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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웃음은 전신운동

입력 2025.12.31 19:26

[김홍표의 과학 한 귀퉁이]웃음은 전신운동

살며시 미소 지을 때 우리는 얼굴 근육 15가지를 쓴다. 하지만 놀랍게도 파안대소(破顔大笑)할 때 동원하는 근육의 종류는 무려 231가지라고 한다. 손바닥을 치고 몸을 활짝 열어젖히며 웃는 모습을 떠올리면 여러 벌의 근육이 움직인다는 데 의심할 여지는 없겠지만 저 숫자의 크기는 자못 놀랍다. 해부학자들은 우리 몸이 약 650개의 근육으로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그러니 맘껏 웃을 때 우리는 근육의 3분의 1을 쓰는 셈이다.

웃느라 얼굴과 몸의 여러 근육을 움직이는 행위는 결국 근육세포 안 단백질의 대대적인 수축과 이완을 뜻한다. 하지만 그 전에 근육세포를 수축하라는 ‘웃음 신호’가 어딘가에서 도달해 있어야 순리에 맞다. 1998년 간질성 발작을 앓는 소녀를 치료하느라 뇌 검사를 하던 미국 연구진은 뇌 왼쪽 전두엽의 어떤 부위가 웃음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네이처’에 보고했다. 웃을 만한 상황이 아니었는데도 뇌 특정 장소를 전기로 자극하자 소녀는 웃음을 터뜨렸다. 자극의 세기가 커질수록 더욱 즐겁게 웃으며 재잘대기도 했다. 이처럼 특정한 상황을 본 뇌가 신호를 보내 얼굴을 일그러뜨리도록 하는 일련의 생리적 현상이 웃음인 것이다. 달리 말하면 웃음은 시신경과 전두엽 신경세포, 근육세포는 물론 소리를 내는 성대 세포, 이런저런 근육에 붙어 그 움직임을 조율하는 뼈세포까지 한통속이 되어야 가능한 전신운동이다. 그뿐일까?

눈 뒤쪽 망막에 있는 간상세포가 웃음거리를 목격하려면 로돕신이라는 단백질을 활성화해야 한다. 그때 비타민 A가 필요한데, 그 물질은 아래쪽 저장소인 간(肝) 성상세포에서 시나브로 방출되어야 한다. 근육 단백질이 수축하고 이완하려면 에너지와 칼슘도 필요하다. 그러므로 크게 웃으려면 음식도 고루 먹어야 한다.

큰 웃음에 드는 게 많은 만큼 나오는 떡고물도 적지는 않다. 웃을 때 뇌에서는 모르핀 비슷한 엔도르핀이 나와 ‘얼굴 근육운동’에 기쁨이라는 보상을 되돌려주는 현상은 잘 알려져 있다. 일본의 한 웃음연구가는 코미디 공연을 관람한 관객의 혈액을 조사한 뒤 그 안에 암과 싸우는 면역세포인 자연살해세포가 활성화되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게다가 웃음은 자율신경계 중 하나인 부교감신경을 자극하여 심장을 천천히 뛰게 하고 몸 상태를 편히 만든다. 그러나 무엇보다 웃음의 가장 큰 효과는 스트레스를 누그러뜨린다는 데 있는 것 같다.

이제 짐작하겠지만 웃음은 부교감신경을 건드리는 반면 스트레스는 교감신경을 자극한다. 흔히 교감신경은 ‘투쟁과 도피’ 반응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지난날 으슥한 산길에서 곰과 같은 포식자와 마주했을 때 능히 한목숨을 구했을 것이다.

이 신경계는 관자놀이 안쪽의 시상하부, 뇌하수체와 부신, 그리고 그 안에 든 온갖 세포들이 한 치도 빈틈없이 움직여야만 가까스로 작동한다. 그러므로 가끔 찾아온다면 스트레스 반응은 한 생명체의 생존을 보존하기 위한 썩 훌륭한 진화적 장치로 기능할 수 있다.

그러나 정신적 스트레스가 반복되거나 외상후 스트레스장애가 생기면 질병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런 상황에서는 교감신경계가 과도하게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말 하버드대학의 연구진은 스트레스가 면역계 T-세포를 꼬드겨 털주머니(毛囊) 줄기세포를 공격하도록 부추기고 생쥐의 탈모를 일으킨다는 연구 결과를 ‘셀(Cell)’에 보고했다. 동물 모델에서 기전을 밝힌 결과이지만 같은 포유동물로서 생쥐의 실험은 인간의 스트레스 생물학에 영감을 준다. 인간 털주머니의 줄기세포에서 뻗어 나온 털은 대개 3~6년에 걸쳐 성장한다. 그런 다음 약 2개월의 퇴행기와 휴지기를 거치는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 순환한다. 하지만 급성 스트레스는 노르에피네프린을 통해 이 과정을 가뿐히 무너뜨린다. 우선 활성산소가 줄기세포를 죽이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것을 지켜보던 T-세포가 정신을 못 차리고 자신을 공격하기 시작한다.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스트레스가 생리적 허용 한계를 넘어서 자신의 세포를 해치는 단계로 대응이 상향조정되는 모양새다. 이렇듯 강한 스트레스는 쉽게 자가면역 질환으로 이어진다. 공교롭게도 그 희생양은 머리털이다. 심장보다 머리털이 다치는 게 낫다고 위안 삼아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요즘 2030세대의 탈모가 화두다.

순한 샴푸를 쓰고 머리를 박박 감지 않으면 얼마간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보다는 그들에게 스트레스를 덜 주고 웃음을 더 안겨야 하지 않을까?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김홍표 아주대 약학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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