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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 없는 세계를 상상할 수 없다면

입력 2025.12.31 19:10

수정 2025.12.31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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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볼 시간 아껴주고, 물건 대신 팔아주고, 언제든 일자리 열어주고. 그러니 쿠팡 없이 살 수 있겠어? 쿠팡에 가입한 적도 없는데, 쿠팡의 질문을 누구도 비켜갈 수 없음을 실감하는 요즘이다. 소득이 빠듯한 사람일수록, 시간이 부족한 사람일수록 쿠팡의 약속은 솔깃했을 것이다. ‘독박 돌봄’을 떠맡은 이들은 쿠팡이 숨통을 틔워준다고들 했다. 쿠팡은 자신의 문제가 드러날 때마다 자신이 제공하는 편의를 불러내 대립시켰다.

최저가 상품의 로켓배송과 새벽배송은 이용자들의 데이터를 차지하기 위한 쿠팡의 전략이었다. 플랫폼 자본에는 데이터가 권력이기 때문이다. 이용자가 자신의 앱에서 더 많은 활동을 할수록 권력이 커진다. 이용자에게 거의 무료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유다. 접속하는 기록부터 검색과 구매와 반품 등 모든 활동이 방대한 데이터로 쌓이고 고스란히 자본의 권력이 된다. 우리의 활동이 우리를 우롱하는 무기가 된 현실을 쿠팡만큼 노골적으로 보여주기도 어렵다.

플랫폼 자본의 독점화 경향은 불공정 거래의 결과가 아니라 자본의 속성이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우리의 일상을 플랫폼의 식민지로 만든다. 하지만 이것은 데이터만으로 가능해지지 않는다. 서비스는 결국 누군가들의 노동 없이는 실현되지 않기 때문이다. 플랫폼 자본이 데이터로 쌓은 권력은 이용자를 우롱하기 전에 노동자를 착취한다.

쿠팡의 문제가 처음 드러난 것은 아니다. 쿠팡을 위해 일하는 노동자들이 다치고 죽어가는 사건들이 반복되었고 노동조합 결성과 활동을 어렵게 만드는 시도들도 발각되었다. 하지만 사회적 이목이 쏠리는 것은 잠시, 이내 잊히고 그때마다 쿠팡은 책임을 모면하기 더욱 수월한 고용 구조를 강화해왔다.

쿠팡의 사업은 물류센터에 물건을 들여, 주문이 들어오면 배송 준비를 하는 캠프로 보내고, 탑차에 실어 주문지까지 배송하는 일들로 구성된다. 마지막 배송 단계의 일을 맡는 ‘퀵플렉스’ 노동자의 규모가 수만명, 국내 최대의 물류 인프라를 자랑하며 고용한 노동자가 10만명에 달한다. 그러나 ‘고용 큰손’ 쿠팡은 노동자들이 단결할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쿠팡이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 어디에 어느 정도 인력이 필요한지는 쿠팡이 가장 잘 안다. 하지만 쿠팡은 인력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데 관심이 없다. 고용이 불안정할수록 착취가 안정된다는 걸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배송은 전형적인 ‘특수고용’인데 쿠팡의 자회사와 계약한 대리점을 통해 계약하게 한다. 물류 일은 두 개의 자회사로 나누었고 자회사는 노동자를 ‘직접고용’하지만 90% 가까이 일용직이다. 매일 대체인력을 투입하면서 파업을 사전 봉쇄하는 셈이다.

그러면서 쿠팡은 노동자들에게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일한 만큼 벌어가시라’고 홍보했다. 마르크스라면 쿠팡이 ‘노동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운 노동자’를 발견했다고 말했을 법하다. 노동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 하나의 자유라면, 정해진 노동시간이 없어 한 시간이라도 더 닥치는 대로 일해야 하는 것이 또 다른 자유다. 노동시간으로부터의 자유는 자유시간이 아니라 과로와 산재를 안긴다.

노동자들이 쌓고 옮기고 실어 나르는 물건들을 납품하는 소상공인들의 처지는 다를까. 쿠팡은 소상공인의 매출을 올려주겠다고 약속하며 ‘직매입’ 구조로 e커머스 시장을 장악했다. 그러나 대금은 50일 지나서야 지급하고 납품가를 인하하라 압박하고 판매 촉진 명목의 돈을 걷어갔다. 영세업체를 수탈하는 전형적인 갑질이다.

큰돈 벌려는 것도 아니고 있는 빚이라도 연체되지 않게 하려고 악착같이 일하는, 자신도 가족도 돌볼 여유가 없는 우리가 크게 다른 처지에 있지 않다. 쿠팡이 다른 위치로 쪼개놓았을 뿐이다. 노동자들 간에도, 노동자와 이용자 간에도. 누구든 일하다가 몸 망가지지 않기를 바라는 평범한 마음들이 자기 앞에 주어진 편의를 비교하며 갈등하게 만든 것은 쿠팡이다.

쿠팡의 성공은 사회의 실패를 거름 삼았다. 정치의 역할은 쿠팡이 미국 법인이라 무시당한다고 분개하는 것 이상이어야 한다. 쿠팡의 세계가 만든 균열을 넘어 노동하는 시민들의 공론장을 열어야 한다. 노동의 권리를 다시 세우고 쿠팡이 길들인 편의와 다른 필수적인 편의들을 보장하기 위해 노동이 어떻게 연결되면 좋을지 다시 그려야 한다.

쿠팡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면 쿠팡을 사회화하는 상상도 해볼 일이다. 그만큼 필수적이라면 공공성의 영역일 테고 ‘공공의 적’보다 공공성의 씨앗이 되는 것이 쿠팡에도 영예로울 테니 말이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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