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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과 한국의 캔슬 컬처

입력 2025.12.30 19:58

수정 2025.12.3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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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슬 컬처(cancel culture)’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공적 인물의 문제적 발언이나 행위에 대해 책임을 묻는 집단적 실천으로 이해된다. 예매한 표를 취소하듯 사람을 ‘캔슬’하는 태도가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배경에는, 확장된 디지털 환경과 즉각적인 도덕 판단을 부추기는 온라인 문화가 있다.

유럽에서 전개된 캔슬 컬처는 흔히 상상되는 무차별적 마녀사냥과는 거리를 둔다. 그것은 개인을 사회에서 제거하는 방식이라기보다, 윤리적 일관성과 공적 책임을 요구하는 압박 장치에 가깝다. 대표적 사례가 ‘해리 포터 시리즈’의 작가 J K 롤링이다. 트랜스젠더 이슈와 관련된 발언 이후 그는 강한 비판과 불매 운동에 직면했지만, 출판이나 발언의 권리 자체를 박탈당하지는 않았다. 논쟁의 핵심은 개인을 사회적으로 지워야 하는가가 아니라, 여전히 문화적, 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할 자격이 있는가에 머물렀다. 패션 디자이너 존 갈리아노 역시 유사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는 2011년 반유대주의 발언으로 디올에서 즉각 해임되며 패션계에서 사실상 퇴출되었다. 그러나 수년간의 공백과 공개 사과, 성찰의 과정을 거친 뒤 그는 제한적이고 점진적인 방식으로 업계에 복귀했다. 이 경우에도 문제는 ‘존재’가 아니라 ‘행위’였으며, 복귀는 무조건적 용서가 아닌 조건부 회복으로만 가능했다.

정치 영역에서도 이러한 경향은 확인된다. 핀란드의 전 총리 산나 마린은 재임 중 친구들과 파티를 즐기는 사적 영상이 공개되며 대중의 강한 비난에 직면했다. 총리로서의 품위와 책임을 문제 삼는 목소리와 함께 약물 검사 요구까지 제기되었지만, 논쟁의 초점은 그녀의 사생활 자체가 아니라 공적 직무 수행에 문제가 있었는지 여부였다. 마린은 공개적인 해명과 검증에 응했고, 핀란드 사회는 그 선에서 논쟁을 정리했다. 비난은 거셌지만, 개인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사회적 말살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 사례들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비판은 강하지만, 그 대상은 개인의 ‘행위’와 ‘공적 역할’에 한정되며, 회복과 복귀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 유럽 맥락에서의 캔슬은 존재의 부정이 아니라 영향력의 재조정에 가깝다.

반면 최근 한국 사회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연예인 비난의 양상은 다르다. 온라인에서 논란이 발생하는 순간 개인은 해명의 기회를 잃고, 침묵을 요구받는다. 사과는 의무가 되지만, 용서와 회복은 거의 허락되지 않는다. 문제는 특정 행위를 넘어 인간 전체로 확장되고, 비난은 곧 사회적 퇴출로 이어진다. 이미 사회 전반에 깊숙이 자리 잡은 디지털 플랫폼과 알고리즘은 이들을 향한 도덕적 분노를 증폭시키고, ‘책임을 묻는다’는 명분 아래 집단적 응징을 정당화한다. 그 결과 책임과 처벌, 비판과 말살의 경계는 쉽게 무너진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돌아봐야 할 문제는 과연 행위에 대한 책임을 제대로 묻고 있는가, 아니면 집단적 분노를 해소하기 위해 한 개인을 소모하고 있지는 않은가라는 점이다. 비판이 퇴출로 이어지고, 퇴출이 곧 정의로 오해되는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개인은 얼마나 있을까? 우리 사회에서도 유럽처럼 개인의 잘못을 분명히 지적하되, 변화와 성찰의 가능성까지 닫아서는 안 된다는 문제의식이 확산되기를 바란다.

송지원 영국 에든버러대 교수

송지원 영국 에든버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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