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훈 초대 기획예산처 장관 내정자가 30일 서울 중구 예금보험공사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 출근길에 과거 내란 옹호를 사과하며 허리 숙여 인사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인사는 보직 임명을 넘어 정권의 국정 철학과 정책 지향점을 드러내는 메시지다. 특히 반대 진영 인물을 중용할 경우 더 엄격하고 까다로운 질문을 받게 된다.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 지명 문제가 그렇다. 이재명 정부의 노선과 180도 다른 입장의 국민의힘 중진 정치인이, 그것도 요직인 기획예산처 장관으로 지명된 게 어떤 의미이고 무슨 맥락인지를 두고 논란이 분분하다.
정치적으로 보면 이재명 대통령이 비교적 ‘얘기가 통하는’ 이 후보자 영입을 통해 국민의힘을 극우 정당으로 고립시키고, ‘탄핵 다수파 연합’을 구축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의견이 중론이다. ‘이혜훈 차출’이 유승민·조경태 등 합리적 보수인사의 추가 영입을 위한 빌드업이란 해석도 있다. 국회 예결위 간사·KDI 연구위원을 거친 경제통이라는 전문성은 이 후보자 지명의 정책적 효과로 꼽힌다. 보수 인사인 이 후보자를 앞세워 이재명 정부의 민생경제 영역에서 성과를 내겠다는 실용적 구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론 이 후보자 발탁 논란을 잠재우기엔 충분치 않은 것 같다. 무엇보다 내란에 동조한 인사는 불관용으로 다스리겠다고 한 이재명 정부가 계엄을 정당화하고 탄핵을 반대하던 인물을 중용한다는 건 자기모순이라는 비판에 공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건전 재정론’자로 이재명 정부의 확장재정 기조와 맞지 않는 이 후보자가 자신의 경제철학을 바꿔가며 협조를 약속한 경위와 배경이 석연치 않다는 지적도 있다.
이 후보자는 30일 “내란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불법적 행위”라며 “1년 전 엄동설한에 내란 극복을 위해 애쓴 모든 분께 사과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이 대통령도 국무회의에서 “극단적인 대결 사회에서 통합을 위해 더 노력해야 한다”며 “국민도 각료 인사에서 고려할 게 많다는 점을 생각해달라”고 했다. 당사자의 사과와 대통령의 당부가 이번 인사의 혼란을 덮는 통과의례가 아니길 바란다.
내란을 이겨내고 등장한 이재명 정부, 그 정부의 예산 수장이 되겠다는 이 후보자는 주권자들의 의구심을 해소해야 할 책무가 있다. 이 후보자는 ‘전향 선언’ 이후 무엇을 어떻게 실천할 건지, 이 대통령은 ‘통합’이라는 막연한 수사 대신 이 후보자가 왜 국정 철학을 구현할 수 있는 인물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