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올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지구 전쟁 등을 끝내겠다며 ‘세계 평화 중재자’ 입지를 굳히는 데 전념했지만, 해결되지 않은 현안을 잔뜩 안은 채 새해를 맞게 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건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 현안에 깊이 관여할수록 내년 중간선거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30일(현지시간) ‘2026년까지 이어질 트럼프 외교정책의 후유증’이란 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첫해 대부분을 ‘평화 중재자’ 역할을 하며 보냈지만, 계속되는 우크라이나 전쟁부터 베네수엘라와의 긴장 고조 상황까지 산적한 외교 현안 난제들은 내년까지 그대로 이어질 전망이다”고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 28일(현지시간) 플로리다주 팜비치 마러라고 자택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환영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낼 종전 협상은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24시간 내 종식하겠다”고 공언한 후 시작됐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내년 2월이면 만 4년에 접어들지만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8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정상회담한 후 “95% 합의했다. 협상 타결에 매우 근접했다”고 밝혔지만, 핵심 쟁점에선 사실상 진전이 없었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회담 다음 날 러시아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관저가 공격당했다’라며 찬물을 끼얹기도 했다. 러시아는 이를 빌미로 종전 협상에서 이탈할 수 있다고도 시사했다. 러시아는 미국과 우크라이나의 여러 차례 협상에도 불구하고 돈바스 지역 영토 할양, 우크라이나군 규모 제한 등 기존의 요구 조건을 강경하게 고집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크리스마스 종전’을 거론하며 연말 협상을 서두르기도 했으나 결국 해를 넘기게 됐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계속되고 있으며 쉽게 해결할 방법은 거의 없다”고 폴리티코는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9일(현지시간) 플로리다 팜비치 마러라고 자택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과 회담 후 다음 날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만나 “가자지구 전쟁 휴전 합의(가자 평화구상) 2단계를 가능한 한 빨리 추진할 것”이라고 낙관했다. 다만 가자지구 평화계획이 교착상태에 빠진 책임을 하마스에 돌리며 “단기간 내 무장해제를 하지 않으면 (중동의) 다른 나라들이 하마스를 전멸시킬 것”이라며 강경한 발언을 이어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이란의 핵시설을 물론, 탄도미사일 전력 재건까지 구실 삼아 이란을 ‘예방 타격’해야 한다는 이스라엘의 주장을 두둔하기도 했다. 한동안 네타냐후 총리를 압박해온 트럼프 대통령이 다시 그의 주장에 힘을 실어주는 모습을 보이면서 중동의 긴장이 고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폴리티코는 “평화 프로세스는 끈질긴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지만, 트럼프 행정부가 평화 구상을 실현할 인력과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지는 미지수”라며 “가자지구에서 또다시 충돌이 발생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까지 이뤄낸 주요 외교적 성과 중 하나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지난 17일(현지시간) 카라카스에서 열린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베네수엘라에 대한 압박 수위도 높여왔다. 최근에는 트럼프 행정부가 이달 초 베네수엘라 해안의 항만시설에 무인기(드론) 공격을 감행한 사실도 밝혀졌다. 수개월 동안 카리브해에서 베네수엘라 선박 격침 작전을 이어온 트럼프 정부가 그동안 예고해왔던 첫 지상 군사작전에서 나선 것이다.
이를 두고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정권과의 긴장을 한층 고조시킬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정부는 카리브해와 동태평양에서 마약 운반선으로 의심되는 선박을 30척 넘게 격침해온 데다, 마두로 정권의 돈줄을 끊겠다며 베네수엘라 유조선을 나포하는 등 공격 수위를 높여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베네수엘라와 전쟁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으면서 “마두로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발언도 서슴지 않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9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마운트 포코노의 마운트 에어리 카지노 리조트에서 미국 경제와 경제성에 대한 연설을 하기 위해 도착한 후 특유의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폴리티코는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마러라고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낼 때 대부분 외교 문제에 집중했다”며 “새해에 그가 외교 문제에서 관심을 돌릴 조짐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이런 상황은 생활비 부담에 대한 우려가 최대 쟁점이 될 중간선거 국면과 맞부딪힐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외교 현안에 집중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미국의 대외 개입을 최소화하겠다는 공약을 바탕으로 구축해온 ‘미국 우선주의’ 운동에 분열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베네수엘라, 이란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개입은 마가(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지지층 사이에선 큰 논란거리로 꼽힌다. 일부 마가 지지자들은 이 같은 개입이 남미, 중동 지역의 안정을 해쳐 미국을 불필요한 장기 분쟁에 끌어들일 수 있다고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화당 내에서도 내년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 경제 문제가 아닌, 외교 문제에 관심을 보이는 데 대한 불안이 퍼지고 있다고 폴리티코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