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회사를 창업 준비 중인 여성이 의논을 청해온 적 있었다. 같은 업계에서 일하며 친해진 세 명이 함께 회사를 차리려는데, 자신이 대표가 되면 관계가 껄끄러워질까 걱정이라 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는 태도만 봐도 좋은 경영자가 될 자질이 있어 보였다. 그렇지만 그 걱정대로 될 소지도 분명 있었다. 가능성을 높이는 요인은 ‘친한’ 사람들이 고용관계가 된다는 점이었다.
한동안 개그우먼 박나래씨 매니저들이 폭로전을 이어가더니, 요 며칠간은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전 보좌관들의 폭로가 계속된다. 두 사안 모두 내부자들의 ‘배신’에만 집중한다면 본질이 가려질 것이다. 그럼에도 두 사안의 고용관계에는 짚어볼 점이 있다. 보통의 일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시사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 두 사안에 있어 거의 확실한 점 하나는, 매니저와 보좌관들이 일하면서 가지게 된 불만을 공식적으로 논의할 자리가 전무했으리라는 것이다. 어쩌면 이들의 고용관계에는 ‘공식적’이랄 게 없었을 수 있다. 매니저는 연예인, 보좌관은 국회의원 한 명의 요구에 전적으로 맞춰야 하는 직업이다.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니 때로는 꽤 친밀함을 느끼기도 할 것이다. 그러는 중에 ‘공식적’ 논의를 요청한다는 것은, 그것도 위계상 아래에 있는 사람이 하기란 상당히 어렵다. 자칫 무난하던 관계가 얼어붙으면 업무 난도가 치솟거나 해고될 위험도 있다. 겨우 그런 말을 꺼내도 “아무 때나 편하게 얘기하면 되지, 내가 언제는 안 들어줬어?” 하는 반응으로 흐지부지되거나, 이런저런 잡담만 하다 끝날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처음에는 한두 가지 개선을 원했을 뿐인 사람들 마음속에 좌절과 실망이 쌓일 것이다. 초기에 바로잡았다면 괜찮았을 문제들도 어느 순간 손쓸 수 없게 나빠질 수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창업을 준비 중이던 여성에게 내가 했던 제안은 1년에 하루, 반나절만이라도 ‘근로조건 개선 회의’를 하기로 정해놓자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아무리 소규모이고 친한 사람들끼리 일해도, 근로조건의 결정 권한은 엄연히 고용주에게 있다는 구조를 서로 명확히 인식하는 데 있다. 이 시간만큼은 다른 안건은 배제하고 근로조건에 대해서만 논의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렇게 정한 내용들을 문서로 만들 필요도 있다. 이것이 곧 ‘취업규칙’이고 ‘단체협약’이며, 이 과정은 일종의 ‘단체협상’이다. 이런 것들이 꼭 노동조합이 있는 큰 회사에서만 가능한 게 아니다.
이번에 박씨와 김 원내대표의 사안을 지켜보다 그때 한 가지를 더 제안할걸 후회했다. 근로조건 회의에 이어서 함께 몸담은 조직의 지속과 발전 방안에 대한 회의도 하는 것이다. 불법적인 일은 안 된다고,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한다고, 경쟁력을 가지려면 이런 게 필요하다고 직원들이 당당하게 말하고 논의할 수 있다면, 조직만이 아니라 사회를 위해서도 좋은 일일 것이다.
이제 곧 새해가 밝는다. 새해 결심을 한 가지 한다면, 지금까지 못한 이런 ‘공식적’ 논의를 시작하자고 마음먹는 사람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기왕이면 사장님들이 결심해야 할 것이고, “우리는 그런 거 필요 없는데?” 하는 당신, 바로 당신부터 시작해야 변화가 이뤄질 것이다.
황세원 일in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