. 지방선거가 코앞에 닥치지 않았더라면 일부 지자체는 사업을 끝끝내 거부했을 것이다.

증세, 특히 부동산 보유세는 어찌할 것인가. 수년째 아파트 가격이 폭등했지만 보유세는 사실상 제자리다. 전임 정부 때 공시가격 현실화 정책을 폐기했고, 매년 주택 가격 상승분을 반영해 올려야 할 ‘공정시장가액’ 비율도 동결했기 때문이다. 돈이 없다며 공공임대에 들어가야 할 예산을 줄여가면서 벌인 짓이다.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한다는 조세 원칙에서 이보다 불공평한 사례는 없다. 지출은 느는데 이렇게 세수를 줄이니 나라살림이 나아질 리 없다. 2024년 소득·자산 격차가 전년 대비 더 커진 것은 전적으로 (전임) 정부 책임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11월 국회 시정연설에서 “국민의 저력을 믿는다. 그래서 자신있다”고 했다.

저력 있는 국민이 이제 붉은 말에 올라탄다. 달리고 달려서 1등이 될지, 도중에 고꾸라질지 기대와 걱정이 교차하는 연말이다.

송진식 전국사회부장

송진식 전국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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